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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중년! 오감(五感)을 느끼고 싶다
2013-04-10 12:36:41최종 업데이트 : 2013-04-10 12:36:41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스케치북 고백 장면으로 영화사에 방점을 찍고 수많은 아류작품을 낳은 영화 '러브 액추얼리'. 
서른이 넘은 노처녀와 노총각의 사랑이야기를 담은 '노팅 힐'. 
서정성의 지존 '오만과 편견' 그리고, 어톤먼트.......하치 이야기, 토리노의 말, 타인의 삶, 나우 이즈 굿, 아무르, 원 데이, 레미제라블..... 연대순 관계없이 모두가 나만의 스타일 영화들이다. 

설레는 가슴으로 본 영화였기에 대부분 뻔히 아는 스토리였지만 깊은 여운 때문에 뒤척이며 새벽을 맞이하기 일쑤였다. 물론 '토리노의 말'이나 '타인의 삶'처럼 드라마를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독히 심오한 예술영화라 감상법에 있어서 종종 아리송했지만, 여타의 영화들은 연가(戀歌)처럼 달콤하기만 했다. '내가 주인공 이라면?'이라는 허황된 꿈을 무시로 꾸면서 늘 나의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영화에 살고 영화에 죽는' 난 영화마니아층에 속한다. 단, 장르는 가린다. 액션영화나, 공포영화는 커다란 메시지가 있지 않는 한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현재 나이 오십에 가까운 시간에도 여전히 개봉관을 찾고, 미처 보지 못한 영화들은 불법이 아닌 공식 다운로드('굿 다운로드' 열혈 지지자다) 채널을 통해 접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날씨였던 지난 주말, 유독 영화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남편이 오래간만에 '한턱 쏘겠다'고 넌지시 데이트 신청을 했다. 매일 회사일로 바쁜 남편을 위해 힐링의 시간이 되어주기를 바라면서 주저 없이 난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우리 둘이서? 어떤 장르의 영화가 보고 싶은데요?"
"이병헌이 주인공 이라는데... 3D로 제작된 영화라고 하던데!"

아...이럴 수가. 내가 그토록 기피하는 액션장르라니. 그래도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시장을 타킷으로 만들었다니, 애국정신을 발휘하여 한번 봐줘야하지 않을까? 잠시 나의 머릿속은 초고속 자동 감김 상태로 왔다 갔다 했다.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결론은 아이들과 함께 영화도 보고 훼밀리 레스토랑을 찾아 점심도 해결하자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일요일 오전, 복합상영관을 찾아 직행.

적어도 아직까지는 오감(五感)이 살아있으니 액션 볼거리를 충만하게 느끼다보면 몸의 에너지가 절로 생겨나겠지, 라는 심정으로 좌석을 찾아 앉았다. 
아, 그런데 역시나 실망이었다. 잡념이나 사고를 하기는커녕 여운이나 메시지도 없는 완전 꽝인 영화였다. 적어도 내게는.

나의 취향이 아닌 영화를 보려니 몸 가누기조차 힘들기 시작했다. 중반 닌자들의 암벽 액션신이 지나고부터 점점 눈두덩이 무거워지더니 급기야 스르르 눈이 절로 내려앉았다. 옆에 남편과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있으니 졸기가 뭣해서 몸을 좌우 흔들어보고 손바닥을 문질러 봐도 소용없었다. 
그때서야 후회감이 일었다. 극장 입장하기에 앞서 남편이 군것질이라도 사가지고 들어가자는 말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찝찌름한 오징어라도 물고 있으면 잠이 확 깰 텐데....라는 생각을 할 즈음 난 완전 꿈나라로 가고 말았다. 
"당신 재밌었어?"
"아, 글쎄 너무 시끄럽기만 하던데....아무튼 이병헌 몸은 끝내주던데요.."라며 말끝을 흐릴 즈음 아이들 앞에선 남편 왈 "에이그. 마누라도 이젠 늙었나봐. 그 시끄러운 소리에도 잠을 자니 말이야."

아이들과 함께 훼밀리 레스토랑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어찌나 창피하던지. 평상시 먹는 밥 양에 두 배는 족히 먹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남긴 스테이크며 케밥 비슷한 멕시코 음식이며 샐러드까지 모조리 먹어치웠다. 쩌렁쩌렁한 사운드가 상영 내내 고막을 공격함에도 불구하고 쿨쿨 잠을 잔 것이 '몸에 에너지가 소멸됐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처방하면서 마구 마구 입속으로 구겨 넣었다.

나이 오십 줄이면 오감도 줄어드는 것일까. 
청춘들만 아픈 것이 아니다. 중년도 아프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이내 나의 눈에서 멀어져가는 것 같아 아프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봄날, 흩날리는 봄바람에 무거운 무채색의 마음을 떠나보내고 싶다. 몸도 건강도 초록색의 옷을 입고 오감을 모두 느끼고 싶은 오후다.

아, 중년! 오감(五感)을 느끼고 싶다_1
사진/이용창
,
아, 중년! 오감(五感)을 느끼고 싶다_2
사진/이용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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