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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독립운동 결사체 ‘서호 구국민단 결성지’ 탐방
조국에 몸 바친 숭고한 정신 길이 빛나리!
2023-06-08 15:09:19최종 업데이트 : 2023-06-08 15:09:18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현호
축만제와 여기산 풍경

축만제와 여기산 풍경
서호 호수 가는 길서호 호수 가는 길

 
지난 6월 6일 오전 10시, 서호(축만제)에 있는 독립운동 결사체 '서호 구국민단 결성지를 찾아 묵념하고, 독립운동 내용을 읽어보았다. 지리적으로 여기산과 서호, 항미정(杭眉亭)은 구국민단 활동에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했다.
 
현충일은 조국광복과 국토방위를 위해 싸우다 전사한 순국선열과 전몰 장병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정해진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는 1848년 8월에 정부를 수립한 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고, 1953년 7월 27일 휴전 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쟁 동안 137,899명의 국군이 전사했고, 국가는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1956년에 대통령령으로 6월 6일을 현충일로 정하고, 추모 행사를 하도록 하였다. (출처 :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서호 호수 풍경

서호 호수 풍경
축만제 둑길 풍경축만제 둑길 풍경
 서호 멋진 정자와 버드나무 풍경서호 멋진 정자와 버드나무 풍경

축만제는 1799년(정조 29년) 수원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길이 1,246척, 넓이 720척, 높이 8척, 두께 7.5척 수심 7척, 둑의 폭이 약 15m 규모로 축조되었다. 당시 전국 최대 규모로 조성된 큰 저수지다.
향미정 전면 전경

향미정 전면 전경
항미정 후면 전경항미정 후면 전경

 
축만제 둑 왼쪽 끝 수문 옆에 있는 항미정은 정자로 1831년(순종 31년) 당시 화성 유수였던 박기수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하였다. 박기수는 1831년 2월 21일 화성 유수에 임명되어 이듬해 1832년 대사헌으로 이임할 때까지 11개월 재임하면서 '항미정' 정자를 세웠다.
 
항미정은 1908년 10월 2일, 순종 황제가 기차를 타고 수원 능행을 하였을 때 융·건릉을 참배 후 돌아가는 길에 서호 임시정거장에 도착하여 축만제 둑길을 지나 항미정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서호(축만제)가 축조된 지 121년이 지나 1920년 6월 이곳에 독립운동 결사체인 '서호 구국민단 결성지'가 되었다. 역사의 흐름 속에 103년이 지난 2023년 6월 6일 현충일을 맞아 이곳을 찾아오니 감회가 깊다.
서호 구국민단 설명문을 보는 필자

서호 구국민단 설명문을 보는 필자


독립운동 결사체인 '서호 구국민단 결성지'는 축만제, 항미정, 여기산 일대로 학생들이 구국민단을 조직한 곳이다. 항미정 정자 앞 검은 비석에는 흰 글씨로 그 당시의 독립운동 활동내용이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

3·1운동 이후, 수원 출신 학생이었던 박선태, 이득수 등은 임순남, 최문순, 이선경 등 여학생들을 규합하여 1920년 6월 구국 민단을 조직하였다. 이들은 조선의 독립과 수감된 독립운동가의 가족 구조 등을 목표로 세웠다. 그러나 이들은 수원 일대에서 창가집과 독립신문을 반포하는 등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선전 활동을 하다가 일제에 발각되어 박선태, 이득수는 징역 2년, 이선경, 임순남, 최문순은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구국민단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던 인물은 박선태였다. 이선경이 같은 동네 출신인 박선태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여학생들을 이끌었다. 체포되었을 때 이선경에 대한 고문의 강도가 심했고 이 때문에 석방된 지 9일 만에 숨을 거두는 상황만 보더라도 이선경이 구국민단에서 핵심 임무를 수행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선경은 1920년 6월 서호 부근에서 박선태 등과 만나 수원 최초의 비밀결사 '구국 민단'을 결성하고, 임원으로 활동했다.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통학하는 지식인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매주 금요일마다 삼일여 학교(현 매향중)에서 만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활동을 알리는 내용을 수원지역에 배포하는 논의를 했다.
 
특히, 이선경을 비롯한 여학생들은 임시정부의 간호사가 되어 독립운동을 돕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러나 두 달여 만에 구국 민단의 활동이 발각되면서 이선경도 체포되고야 말았다.
 
이선경은 1921년 4월까지 140일간 구류됐는데, 심문 과정에서도 독립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석방된다면 다시 이 운동을 벌일 생각인지 묻는 일제에" 석방되어도 다시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싸우겠소"라고 답한 기록이 남아 있다.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이선경은 수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지 9일 만인 4월 21일 순국했다.
 
독립운동 결사체인 '서호 구국민단 결성에 참여한 이선경은 '수원의 유관순'으로 알려졌다. 꽃 같은 19세의 나이에 순국한 수원지역 여성 독립운동가다.
 
이선경은 순국 91년 만인 지난 2012년 3월 1일 건국포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수원시는 명예의 전당에 그 자랑스러운 수원의 여성 이선경을 헌액해 기억하고 있다.
 
깨끗한 환경을 위해 봉사하시는 모습

깨끗한 환경을 위해 봉사하는 시민
난초가 심어 있는 깨긋한 길 풍경난초가 심어 있는 깨긋한 길 풍경

 
항미정 일대에서 우연히 봉사하시는 아름다운 모습을 목격했다. 매일 오전에 화초를 가꾸며 길을 청소하는 권선구 서둔동에 사는 어르신 이용순 씨를 만났다. "바람이 불면 먼지와 나뭇잎이 떨어져 지저분하여, 십 년째 청소하고 있다. 화초를 길 따라 심어 놓으니, 비가와도 깨끗하다"라며 웃는다. 청소하고 있는 어르신에게 커피 한 잔을 전하는 동네 아줌마의 모습도 따사한 정이 흘렀다. 깨끗한 환경을 위해 말없이 봉사하시는 분에게 정말 감사하다.

구군민단 결정지 설명문을 보고 있는 수원 시민

구군민단 결정지 설명문을 보고 있는 수원시민

 
현재는 항미정 정자 앞에 작은 검은 비석에 그 당시의 독립운동 활동내용만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다. 독립운동 결사체인 '서호 구국민단 결성지'에, 그 당시 참여했던 분들의 독립운동 동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로서 조국을 위해 몸 바친 국가유공자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예를 표하는 기간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 치하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다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그리고 6·25 한국전쟁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몰군경 호국영령들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그분들의 숭고한 뜻을 가슴 깊이 되새겨야겠다.
 

<구국민단 결정지 항미정>
수원시 권선구 수인로 126
서호공원 주차장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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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 여기산, 항미정, 서호 구국민단 결성지, 이선경, 김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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