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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같았던 ‘경기서적’에서의 박준 시인과의 만남 
우리는 모두 타인의 아픔을 수용하는 마음을 가졌기에 시를 쓴다
2023-06-30 09:52:09최종 업데이트 : 2023-06-30 09:52:08 작성자 : 시민기자   김소라
박준 시인과의 만남이 이뤄진 경기서적 행궁점

박준 시인과의 만남이 이뤄진 경기서적 행궁점

여름밤 한옥의 마당에 앉아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온기를 나누는 일은 운치있고 아름다운 일이었다. 지난 6월 28일 저녁 7시 30분 경기서적 행궁점 안마당에서 40여명의 시민들이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자 모였다. 박준 시인은 익산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역에 내려, 행궁동까지 택시를 탔다고 하면서 늦지 않게 강의에 도착하였다. 바쁜 스케줄이라고 하지만 여유있고 조용한 모습으로 찬찬히 시의 세계로 안내한 박준 시인의 화법에 빠져들었다. 

이번 행사는 '2023작가와 함께 하는 작은 서점 지원사업'으로 이뤄진 행사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하고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했다. 수원 지역서점 세 곳 경기서적, 마그앤그래, 낯설여관이 작가와 함께 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상주작가는 수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현호 시인이다. 

진행을 맡은 이현호 시인

진행을 맡은 이현호 시인



박준 시인은 시 몇 편을 함께 낭독하고, 당시 시를 썼던 배경과 마음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여행, 사랑, 아픔, 방송출연, 어린시절 등 자신의 경험이 시에 어떻게 녹아있는지 표현할 때 끄덕끄덕하면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첫 시는 '장마'라는 시였다. 박준시인의 첫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 실린 시이기도 하다.

'이 글이 당신에게 닿을 때쯤이면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새로 적었습니다'라고 쓴 마지막 구절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여름밤 운치를 더해 준 시간

여름밤 운치를 더해 준 시간



"태백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태백은 경유지가 아닌 종착지일 수밖에 없는 곳이에요. 태백은 태백을 가기 위해서 버스를 타요. 석탄도시였던 태백은 이제 3만 가구밖에 살지 않는 소도시로 쇠락했지만, 제가 받은 느낌은 민가가 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집의 복도에 세탁기와 냉장고가 놓인 풍경이 생경했거든요. 당당해보이기도 하고. 민가 옆에 폐가가 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느낌은 뭐랄까, 삶이 잘 안 될 때의 내가 잘 되었을 때의 나에 대해 후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사는 것과 살지 않는 것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할 때 여행간 곳이 태백이었는데, 다시금 살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온 것 같아요. 그리고 태백에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죠." 

박준 시인의 저서

박준 시인의 저서



시인의 언어는 애매모호한 듯 했지만 하고자 하는 말이 명료했다. 편지쓰듯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는 표현도 인상적이었다. "장마 같이 볼래?"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고백을 에둘러 하는 것이며 사랑의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편지쓰기를 잃어버린 시대에 박준이 시집을 통해서 독자에게 편지로 고백하는 듯한 시어가 설레기까지 했다. 두 번째 시는 '바위'였는데, 어린 시절 자주 올랐던 북한산에서 본 바위와 부처상을 소재로 썼다.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시쓰기 보다 더 하기 싫은 일을 한다는 시인. 그는 "안 써지는 시간을 끝내려면 안 쓰는 일을 멈추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어차피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사인을 하고 있는 '박준 시인'

사인을 하고 있는 '박준 시인'



'84p'라는 시에 관한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주었다. 바로 부산에 있는 한 국어 선생님께서 연락주신 사연인데, 학생들에게 '이 시는 어떤 책의 84p였는지 조사하라'는 숙제를 내주었다고 한다. 그러고 난 후 박준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책이 어떤 시의 84쪽이었는지 정답을 알려달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시인은 어떤 책의 구절이었는지 잊어버린 상태였다. 이러한 예화는 "시를 쓰는 것은 내가 잡고 싶은 한 문장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였다. 우리가 기억하는 아주 사소한 것, 아름답다고 느낀 순간을 쓰는 것이 시가 된다. 

한 시간의 강연 후 청중의 질의응답으로 계속 이어졌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시를 쓰는 시대에 시인은 어떤 존재인가요?", "여행 가서 모국어가 그리울 때 어떤 책을 주로 갖고 가시나요?" 등의 질문이 오갔다. 그 이후 한 시간 가까이 사인회가 이어졌는데 편지처럼 정성스럽게 사인을 해 주고, 사진을 찍은 박준 시인의 다정한 분위기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꼈다. 

박준 시인의 강연에서 배운 것은 '대체불가능한 것' 그리고 '기억하는 한 순간' 이다.

박준 시인의 강연에서 배운 것은 '대체불가능한 것' 그리고 '기억하는 한 순간' 이다.


이번 경기서적 박준 시인과의 만남을 개최하게 된 선국규 대표는 다음과 같이 인터뷰를 했다. 

"서점에서 행사를 많이 열고 싶다는 바램에서 경기서적 행궁점을 열게 됐어요. 앞으로 독서모임이나 다양한 문화강좌로 경기서적 문화센터 같은 것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행궁점은 운영상 주말에만 열고 있는데, 앞으로 독서모임이나 이곳 분위기와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퀄리티 있게 준비를 하고, 참가하는 분들도 소중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책이라는 재화를 통해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으로 기억되는 것이 제 바램입니다" 

우리가 사랑한 시인 <박준 시인과의 만남>

우리가 사랑한 시인 <박준 시인과의 만남>



이번 행사에 참여한 서수원에 사시는 진성숙 님은 "청주에서 살다 수원온지 1년이 채 안되었는데, 이런 문화행사는 정말 감동적입니다. 한옥에서 이런 행사를 참여하는데, 제가 그동안 수많은 여름밤을 잊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아리기도 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각자 '내가 나에게 잘 해 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떤 누구보다도 '나의 마음과 상황'이 중요하기에 스스로에게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라고 당부했다. 경기서적 행궁점의 다음 북토크는 7월 12일 '작별 곁에서'를 출간한 신경숙 작가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7월 강연은 신경숙 작가의 신간으로 마련되어 있다

7월 강연은 신경숙 작가의 신간으로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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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시인, 계절산문, 행궁동경기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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