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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퍼 아줌마'의 보릿고개 추억과 상차림의 행복
2013-03-10 13:12:13최종 업데이트 : 2013-03-10 13:12:13 작성자 : 시민기자   정순예
나는 '밥퍼 아줌마'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맛있는 밥을 짓고, 곁들여 맛있는 반찬으로 식탁을 맛깔나게 차리는게 나의 소중한 소임이다.
그래서 나의 두 번째 직업 '밥퍼 아줌마'가 싫지 않다.
밥 푸는 직업 아닌 직업이 유난히 새삼스런 느낌으로 다가오는 때는 바로 지금같은 3월부터 5월정도까지다. 이 시기가 바로 요즘 아이들은 상상도 못할 과거의 보릿고개 시절이기 때문이다.

꽁보리밥을 참 질리도록 먹었던 60년대 어린 시절, 요즘 아이들에게 '그때를 아는가' 하고 묻는다면 고개를 도리질 치며 '알고 싶지도 않아요'라고 할것 같다. 워낙 어렵고 궁핍하던 시절이었으니까.
하기사, 그때는 꽁보리밥이라도 실컷 먹을수 있었으면 그나마 가세가 중간쯤은 되는 집안이었다. 그조차도 없어서 이집 저집 얻으러 다닌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밥퍼 아줌마'의 보릿고개 추억과 상차림의 행복_1
'밥퍼 아줌마'의 보릿고개 추억과 상차림의 행복_1

내가 어린시절이었던 60년대 당시에 보릿고개라는 말이 농촌의 가난한 가정들을 참으로 힘들게 만들었었다.
해마다 3월부터 5월까지가 되면 묵은 곡식은 슬슬 떨어져 가고 그 절정은 5월초부터 시작한다. 5월초부터는 아직 햇보리가 여물지 않아 농가에서는 굶주리기를 밥먹듯 해야만 했었다.
바로 지금 3월부터 곡식의 독이 밑바닥을 보이면서 5월까지 슬슬 보릿고개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처럼 우리를 괴롭히던 보릿고개의 망령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70년대후반 쌀 보리등 주곡의 자립화가 이루어지면서 부터였던걸로 안다. 그때 새마을 운동 붐이 일어나고 농촌에는 통일벼가 보급되고 너도나도 쌀 증산을 이루면서 보릿고개를 넘길수 있었다.

그 뒤 농촌에도 쌀이 많아지면서 쌀이 남아돌게 되자 보리는 주곡으로서의 위치를 빼앗기고 이제는 도시 사람들에게 추억의 별식으로 남게 되어 건강식품으로써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보릿고개가 없어졌으니 그 세월 힘겨운 나날을 보냈던 사람들에게는 기쁜 일이기는 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힘은 좀 들었으나 보릿고개가 사라져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다.

하루빨리 영글어 나락을 거두기만 학수고대 하던 보리. 그게 3월부터 날이 풀리면서 슬슬 고개를 쳐 들고 자라 봄철 들녘에서 보리밭의 싱그러움을 자랑하며 농촌을 푸르른 풍경화의 모습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80년대말 어느샌가부터 그 장관을 찾아 보기 어렵게 만들어 버린게 못내 아쉽다.
지금은 애써 보리농사를 지어봤자 품삯마저 건지기 힘들기 때문에 전라도와 경상도 일부지역에서 극히 적은 규모로만 보리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현재 우리가 식당에서 사 먹는 보리밥도 거의 다 수입 곡물이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제 보릿대를 꺾어 피리를 불어대는 어린이들의 모습도 볼수 없고, 보리로나마 굶주린 배에 포만감을 만끽하는 농민들의 모습도 옛 추억거리가 된 세상인게 어쩔수 없는 현실이 된 것이다. 

가끔 시내 한복판 길거리의 대형 화분에서나 자라는 보리를 볼수 있을 정도이니. 그나마 요즘 아이들은 그게 보리인지 '쌀나무'인지조차 모른다.
그런 세월을 겪어 낸 농촌출신 주부이니 '밥퍼 아줌마'가 된 이 나이에까지 그때의 아릿한 추억을 잊을수 없어 이제는 지금 남편과 아이들에게 따스하고 맛난 식탁을 차려 낼수 있는게 더 행복감을 주는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밥을 짓는 순간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의 시작이니 행복감이 밀려들고, 눈물겹던 보릿고개 아련한 저녁 노을을 기억하니 잠시나마 먼 추억여행도 다녀올수 있다.
저녁나절 밥 짓는 연기가 굴뚝을 타고 올라와 온 마을을 감싸 안던 포근했던 날들. 그 그림도 사실 배고프던 시절 풍경이지만 지금은 생각해 보면고 정겹고 안온한 모습이었다.

어릴적부터의 추억과 보릿고개를 거친 세대여서 지금 밥 짓는 행복이 남다른 것이다.
어떤 주부들은 주방에 가는게 귀첞은 일이라고도 하지만, 보릿고개를 겪어 본 나는 오늘도  밥을 지으며 소박한 행복감에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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