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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는 이해, 인간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
아내의 고향, 룸자타(rumjatar, 해발1358미터)에 다녀오다(2)
2013-03-23 01:26:54최종 업데이트 : 2013-03-23 01:26:54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사람이 사는 곳에 많은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다운 삶이 존재한다는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에게도 그런 삶이 있었다. 지금 우리의 일상은 바쁘다는 단어로 간단하게 정리되고 만다. 참 허무한 일이다. 수많은 것들을 이루었고 온갖 것들이 풍요로운 상징으로 넘치는데 이야기는 단조롭다. 

너와 나, 우리도 너무 단조로운 관계로 정리된다. 하물며 가족은 더없이 빈약해져버렸다. 다행스럽게 남은 것들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 그것은 우리의 전통 명절이 지켜내고 있다. 남은 끈, 남은 실오라기가 전통명절과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풍속들이란 생각이다. 
이런 관계 속에서 넘치는 풍요는 다변적이지 못하다. 오직 파편화된 개인의 영역으로 종속된다. 이야기의 공유가 아니라 논쟁의 공유 그리고 개인은 숱하게 파편적인 과정을 거쳐 파괴되고 있다. 

이야기가 공존하려면 붙임이 있어야 한다. 우리네 전통 문화 속에서 보는 우리와 현재의 우리가 많이 동떨어지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최근 e수원뉴스 기사를 통해서도 많이 익힌 힐링은 어쩌면 인간들의 사람다운 삶에 대한 갈구, 어쩌면 그런 아우성쯤으로 이해해도 좋을 일이란 생각이 든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진정한 힐링은 이야기하지 않아도 일상이 사람 사는 이야기로 온존한 상태일 때란 생각이다. 

넘치는 이해, 인간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_1
달리던 차가 서로 등을 맞대었다. 아무런 탓도 없이 서로를 격려하며 안녕을 비는 그들을 보고 놀라울 뿐이었다. 이해가 넘치는 세상이다.

넘치는 이해, 인간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_2
짚차의 무게를 줄여 차를 돌 위로 들여 올렸다. 승객들은 차에서 내려 아무 탓없이 흙밭을 걸었다.

간식을 먹은 후 다시 출발한 짚차가 거친 먼지 속에 한참을 산기슭을 오르락내리락 하더니 덜커덕 멈춰섰다. 좁은 길을 서로 비켜가려던 짚차와 지붕 위가 맞붙었다. 가까스로 뒷바퀴 아래 돌을 끼워 넣고 차를 들어올려 맞은 편 짚차와 떨어트릴 수 있었다. 그래도 아무 일 없었던 듯 서로를 격려하며 안녕이다. 

우리네 문명인들이라면 우격다짐을 한 후, 사고처리 보상금문제로 논의를 하거나 사건 현장 보존 후 현장 수습을 가지고 옥신각신할만한 일이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게 안녕을 빌어주고 헤어졌다. 
인간의 시계, 인간의 희망, 인간의 조건 속에서 보면 그들이 훨씬 인간적으로 풍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이 사람으로 살 충분한 인성을 가진 사람들로 보였다. 문명하고 개화했다는 사회의 사람들보다 말이다.

넘치는 이해가 놀라울 뿐이다. 차를 떼어놓기 위해 차에서 내린 승객들은 험한 비탈길, 먼지투성이의 흙밭을 아무런 아우성없이 걷는다. 그렇게 산기슭을 내려온 짚차가 다시 한참을 달리니 이제는 물이 풍부한 강을 지나고 평지의 마을이 나오나 싶더니 곧 오르막이다. 
오르막 옆 길에 부처님의 노래라 해도 좋을 경전 '숫타니 파타'에서나 나올 법한 움막이 준비된 사람들의 집이 나온다. 부처님의 설법에 맞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바깥에서 안의 풍경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들이다. 물론 대로 엮었으나 들여다보면 보일만한 집들이다. 

넘치는 이해, 인간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_3
오르막길에 대를 엮어 만든 집이다. 안이 들여다 보면 보일만한 상태의 집이다.

넘치는 이해, 인간의 조건을 갖춘 사람들_4
아찔하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형이상학적인 이상 사회의 실체가 존재하는 곳이다. 놀라움이 넘친다.

보이는 세계를 굳이 누가 들여다보겠는가? 네 것도 내 것도 없을 것만 같은 삶의 모습은 네팔 남부에서도 흔히 보던 풍경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따로 없이 하나인 삶을 사는 사람들 같다. 그러니 천지와 인간이 그저 하나의 바람 속을 걷는 존재로 더불어 살아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허공을 가르는 바람처럼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의 사연을 존중하며 그렇게 깊은 적요의 숲을 만들며 살아가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는 이의 눈길이 간혹 안타깝지만, 그들의 눈길에는 나의 생각에 언제나 한 대 후려칠만한 철학이 내재되어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이제 그들을 안타깝게 보지 않기로 작정했다. 과연 그런 생각은 나의 비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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