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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위대한 천재를 돌아보다.
광교홍재도서관, 뮤지엄 현대미술을 담다
2023-08-25 14:46:18최종 업데이트 : 2023-08-25 16:55:10 작성자 : 시민기자   진성숙

이건희 컬렉션에 전시되었던 TV부처

이건희 컬렉션에 전시되었던 TV부처


여기 하나의 부처가 있다. 부처는 텔레비전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한다.

 

[TV부처]는 모니터앞에 놓인 불상을 폐쇄회로 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온 인류에게 전송하여 보여진다. 정말 놀랄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백남준이 1974년 뉴욕에서 착안했다.

속세를 떠나 구도자의 길을 걸으며 열반에 이른 부처가 현대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텔레비전을 바라보면서 자기자신을 되돌아본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누구도 상상하기 힘든 형이상학적 동양의 신비가 담긴 이 작품에 세계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찬사의 박수를 쏟아냈다.

 

그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동양적 화두를 꺼내기에 이른다.
동양과 서양, 선과 테크놀로지, 관조와 나르스시즘등 대척점에 선 이질적인 요소들이 뛰어난 선각자적인 혜안으로 서로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세상의 시원과도 같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지극히 철학적이고 관념적인 작품이 바로 TV부처인 것이다.
수년전 도슨트교육을 받았던 필자도 이 작품을 백남준의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는다.

                

백남준 (1932~2006)은 세계적으로 비디오아트를 대표하는 작가이며 현대미술에 있어 중요한 아이콘이다. 위대한 천재는 새로운 매체에 눈을 돌렸고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며 전위적인 정신으로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한 브라운관을 캔버스로 삼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그려나갔다.
 

"무엇이든 예술이 될수 있고 누구나 예술가가 될수 있다" 이 말은 미디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며 예술의 역사를 새로 쓴 현대예술의 혁명가 백남준이 한 위대한 발언이다.

 

길위의 인문학 포스터

길위의 인문학 포스터

지난 22일 광교홍재도서관에서는 길위의 인문학 일환으로 40여명의 수강생이 모여 고급진 미술강연을 들었다. 강연자는 홍익대교수 장원교수님이다. 지난 6월 "뮤지엄 건축을 말하다"에 이어 이번 2차에서는 조각, 비디오아트, 순수회화등 좀더 폭넓은 장르를 통해 질높은 미술에 더욱 다가가는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전 세계 11개국에서 TV로 생중계 된 [굿모닝! 미스터오웰]이 방영된 1984년 1월 2일, 이 날은 한국인들이 비디오아트를 처음 대면하게 되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통해 일방적인 정치매체라는 조지오웰의 예언을 부정하고 자신의 비디오아트같이 쌍방형의 소통을 이루는 문화적 매개체임을 역설하고자 했던 것이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어릴때는 병약하게 자랐다고 한다. 부유했던 한국에서의 가정형편 덕분에 유년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소양을 넓혀 갈수 있었으며 풍요로움이 주는 인간적인 넉넉함도 배울수 있었다. 어려서 일본으로 건너가 학업했으며 음악인 피아노를 전공하였고 미학을 같이 공부하였다. 그후 독일로의 유학과 그곳에서의 생활은 다방면으로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철학과 예술서적들을 숙독하던 백남준은 1957년과 1958년 독일의 다름슈타트 국제신음악 여름 강좌에서 기존 예술에 반기를 들며 실험적인 예술을 선보이는 플럭서스 예술가들과 조우하며 새로운 예술에 눈을 뜬다.


열심히 공부하는 수강생들

열심히 공부하는 수강생들


그곳에서 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가까운 사고의 혁명을 경험하는데 바로 일상의 소음도 음악이 될수 있다고 주장하는 [4분 33초]의 존 케이지를 만나면서부터였다.

 

그를 통해 백남준은 무엇이든 예술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예술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백남준은 남들과는 무언가 다른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매체에 눈을 돌렸고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며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한 브라운관을 캔버스로 삼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그려나갔다.

 

두차례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그리고 냉전체제로 이어졌던 20세기를 경험한 그는 쌍방향 소통만이 세계평화를 견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편리하게 상대지역을 오갈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백남준은 가장빠른 속도로 전세계를 연결할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인공위성을 예술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동서양의 문화를 융합한 [굿모닝 미스터오웰] [바이바이 키플링]을 통해 언어가 달라도 예술로 인류가 하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백남준의 예술세계는 국가패권주의가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비추어볼 때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진다.
 

뒤샹과 존 케이지를 만나고 쾰른을 중심으로 꽃 피웠던 플럭서스 예술가들과 조우한 곳도 이곳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론 파리를 대신해 현대미술의 메카로 떠오른 미국 뉴욕은 백남준의 주된 활동무대였다.이 도시의 한복판 소호에서 그는 세계적 거장으로 우뚝서게 된다.

 

그의 예술작품에는 예외 없이 작가의 철학적 사고와 인생관 그리고 체험 등이 고스란히 녹아있게 마련이었다. 작가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작품에 담긴 참된 의미를 알아채기 어렵다.
 

그래서 작품을 감상하는데 그 작가가 어떤 삶의 궤적을 그렸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일본 독일 미국 각 나라에서 그가 껶은 경험이 그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파악하는건 어렵지않다.

 호랑이는 살아있다 . 1999

호랑이는 살아있다 . 1999
 

백남준의 사고는 몽골의 징기즈칸처럼 한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독일을 거쳐 미국까지 호령하며 다녔다. 몸은 한 곳에 매여 있을지언정 사고는 국경너머로 전세계로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것이다.
 

1988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만든 [다다익선]을 보자.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작으로 만들어진 그 작품은 개천절을 상징화는 1,003개의 브라운관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가 아니라 모니터의 절대수 즉 매스커뮤니케이션의 구성원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다다익선]은 작품의 노후화로 한때 가동중단되었다가 작년 다시 대대적 보수와 함께 LED화면으로 교체되면서 작품이 재설치 전시되고 있다.
 

1988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작.다다익선

1988 국립현대미술관 개관작.다다익선
 

[TV와 부처] 외에도 [호랑이는 살아있다] 라든지  피아노를 깨부수고, 도살된 황소머리를 축제 개막식에 선 보이는 등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퍼포먼스로 감히 그 시대에 상상하기 어려운 발상으로 세인을 놀라게 하였다.
 

그는 진정으로 위대한 선각자이며 유쾌한 천재, 진짜 꾀짜의 멋을,  한국인의 기상을 세상에 유감없이 드러내준 거라 생각한다.


수강생중 김명화님은 "평소에 전위미술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터라 마음속으로 백남준의 진가를 제대로 몰라봤던 것 같다. 이번에 그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그의 선각자정신을 다시금 기려볼 것이다"고 하였다.


한편, 광교홍재도서관은 9월 12일 백남준아트센터를 견학예정이며 송정아 사서는 "이번 프로그램은 야심차게 준비했는데 시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고급진 축제의 일환이 될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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