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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과 시인의 만남
수원시인협회 전시회, 막사발에 새긴 시(詩) 멋스러워
2023-08-02 11:08:10최종 업데이트 : 2023-08-02 11:08:0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행궁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행궁길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지난주 행궁길갤러리(팔달구 행궁로 18)에서 이색적인 전시회가 열렸다. 막사발의 세계적인 명장인 김용문 작가와 함께 하는 수원시인협회 시도자전인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라는 전시회였다. 김용문 명장이 빚은 막사발에 시인들의 시가 새겨져 있는 작품을 전시한 것이다.

수원시인협회 김준기 회장은 "죽비를 한 번 치면 발우에 밥을 담고 두 번 치면 비운 발우에 숭늉을 받고 세 번 치면 합장과 읍으로 공양을 마치는 스님들, 스님들의 발우 공양에는 절차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네 공양에는 그런 격식이 없습니다. 대신 배고픈 이에게 보리밥이나 한 술 더, 임과 헤어진 이에게는 막걸리 한 잔 더, 마음을 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절차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막사발은 그런 이들의 발우입니다. 그릇의 틀을 잡을 때만 장인의 손길이 가고 나머지는 자연의 섭리가 있어야 빚어지는 작은 우주, 그릇은 옹달샘이 됩니다. 그 샘물 위로 빗방울이 듣고 꽃잎이 지고 달이 뜨고 때로는 눈물이 번지기도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행궁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다양한 막사발과 접시

행궁길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다양한 막사발과 접시


막사발의 세계적인 명장인 김용문 작가가 빚어 불의 숨결로 구워낸 그릇에 수원시인협회 회원들의 혼을 담아 수원에서는 처음으로 시도자전을 열고 있다고 한다. 불의 숨결에 시의 혼을 담을 때 그 샘물 위로는 어떤 꽃 그림자가 이우는지 누구의 노래가 물수제비를 뜨고 지나는지 함께 느끼고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시인의 말은 시처럼 아름답고 투명한 물처럼 담백했다.

행궁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다양한 막사발과 접시

행궁길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다양한 막사발과 접시


전시장을 둘러보니 수더분한 막사발이 묘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는 느낌이다. 형태와 크기가 제각각이고 색깔도 다양했다. 막사발의 크기에 따라 냉수를 마시면 적당한 크기, 국을 담을 수 있는 크기, 막걸리 잔으로 적당 한 크기 등으로 모두가 탐나는 그릇이었다.

막사발은 비취색으로 빛나는 청자나 순백의 백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대교약졸(큰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다)과 같은 느낌이다. 밥그릇, 국그릇, 막걸리 사발 등의 생활용 그릇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사발이라고 하는데 분청사기가 모태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찻잔으로 국보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행궁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다양한 막사발

행궁길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다양한 막사발


전시장에는 평소 친분이 있던 시인들의 작품도 몇 점 눈에 보였다. 전 e수원뉴스 김우영 편집주간의 작품은 '광교산 문암골' 중에서 '그곳에선 산이 나를 본다/ 나 대신 구름 한 점/ 푸른 하늘 가운데로 흘러간다/ 여기선 굳이 신색을 숨기지 않는다/ 그리하라니 그리 했다'와 '부석사 가늘 길' 중에서 '오늘은 무애(無碍)/ 스스로의 빛남/ 막을 길 없다' 등이 막사발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김준기 시인은 '내 속 좁은 건 나도 안다/ 두어라/ 더도 덜도 말고/ 내 소갈딱지만큼만/ 똑 고만큼만 해탈하련다'라는 작품과 '낙산 밤바다', '달맞이꽃' 등이 막사발에 새겨져 있었다. 김애자, 이춘전, 임병호 시인 등 30여 명의 작품이 막사발에 혼을 불어넣었다.

행궁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김우영 시인의 시를 새긴 막사발

행궁길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김우영 시인의 시를 새긴 막사발


김순덕 시인의 '어머니' 중에서 '빗소리 창가에서/ 촉촉이 울먹일 때/ 숨소리 여전히 가까이서 들리는 듯/ 꿈에나 볼 수 있을까/ 날 부르던 그 목소리', 고은숙 시인의 '훌훌 옷을 벗어 버렸다/ 거친 숨소리가 심장을 두드리고/ 다급하게 숨을 곳이 필요했다', 서순석 시인의 '손잡고 문 나서는 노부부 외출 길/ 서로가 기대 걷는 몸 지팡이 나들이 길/ 그동안 고생 많았어/ 남은 길은 동행길' 등은 접시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행궁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접시에 시를 새겼다.

행궁길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접시에 시를 새겼다.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첫째 형태미, 둘째 빛깔, 셋째 문양이다. 이런 관점에서 막사발은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14세기 후반경 청자가 퇴화하면서 나타난 것이 분청사기인데 민요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모습이 아주 서민적인 느낌이다. 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운 민간적인 분위기가 나온 것이다. 분청사기처럼 이토록 조형의 자유를 누린 서민 공예는 역사상 다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세계 공예 역사상 매운 드문 일이다.

행궁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접시에 담길 그 무엇이 기대된다.

행궁길갤러리에서 열린 '불의 숨결에 시(詩)의 혼(魂)을 담다' 전시회, 접시에 담길 그 무엇이 기대된다.


20세기 유명한 도예가인 영국의 버나드 리치는 '20세기 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이미 다했다. 우리는 그것을 목표로 해서 나가야 한다'라며 자유분방하고 아무 욕심 없이 만들어낸 분청사기는 현대적인 감각이 넘치는 도자기라고 찬사를 보냈다.

이런 분청사기의 맥을 이은 것이 막사발이니 막사발에 무엇을 담던지 불의 숨결이 생명의 숨결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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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문, 수원시인협회, 김준기, 행궁길갤러리,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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