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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앞 광장에 세워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
5월 27일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에 앞서 세워
2023-04-28 09:43:15최종 업데이트 : 2023-04-28 08:02:39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5월 27일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화성행궁 앞 광장에 세워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형

5월 27일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화성행궁 앞 광장에 세워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형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울긋불긋했던 팔달산이 온통 초록색이 되었다. 화성행궁을 포근하게 안고 있는 분위기이다. 앞으로 넓게 펼쳐진 광장은 역동적이다. 수원화성이나 화성행궁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소통하면서 교차하는 공간이다.

화성행궁 앞 광장에 바람이 분다. 어디선가 그윽한 풍경 소리가 들려온다. 풍경 소리를 따라가니 장대한 탑이 서 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형이다. 5월 27일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에 앞서 수원특례시와 수원시 연등회 보존위원회에서 세운 것이다. 지난해에는 경주 불국사 대웅전 앞 서쪽에 세워져 있는 삼층석탑인 석가탑 모형을 세웠었다. 몇 년 전에 세웠던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이 인상적이었다. 네 마리의 사자가 탑신을 떠받치고 있는 독특한 형태로 경주 불국사 다보탑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특수형 석탑으로 유명하다.

5월 27일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화성행궁 앞 광장에 세워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형

5월 27일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화성행궁 앞 광장에 세워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형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미륵사에 있던 탑이다. 미륵사는 무왕(600-641) 대에 창건한 사찰로 고구려의 정릉사, 신라의 황룡사와 함께 삼국시대 최대 규모의 사찰이었다고 전해진다. 미륵사는 전형적인 1탑 1금당의 백제식 가람배치와는 달리 3탑 3금당으로 배치한 독특한 형식의 사찰이었다. 중앙 본원에는 60여m 높이의 거대한 목탑을 세웠고 동서 별원에는 목조건축을 모방한 석탑을 세웠다. 미륵사지 석탑은 수만 장의 돌로 짜 맞춘 목탑형식이며 세 개의 석탑 중 서쪽에 자리한 탑으로 우리나라 석탑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창건 시기가 명확하게 밝혀진 석탑 중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국보이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미륵사의 정면관(파사드)은 목탑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 석탑을 협시보살처럼 거느린 안정되고 권위 있는 삼각형 구도를 갖추게 되었다. 이것이 미륵사 가람배치의 특징이자 석탑 탄생의 기원이다"라고 소개했다.

화성행궁에서 바라본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형, 한쪽은 교회 한쪽은 여민각이 보인다.

화성행궁에서 바라본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형, 한쪽은 교회 한쪽은 여민각이 보인다.



미륵사는 조선 초에 폐사지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조건축물이 모두 불타 없어졌을 때도 석탑은 남아있었지만, 언제인지 동탑은 완전히 무너져 주변에 석탑 부재만 널브러져 있었고 서탑은 6층까지만 남아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서탑의 서쪽이 무너져내리자 일제는 거대한 시멘트 벽체를 설치해 무너지는 것을 막았지만 일제의 무지막지한 보수는 석탑의 서쪽을 흉물스럽게 만들었다. 다만 동쪽 면의 6층까지는 원래 모습이 온전해 백제 건축의 구조적 특징과 세련미를 볼 수 있었다.

미륵사지 석탑이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 양식이라는 사실은 고유섭 선생이 밝혔다. "미륵사탑이 부여 정림사 오층탑으로 정리되고 이것이 신라의 의성 탑리 오층석탑으로 전파되어 통일신라의 감은사탑과 불국사의 석가탑으로 발전해 갔다"고 했다.

화성행궁에서 바라본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형, 밤에 봐도 멋스럽다.

화성행궁에서 바라본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모형, 밤에 봐도 멋스럽다.



미륵사지 석탑은 목조건축을 철저하게 모방한 석탑이므로 목조건축의 아름다움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장대한 크기이면서도 단아함이 있고, 기둥석의 민흘림 기법과 귀솟음 기법의 비례감, 높아지면서 안정감을 주는 체감률, 맵시 있는 추녀에서 백제예술의 우아하고도 세련된 모습을 볼 수 있다.

1992년 동쪽 석탑 복원을 추진했는데 제대로 된 고증 없이 2년 만에 완성된 탑은 문화재적 가치가 없는 실패작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유홍준 교수는 "막상 복원된 동탑을 보니 그것은 완전히 시신 같은 건물이었다. 뽀얀 돌 빛은 시체보다 더 창백한 빛깔로 변했고, 반듯한 느낌의 예각은 싸늘한 날카로움으로 변했으며 거대한 양괴감은 둔중한 느낌으로 변했고, 정확한 비례감은 고지식한 면 비례로 변했다"고 한탄했다.

미륵사지 석탑 앞에서 바라본 화성행궁 광장

미륵사지 석탑 앞에서 바라본 화성행궁 광장



2011년 문화재청은 미륵사지 석탑을 일제가 콘크리트로 보수하기 이전의 모습으로 복원하기로 결정하고 복원에 들어가 2018년 6층까지만 복원해 일반에 공개했다. 문화재 복원의 진정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이번에도 9층까지 복원했다면 현대 석공의 창작품이 되는 것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동서 쌍탑이며 9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화성행궁 앞 광장에 세워진 미륵사지 탑은 6층만 남아있는 서탑이 아닌 동쪽 석탑으로 9층 탑 모형이다. 미륵사지 탑을 보면서 삶의 여유를 가져보고 나만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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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광장, 익산 미륵사지 석탑, 부처님오신날,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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