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라, 팔부자 거리 옛 명성이여!
2013-04-06 10:08:23최종 업데이트 : 2013-04-06 10:08:23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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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14년(1790년) 5월17일, 수원유수 겸 화성성역의 감동당상이었던 조심태는 신도시 육성과 번영을 위한 읍치부양책을 국왕께 올렸다. 구 읍치에서 지금의 수원 즉, 신 읍치로 옮긴지 딱 1년 만에 대도회지로의 모습으로 변화할 즈음이었다. ![]() 부활하라, 팔부자 거리 옛 명성이여!_1 5일, 땅거미 질 무렵 영화로웠던 옛 풍경을 상상하며 '팔부자 거리'란 현수막이 붙어있는 북수동 성당 사이 길로 들어갔다. 입구부터 입점해 있는 문구점은 한집건너 혹은 두 집 건너 가게의 규모만 다를 뿐 완구와 문구들을 빼곡히 진열한 채 문을 열고 있었다. 문구점이 아닌 세탁소도 보이고 리본 전문점도 보이고, 문을 닫은 헌책방도 있었지만 상점 안과 거리는 소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다. '저렇게 인적이 드물어서야...'라고 중얼거리면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설 즈음 마을만들기 일환으로 쓰여 진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수원미술인들과 상가번영회가 힘을 합한 모양이다. '2012 팔부자 마을만들기-감지락'이다. 문이 닫혀있어 안으로 들어가 볼 수가 없었지만 마을의 변화를 자각하면서 모색의 길로 들어선 듯했다. ![]() 부활하라, 팔부자 거리 옛 명성이여!_3 ![]() 부활하라, 팔부자 거리 옛 명성이여!_2 수원천변으로 발을 옮길 즈음 70년대 건축물로 보이는 큰 상가와 마주했다. 흰색 페인트로 외관을 모두 도색했지만 '수원 중앙도매시장'이란 돋을새김 글자가 보여 예전에 이곳이 어떤 곳이란 추측을 하게 했다. 안으로 들어갔다. 규모가 꽤 큰 가게다. 내부엔 장난감부터 완구 문구까지 아이들을 위한 천국의 집처럼 보였다. 오래된 시멘트 외관에서 당시 유행했던 건축 기법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건물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입히면 관광자원이 될 수 있는데...'란 생각이 들었다. 수원천변에 있는 매향교를 기점으로 지동교까지는 '수원의 통닭거리'로 자리 잡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문구거리는 옛 팔부자거리란 이름만 내걸고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수원 천변로와 이웃하고 있을 뿐이다. 현재 마을만들기가 진행되고 있어서인지 간판이 새롭게 조성되고 있고, 외관도 바뀌어가는 모습이 얼핏 보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물론 낙후된 도심이었다가 화려한 비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지동 벽화마을'과 '행궁동 마을'과는 달리 이곳은 매번 방문하면서 똑같은 느낌으로 와 닿는다. 그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는 것이다. 수원화성 성안, 그 중앙에 위치한 팔부자 거리가 옛 이름에 걸맞은 부촌마을로 부활하기를 꿈꾼다. 머지않아 행궁동과 더불어 수원관광코스로서 사람들이 늘 북적이는 마을로 탄생되기를 기원한다. 수원천변과 더불어 아름다운 팔부자 거리로, 특색을 갖춘 문구거리로 자리하기를 바란다. ![]() 부활하라, 팔부자 거리 옛 명성이여!_4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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