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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를 빛낸 이병희 선생 유적 답사
만석공원, 만석거 조망이 가장 좋은 양지바른 곳에 동상 세워져
2023-05-01 15:10:43최종 업데이트 : 2023-05-08 14:29:28 작성자 : 시민기자   홍명후

만석공원에 있는 이병희 선생 동상

만석공원에 있는 이병희 선생 동상


지난 30일 4월 마지막 끝자락에 필자는 장안구 송죽동 소재 만석공원 둘레길을 시민들과 함께 산책했다.

 

평소 같으면 체력 단련을 위한 산책에만 집중했을 텐데, 공원을 산책 하면서 만석거 화장실 근처를 둘러보니 장안구청의 공원녹지과에서 수고한 덕분에 공원의 잔디가 잘 조성 되었고 계절만큼이나 영산홍 꽃들이 만개하여 아름다웠다. 또한, 나무들도 신록의 빛을 내면서 너무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그곳을 지나치다 보니 만석거 조망이 가장 좋은 양지바른 곳에 있는 이병희 선생의 동상을 접하게 되었다.
 

만석거를 바라보는 이병희 선생 동상

만석거를 바라보는 이병희 선생 동상


만석공원에는 많은 인사들의 기념식 수 표석은 있지만, 인물 동상은 유일하게 이병희 선생 동상 하나뿐이다.

동상을 좌우 뒷면을 유심히 살펴보니 비문에 그의 이력과 동상을 세운 배경 등이 새겨져 있다. 수원을 위해 많은 일을 했고, 빛낸 업적이 인정되어 동상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이곳에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공적 내용을 보면서 필자도 공감이 가는 분야가 많았다.

 

만석공원은 1998년에 조성된 공원으로 만석거(萬石渠)라는 저수지를 중심으로 하는 공원이다. 넓이는 5,800㎡(약 1,750평)이다. 만석거는 1795년 정조대왕이 수원화성을 쌓으면서 인근에 입주한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만든 저수지이다. 이 저수지가 축조되어 쌀을 1만 석이나 생산하였다고 해서 만석거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과거는 일왕저수지 또는 교귀정 방죽이라고 불렸지만, 현재는 시민공원인 만석공원이라고 한다. 교귀정이라는 이름은 저수지 남쪽에 교귀정(交龜亭)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부르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1996년 10월에 건립한 영화정(迎華亭)이 들어서 있다.

신록의 아름다운 만석거 전경

신록의 아름다운 만석거 전경


이병희(1926~1997) 선생은 용인에서 태어났다. 그는 삼일 중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8기(대령 예편)로 졸업했다. 수원지역 국회의원 7선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경기도청 수원 유치추진위원장을 역임했고, 대한농구협회장, 아세아농구연맹 회장, 세계농구연맹 부회장을 역임했다.

 

이병희 선생 비문에는 "동산건립에 뜻을 같이하는 수원시민, 각계각층의 성원을 모아 1999년 5월 12일 이병희 선생 동상 건립추진위원회를 결성, 동상 건립을 추진하여 2000년 5월 19일 제막식을 했다"라고 표시되었다. 그리고 전면 글씨는 고인의 오랜 동지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재임 때 썼고, 동상은 조각가 강대철 선생이 제작했다고 새겨져 있다.

잘 조성된 공원녹지 모습

잔디 보식으로 잘 조성된 공원녹지 모습

수로 등 잘 정비된 공원녹지 모습

연못 등 잘 정비된 공원녹지 모습


이병희 선생의 생애를 기리는 비문 내용과 그의 업적은 "열정이 없는 사람은 선인도 악인도 되지 않는다. 수원의 역사에서 한 시대를 꿰뚫어 본 정치인 그는 수원 사랑의 열정으로 생애를 일관한 이병희 선생"이다.

 

그는 1963년 38세에 수원에서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7선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그는 삭발 투쟁하며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려던 경기도청을 수원으로 유치했다. 삼성전자, 선경합섬, 연초제조창 등도 수원으로 유치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성균관대 수원 캠퍼스 유치에도 그의 역할이 컸고, 화성 성곽 복원에도 이바지했다. 지금 수원이 경기도의 수부도시, 한반도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이병희 선생의 역할을 빼고 얘기하기 어렵다.

 

그리고 비문 끝에 "역사의 지평선 수없이 세워진 이정표 이것은 선각자의 고독한 발길을 기리는 한 조각의 돌일 뿐 그것을 음미하는 마음속에 역사는 밝은 내일을 기약한다"라고 되어있다.

영산홍 꽃들이 만개한 아름다운 공원 둘레길

영산홍 꽃들이 만개한 아름다운 공원 둘레길


공원서 만난 수원에서 50년째 오래 살고 있는 70대 시민(송죽동)은 이병희 선생을 기억하면서 그는 시대를 잘 만난 정치인으로서 오랜 기간 수원시에서 정치 생활을 하면서 기업을 수원에 유치하여 수원 경제발전을 위해 큰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의 동상이 이곳에 세워진 것에 대해 그만한 공로가 있는 인물이라고 인정을 했다. 특히 그의 업적 중 수원과 인천이 경기도청 유치경합을 벌일 때 수원으로 유치성공은 수원시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고 덧 붙혔다.

 

이러한 정치인이 있었기에 오늘날 수원시가 경기도의 수부도시가 되었고, 특례시로서의 면모를 갖춘 문화도시로 성장의 원동력이 된 것이 아닐까,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이병희 선생의 공과(功過)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만석공원에 유일하게 세워진 동상의 인물 이병희 선생은 오직 수원시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정치인이라고 기억하는 시민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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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장안구청, 만석공원, 만석거, 이병희의원, 홍명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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