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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성곽 군사지휘소 고찰
서장대 군사지휘소와 동장대 훈련소는 군사적 과학적 표본
2023-05-01 14:40:32최종 업데이트 : 2023-05-01 14:40:26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현호
서장대 가는 길 멋진 이정표

서장대 가는 길 멋진 이정표

 
지난 4월 26일 수원 화성의 서장대와 동장대(연무대)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112번 버스를 타고 행궁 정거장에서 내려서 십여 분 언덕길을 걸어 서장대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효원 약수터와 가파른 계단도 푸른 봄과 어울려 아름다웠다.
 성곽길에서 바라본 장안문 전경

성곽길에서 바라본 장안문 전경


성곽길을 따라 서장대, 화서문, 장안문, 북수문(화홍문), 동장대(연무대)까지 현지의 지형과 지형지물, 구조물 등 군사적, 과학적 측면에서 '화성성역의궤'의 기록과 필자의 군사적 경험을 토대로, 성벽과 각종 군사시설을 고찰(考察)하여 분석해 보았다.

서장대 전경

서장대 전경
서장대 설명문

서장대 설명문

 
'서장대'는 수원화성에서 팔달산 중앙의 높은 위치에 있어, 지휘 통제에 적합한 자리다. 정조대왕은 1795년 수원 행차 넷째 날인 윤 이월 12일 서장대에 올라, 장용영 외영(壯勇營 外營)의 군사훈련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튿날 새벽까지 시행한 군사훈련을 참관한 후 정조는 군사들을 칭찬하고 견고하게 화성성곽에 대해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날의 훈련을 기념하고자 친히 시를 짓고 이 시를 현판에 새겨 서장대 문 위에 걸도록 하였다.

 '화성장대', 시 현판

'화성장대', 시 현판

 
현륭원 호위 중대하지만
세금과 노역 쓰지 않았네
성곽은 평지를 따라 둘러있고
먼 하늘 기댄 장대는 높다랗구나
많은 성가퀴는 구조 굳건하고
군사들 의기가 호기롭네
대풍가 한 곡조를 연주함에 
붉은 햇살이 갑옷을 비추는구나
 
서노대 전경

서노대 전경

 
서장대의 좌측에는 서노대, 우측에는 서 2치가 있다. 서노대는 기계적 활인 노를 쏘기 위해 높게 지은 시설로 군사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서노대는 서쪽 일대를 한눈에 들어오는 팔달산 꼭대기에 있어 적을 감시하기에 적합하다.


서 2치 전경

서 2치 전경

 
서 2치는 서포루와 서암문 사이에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서 2치는 팔달산 정상으로 향하는 급한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어 규모가 작다. 그런데 건물이 없는 진지다. 노출이 안 되어 적에게 기습 공격이 가능한 진지로 추정해 본다.
 
동장대 전경

동장대 전경

 
'동장대'는 장수가 군사훈련을 지휘하는 곳으로 연무대(鍊武臺)라고 불린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지휘 훈련소로 썼다. 논산훈련소를 연무대라고 부은 것과 같은 맥락이다.

동장대 설명문

동장대 설명문
기와 단장을 꾸민 영롱장(玲瓏牆) 전경

기와 단장을 꾸민 영롱장(玲瓏牆) 전경

 
동장대는 대지 전체를 3단으로 나누고 마당 한가운데에 장수가 말을 타고 오를 수 있도록 경사로를 만들었다. 건물은 본래 전면은 개방하고 나머지 삼면은 벽이나 창문을 단 형태였으며, 가장 안쪽에 온돌방 한 칸이 있었다. 건물 뒤쪽으로는 수키아로 단장을 꾸민 영롱장(玲瓏墻)이 있다.
 
동장대는 야외 훈련장으로, 군사교육은 이론교육, 시범 및 실습, 숙달훈련 등으로 진행되는데, 강의와 시범 등을 위해 전면만 개방한 건물로 군사교육장으로 추정해 본다.
 
동북공심돈 전경

동북공심돈 전경

동장대 우측에는 '동북공심돈'이 있다. 화성 동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성벽 안쪽에 설치하여 외벽에는 밖을 감시하고 화포로 공격할 수 있는 구멍이 있다.

동북공심돈 설명문

동북공심돈 설명문

 
건물은 3층으로 이루어진 원통형의 벽돌 건물로서 통로를 따라 빙글빙글 올라가면 꼭대기 망루에 이른다. 따라서 '소라각' 이라고도 부른다.
  
정조는 동장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내려주는 호궤(犒饋) 행사를 베풀었다. 화성축성이 마무리되던 시기인 1796년 8월 19일, 감독관과 일꾼 등 2,700여 명이 호궤에 참여했다.

1797년(정조 21년) 정월 좌의정 채제공은 동북공심돈을 올라가 본 뒤 "층계가 구불구불하게 나 있어 기이하고도 교묘하다."라고 감탄했다. 6.25 전쟁 때 절반 이상이 무너져 1976년에 제모습을 찾았다.
 
군사지휘소와 연무대는 경계와 방어에 취약하다. 고지의 지형을 고려하여 서장대에는 좌우에 서노대와 서 이치를 설치하여 경계, 방어, 공격을 할 수 있는 시설을 설치하고, 동장대에는 평지인 지형을 고려 높은 곳에서 감시와 공격을 할 수 있는 동북공심돈을 설치하여 감시, 방어, 공격태세를 갖추었다.
 
성곽길에서 공안을 통해 성 밖을 보는 관광객 모습

성곽길에서 공안을 통해 성 밖을 보는 관광객 모습

 
성벽에 설치된 구조물이 밖을 볼 수 있는 형태가 다양하다. 밖의 동태를 감시하는 공안(空眼)과 총을 쏠 수 있는 총안이 설치되어 있다. 특히 총안은 외부의 지형을 고려하여 각도가 없는 직선 총안과 하단을 조준할 수 있는 현안으로 구분하여 만들었다. 하나하나가 군사적이고 과학적이다.
 
화성행궁은 고궁의 정취와 색다른 운치, 눈부신 예술성과 아름다운 경관, 알면 알수록 매력이 넘친다. 240여 년 전에 궁궐과 같은 행궁을 수원에 건축하고, 군사지휘소와 사대문이 있는 성곽을 건축했다는 것은, 효심의 힘인가 생각해본다. 길이길이 아름답게 보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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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화성 성곽, 서장대, 동장대, 장용영 외영, 김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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