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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예술공원에 6·25 전쟁 그림, 기억해야 할 역사
종군기자 김성환 화백의 스케치, 사진보다 더 선명해
2023-06-19 16:16:51최종 업데이트 : 2023-06-19 16:16:47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피란길에 오른 모습이다. 북한군 서울 진입이 코앞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전쟁이 시작하자마자 피란길에 오른 모습이다. 북한군 서울 진입이 코앞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인계동 예술공원 평화의 거리에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의 비극을 일깨워주는 전시물이 있다. '고바우 영감'으로 널리 알려진 만화가 김성환 화백이 6·25 전쟁 때 직접 보고 느낀 상황을 스케치한 그림 26점을 만날 수 있다. 
  그림 내용은 전쟁이 막 시작한 6월 27일 돈암동 근처 모습부터 있다. 그날은 비가 내리고 있었고, 시민들은 벌써 피란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군복에 소총을 든 청년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고 그렸다. 저녁 정릉의 동산에서 의정부 쪽을 바라보자 포성과 포연이 솟아났다. 이는 적이 가까이 오고 있다는 증거다. 6월 28일에는 공산군의 진입 모습을 그렸다. 전쟁 시작 사흘만이다. 돈암동 큰길가에 공산군 탱크가 트럭들 사이로 뜨문뜨문 굴러가고 있었다. 인공기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 내용으로 볼 때 서울에 공산군이 진입했는데, 숨어서 그린 것이다. 

전쟁 나흘째에 벌써 민간인 피해가 시작됐다. 시민의 피해 상황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전쟁 나흘째에 벌써 민간인 피해가 시작됐다. 시민의 피해 상황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공산군 진입 후 참상은 바로 시작됐다. 6월 29일 그림에 식량을 구하기 위해 월곡 쪽으로 가는 길가엔 포탄에 큰 구멍이 난 집과 무너져 내린 벽이 처참하게 보인다. 절규하는 남녀라고 제목만 간단히 써 놓은 그림 역시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는 시민의 모습이다. 뒷모습을 그렸지만, 집도 잃고 가족도 잃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전쟁 중에도 온 산은 가을 단풍으로 물들었다. 인간의 삶과 자연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상황이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전쟁 중에도 온 산은 가을 단풍으로 물들었다. 인간의 삶과 자연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상황이 더 비극적으로 다가온다.


  6월 30일에는 유엔군 전투기의 폭격을 봤다. 아내를 잃은 남성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한 그림도 가슴이 먹먹하게 한다. 9월 12일에는 개성까지 갔다. 전쟁이 한창인 고지에서 적진을 보는 풍경이 인상적이다. 가을 단풍이 들어 아름답게 보이지만, 귓전에 포성이 멈추지 않고 있다. 

 
서울 수복과 다시 1·4 후퇴. 밀고 밀리는 전쟁 상황에 시민의 피해만 늘어난다.

서울 수복과 다시 1·4 후퇴. 밀고 밀리는 전쟁 상황에 시민의 피해만 늘어난다.


  9월 28일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에 전쟁의 양상은 급변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되찾았다. 거리에는 부인네들이 "해방이 됐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 말을 들으며 돈암동 전찻길 쪽으로 걸어가는데, 미 해병대 세 명이 걸어오는 것을 본 할머니가 정신없이 뛰어가 그중 한 명을 얼싸안고 울부짖었다. 반가움의 표현이지만, 그만큼 전쟁의 공포가 컸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해가 바뀌고 1월 4일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남쪽으로 후퇴하는 상황이 시작됐다. 이렇게 일진일퇴를 거듭하는 전쟁의 상황을 김 화백은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화폭에 담았다. 
 
전쟁 중에 열악한 부대 환경이 짐작된다. 전쟁터는 죽음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병들은 계속 입영하고 있다.

전쟁 중에 열악한 부대 환경이 짐작된다. 전쟁터는 죽음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신병들은 계속 입영하고 있다.


  그림은 동네 거리 풍경에서 격전지 무명고지, 참호 입구까지 발전한다. 김 화백은 전쟁터를 붓과 물감을 들고 다녔다. 총소리, 대포 소리를 들어가며, 적의 눈을 피해 가며 그림을 그렸다. 사진보다 선명한 그때 그림이 이렇게 역사적 자료로 남았다. 실제로 그는 6.25 전쟁 때 육군 정훈국 소속 종군기자로서 전단(비라)과 포스터 등을 그려 국군의 사기를 북돋우는 역할을 했다. 

김 화백 그림 옆에는 국가 보훈부 선정 전쟁영웅들의 판넬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경찰, 군인 그리고 외국인도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들이다.

김 화백 그림 옆에는 국가 보훈부 선정 전쟁영웅들의 판넬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경찰, 군인 그리고 외국인도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한 영웅들이다.


  1951년 10월 29일 그림에는 사단본부 한쪽에서 중공군 포로들을 이송하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 기계총(피부병)에 걸린 포로들을 인솔하는 모습도 그렸다. 전쟁 중이니 개인위생을 챙길 수 없었다. 머리를 자주 감지 못했으니 기계총에 걸릴 수 있다. 전장 부대는 천막으로 돼 있다. 전쟁 중에 열악한 부대 환경이 짐작된다. 이런 가운데도 신병들은 계속 입영하고 있었다. 전쟁터는 죽음의 공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청년들이 트럭을 타고 태극기를 휘날리며 질주하고 있는 장면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아버지는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 딸은 다시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아버지는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 딸은 다시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예술공원 그림 주변은 전쟁의 폐허를 느낌이 나는 강판으로 '나라 사랑. 평화의 거리'라는 글도 새겨 놓았다. 그림 옆에는 국가 보훈부 선정 전쟁영웅들의 판넬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계급이 낮아도 국가를 위해서 희생하고, 이국땅에 와서 우방을 지키던 영웅들도 있다. 아버지는 독립을 위해 싸웠는데, 딸은 다시 나라를 지키다가 목숨을 잃었다. 영웅들의 공을 읽다가 보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예술공원 주변에는 현충 시설이 함께 있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정신도 기릴 수 있다.

예술공원 주변에는 현충 시설이 함께 있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정신도 기릴 수 있다.


  한국전쟁 중에 수원은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현재 구 부국원에서 '한국전쟁 기억의 파편'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매년 6월이면 이런 행사가 열린다. 예술공원 평화의 거리에서는 수원 이야기만이 아닌 한국전쟁의 참상이 영구히 서 있다. 이제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는 점차 드물어진다. 미래 세대는 전쟁의 비극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예술공원은 미래 세대를 위한 공간이다. 예술공원 주변에는 현충탑이 함께 있어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정신도 기릴 수 있다. 숭고한 애국정신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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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만화, 종군작가, 예술공원, 인계동, 현충탑,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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