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대에 새겨진 '지지대'는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2015-09-23 17:15:16최종 업데이트 : 2015-09-23 17:15:16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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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와 의왕시의 경계 지점에 위치한 고개이며 수원으로 들어오는 관문이기도 한 지지대고개는, 정조대왕과 얽힌 전설같은 얘기가 전해지고 있는 유서깊은 장소지만, 세월이 흐르고 1번 국도를 건설하며 지지대고개를 깎아 내리는 과정에서 지지대 관련 유물은 1807년에 세워진 지지대비와 하마비만 남게 되었다. '지지대'라 새긴 대 지지대비 오르는 계단 1950년대 찍은 지지대 사진 지지대비 이쯤 되면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리송하다. 알기쉽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원래 고개이름인 사근현에서 미륵현으로 다시 지지현으로 고친 것이며, 왕의 행차가 지지현에 당도할 때면 행차가 멈추고 오래도록 떠나지 못해 그곳을 지지대라고 명명한 것이다. 미륵현 위쪽에 왕이 앉은 자리를 빙 둘러 대(臺)처럼 되어 있는 곳을 지지대라 명하고 축대에 '지지대'를 새기게 한 것이다. 고개마루에 '지지현 표석', '장승', '지지대 표석', 10여보 아래에 '지지대 축대'가 동시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1807년에 지지대비와 하마비가 세워졌고 현재 지지대고개에 가면 그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지지대비와 하마비 뿐이다. 그런데 지지대비를 답사하다보니 도로에서 지지대비로 올라가는 계단에 '지지대'라고 새긴 축대가 계단 아래쪽에 보인다. 1950년대 지지대비 사진을 보니, 첫 번째 계단에 '지지대'라 새긴 것이 보이고, 좌측에 하마비가 보인다. 축대에 새긴 '지지대' 글씨와 현재 지지대비 올라가는 계단에 있는 '지지대' 글씨는 같은 것으로 보이며, 해서체로 쓴 글씨를 자세히 보면 정조대왕 당시의 풍모가 보이는 것으로 봐서 정조대왕 때 새긴 '지지대'란 생각이 들었다. 글씨 감정을 위해 대한민국의 대표 서예가중 한분인 근당 양택동(한국서예박물관장)선생께 문의를 해보니 정조대왕 당시의 조윤형 글씨로 추정된다고 한다. 조윤형은 화성행궁의 '신풍루', '낙남헌', '봉수당' 현판글씨를 썼으며, 수원화성의 '장안문'. '팔달문', '방화수류정' 등의 현판글씨를 쓴 당대의 서예가였다. 도로를 낼 때, 혹은 지지대비에 올라가는 계단을 쌓을 때 축대를 계단에 끼워넣은 것으로 보이는데, 현장에서 실제 계단의 사이즈를 보면 알 수 있다. 정조대왕의 현륭원 행차길 중요 지점마다 세운 18개의 표석 중 5개만 현존하고 있으며, 수원시향토유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지지대' 축대 표석도 고증을 거쳐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면 수원시향토유적으로 포함시켜야할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지현 표석', '장승', '지지대 표석'은 없어졌지만 '지지대'란 축대만이 쓸쓸히 남아서 정조대왕의 효심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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