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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홍재도서관과 함께 한 '백남준 아트센터, 장욱진 고택' 탐방
'길위의 인문학 미술기행' 주최
2023-09-20 09:12:10최종 업데이트 : 2023-09-20 09:11:03 작성자 : 시민기자   진성숙

백남준 아트센터 앞에서

백남준 아트센터 앞에서


광교홍재도서관은 지난 9월 12일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일환으로 백남준 아트센터 및 장욱진 고택을 탐방하였다. 당일 오전 9시 도서관 강당에 모인 30명은 인원 점검 후 물과 간식을 받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수원시민들과 함께 인근 지역을 함께 탐방한 의미 있는 기회였다. 

초가을 날씨는 화창했다. 앞서 강의를 세 차례 들었던 터라 우리들의 호기심도 무르익고 있었다. 참가자 대다수가 주부이지만 이날만큼은 설렘을 안고 소풍 가는 소녀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드디어 10시 30분쯤 백남준 아트센터에 도착했다. 이경희 문화해설사와 김소현 도슨트가 환영인사를 전했다. 이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현장을 돌아보면서 설명한 덕분에 작품을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TV 달과 토끼

TV 달과 토끼  1966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1969년 3월 23일 백남준(1932~2006) 외 5인의 예술가가 보스턴의 한 방송국에서 방영한 미국 최초의 비디오아트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이 방송은 "예술가들이 방송을 장악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텔레비전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서 수백만을 위한 미술관을 바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라는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렇다. 바로 이것이었다. 백남준은 그 옛날 수백만 수천만도 볼 수 있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비디오아트, 미디어아트에 주목한 것이다.

 

우리는 그에게 왜 열중하는가

우리는 그에게 왜 열중하는가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 나라인 줄도 모르고  '한국전쟁'과 몹시 가난한 나라로만 기억되던 세계인들에게
'TV-달토끼'란 작품은 미국 및 세계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세계 속에 동양인 백남준의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이렇게 백남준은 그만의 독창성과 창의성으로 획기적인 작품세계를 창출해나간다. 시간을 재조합하여 편집하는 비디오 작업이 시공간의 구속을 벗어나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연결하고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어 낼 것을 백남준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미디어의 급속한 발달로 이런 비디오아트 분야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당시만 해도 이런 앞날을 예견하고 창작에 몰두했다는 건 뛰어난 혜안이 아닐 수 없다.

                                     TV 정원

TV 정원


김소현 도슨트에 따르면 이때 당시에는 백남준이 실험예술을 어떻게 공영 방송에서 지속할 수 있는가 그 방안을 제시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기술 매체라는것이 단순히 어떠한 기술성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와 만났을 때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것을 극도로 강화시켜준다. 백남준은 이런 사안들에 대해 깊이 천착했다고 한다. 그는 기계 전공자가 아니었지만 뭐든 파고드는 성격이어서 기계나 전기 전자 매체를 완전히 체득하여 그 메커니즘을  전공자 저리 가게 판독하고 주무르기에 이른다.
다방면에 박식한 그가 아티스트이자 정책가, 철학자로서 그가 록펠러재단에 비공식적인 컨설던트로 20년간 역임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너에게 닿기를  전시작품

너에게 닿기를 .... 2002 뉴욕재현


백남준은 세계적인 비디오아트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위상은 더 높다. 그는 뛰어난 아방가르드였는데 기존의 틀을 완전히 벗어나서 반전을 가하는 혁명적 선구자였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또 위성아트라는 동시대적인 방송이 가능한 그런 예술을 했다.
'굿모닝 오웰'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전 세계에서 한번에 방송이 되는 그런 형태를 꿈꿨다는 것이 당시 너무 혁신적이지 않은가. 온라인, 팟캐스트,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가 없던 그 옛날에 청사진을 펴고 내다본 것이다.

그리고 굉장히 사회참여적인 작가였다. 예를 들면 백남준의 그때 당시 위성아트들을 보면 냉전체제에서 러시아의 유명한 밴드가 나와 연주하는 모습이 방영되었다. 즉 이데올로기는 허접하고 쓸데없다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도슨트와 함께 그의 생애를 조명하고 달토끼, TV정원, 최초 일본에서 만든 로봇 등 1, 2층 전시실을 꽉 채운 작품을 차례로 감상하였다.   
 

장욱진 화백 고택

장욱진 화백 고택


참가자들은 장소를 옮겨 장욱진 고택에 다다랐다.
장욱진(1917~1990)은 명망 있는 한국의 화가로 새와 나무, 가족 같은 친근한 주제를 자유롭게 표현했으며 주요 작품은 <독>과 <까치>와 <집>이 있다. 그는 충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각종 미술전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으며 도쿄제국미술학교에서 공부했다. 소녀, 까치, 가족과 같은 친근한 소재들을 대담하게 단순화해 화면에 자유롭게 배치하는 화풍으로 대부분의 작품을 그렸으며 후에는 동양화적인 수법을 더해 서정성과 철학성을 동시에 담아냈다.
 

그는 남양주 덕소에서 오래살다 용인의 현재 고택에서 남은 여생을 살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6년간 봉직한 것 외에는 오로지 자연과 더불어 그림에만 전념하는 기인같은 생활을 하였다.

마북동 고택은 1884년에 지어진 경기도 특유 중농의 'ㅁ' 자형 집으로 안채와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연식에 비해 매우 미려하게 잘 보존되어 있었지만 오히려 1989년에 지은 양옥이 더 낡았다. 상상 속 그림을 따라 지은 멋진 집이지만 세월에 따른 퇴락은 막을 수 없어 현재 살림집이었던 양옥은 외양만 볼 수 있을 뿐이지만 특별한 배려로 이날은 그 안의 전시 작품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그리고 두 채의 한옥 중 한 채를 개조해 만든 운치 있는 카페에서 대추차, 오미자차를 마셨다. 깊은 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전통 마루에 앉아 하하 호호 정담을 나누며 차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다. 장화백의 셋째 자녀가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어머님이 평온하게 사시다가 작년에 101세로 작고했다."라고 말했다.
 

고택의  품위를 찍다

고택의 품위를 찍다


이경희 문화해설사는 "시대의 선각자 백남준의 위상을 다시금 깨달으며 예술의 깊은 경지를 느끼시기 바란다. 가까우니 휴일 가족과 다시 방문해도 귀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애 참가자는 "장욱진 고택이 이렇게 가까이 있는 줄 몰랐다. 1884년에 지은 한옥도 보존이 잘 되어 멋스럽거니와 1989년에 지은 양옥집은 상상 속 그림이 현실이 되었다 하니 신비롭다. 제자가 프랑스의 어느 멋진 집을 보고 와 설명해 주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내내 동경하다 직접 지었다 한다. 또한 장욱진 작가의 그림은 작고 포근하고 정감있게 느껴진다. 가족의 소중함을 따뜻하게 표현했기 때문 듯 하다"라고 말했다. 

오래된 기와에 내려앉는 따사로운 가을 햇볕, 운치 있는 정원을 빛내주는 몇 그루의 정원수도 아해 같은 화가의 작품세계와 더불어 다감하게 느껴진다. 혼자보단 여럿이 도서관 친구들과 함께한 영혼이 따뜻한 미술기행은 우리 삶을 두고두고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장욱진님 셋째따님의 인사

장욱진 씨의 셋째 자녀가 전하는 인사

진성숙님의 네임카드

백남준 아트센터, 백남준, 장욱진, 진성숙, 비디오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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