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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유수 납시오!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수원화성박물관 테마전
2023-05-22 09:59:39최종 업데이트 : 2023-05-22 09:59:31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수원화성박물관 테마전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수원화성박물관 테마전


지난 19일부터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수원유수 납시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회를 통해 수원의 역사와 수원유수부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8월 6일까지 계속된다.

정조대왕은 1793년 1월 12일부터 14일까지 수원부를 방문했다. 방문 첫째 날 수원부의 호칭을 화성으로 바꾸고 어필로 현판을 써서 장남헌에 걸었다. 부사를 유수로 승격시켜 장용외사와 행궁정리사를 겸임하게 하고 판관 한 사람을 두어 보좌하게 하였다. 장용영 병방을 고쳐 장용사라 하고 도제거를 두어 호위대장의 관청을 합해서 그를 소속시켰다. 특별히 좌의정을 지낸 판중추부사 채제공을 수원부 유수로 삼았다. 정조실록과 일성록의 기록이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신임 수원유수에게 병부를 인계하라는 전령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신임 수원유수에게 병부를 인계하라는 전령



천여 년을 이어온 수원이란 호칭이 화성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수원이란 호칭 대신에 '화성'이란 호칭을 썼다. '수원유수부'가 아니라 '화성유수부'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언어습관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화성보다는 수원이 입에 익숙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용어인 '화성'보다는 '수원'이란 호칭을 많이 썼다.

'한국고전종합DB'에서 '화성유수'를 검색하면 169건이 검색되는데 일성록에서 98건이 검색된다. '수원유수'를 검색하면 650건이 검색되는데 일성록에서 329건이 검색된다. 공식적인 기록에서도 화성보다는 수원이란 호칭을 4배가량 많이 사용했다. 이름을 바꾼 정조대왕조차도 수원이란 호칭이 더 익숙했던 것이다. 호칭의 혼란은 조선 후기 내내 이어졌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100여 년간 '화성'이란 호칭을 사용하면서 '화성'을 쌓았고, '화성행궁'을 세웠다. 1895년 5월에 화성유수부가 수원군이 되었다. 이때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1949년 수원군이 수원시로 승격하면서 화성군과 분리되었다. 수원시에 '화성'과 '화성행궁'이 남게 되었다. '화성'을 '수원화성'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마치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것과 같은 명칭에 대한 정체성의 혼란이 생긴 것이다.

'화성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화성유수 납시오!'라는 전시회 제목을 쓰는 게 정상적이지만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수원유수 납시오!'라고 할 수밖에 없는, 수원과 화성이 한 뿌리였다는 역사적인 내력과 정체성을 오롯이 알고 있어야 호칭의 혼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최초로 공개된 화성전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최초로 공개된 화성전도


이번 전시회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을 맞이해 정2품 수원유수의 위풍당당한 부임 행렬이 그려진 12폭 병풍을 비롯해 화성성역의궤, 원행을묘정리의궤, 한글 정리의궤, 화성원행 반차도, 화성행행 8폭 병풍 등 관련 유물을 소개하면서 수원유수부 승격의 의미와 수원유수의 지위와 역할을 조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수원유수부 설치', '지방관의 부임과 환영행사', '수원유수의 부임과 군사훈련' 등 3부로 구성했다. '1부 수원유수부 설치'에서는 정조대왕이 1793년 1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 참배를 위해 수원에 행차해 수원도호부를 유수부로 승격시키는 명령과 이후의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초대 수원유수로 좌의정을 지낸 채제공을 임명해 수원유수부의 기틀을 다지게 하였고 수원화성 축성 등 대업을 앞두고는 어영대장을 지낸 조심태를 3대 수원유수로 삼아 원활한 수원화성 축성, 수원유수부의 성장과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화성행행 8폭병풍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화성행행 8폭병풍


'2부 지방관의 부임과 환영행사'에서는 조선시대 관료들이 지방관에 부임하는 부임 행렬, 관련 행사 등을 사실적으로 기록한 그림을 조명한다. 가장 유명한 지방관인 평안감사의 부임과 화려한 환영잔치 등이 묘사된 '평안감사향연도'가 압권이다.

'3부 수원유수의 부임과 군사훈련'에서는 12폭 병풍인 화성전도를 통해 조선후기 행정적, 군사적 요충지로 부상한 수원유수부를 배경으로 각종 깃발 등 의장물을 앞세운 수원유수의 부임 행렬과 군사훈련 장면 등을 소개한다. 정조 이후에도 왕들의 수원행차는 계속되었기 때문에 수원유수의 특별한 임무는 1895년 수원유수부가 폐지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최초로 공개된 조심태 초상화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수원유수부 승격 230주년 기념 테마전, 최초로 공개된 조심태 초상화



최초로 공개된 '화성전도' 그림 한 점과 조심태 초상화가 필자의 시선을 끌었다. 특히 '화성전도'는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중족자를 이모한 것인지 밝혀야 할 숙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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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유수, 화성유수, 수원화성박물관,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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