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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천을 걸으면 수원의 속살이 보인다
수원화성박물관에서 공군비행장앞까지 6km
2012-06-08 02:15:44최종 업데이트 : 2012-06-08 02:15:44 작성자 :   

한달 전, 수원천 상류 지점인 광교저수지부터 지동시장까지 약 7km를 걸으며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거리를 기웃거렸다. 오늘은 수원천의 하류인 수원화성박물관에서부터 공군 비행장앞까지 약 6km를 걸어본다. 

시작은 수원화성박물관이며, 남수문 -> 복개구간...수원천 -> 새마을교 -> 한하운시인 보리피리 시비-> 세류대교 ->수원막걸리, 옛 수인선세류공원 -> 공군비행장 앞 순이다.

수원천을 걸으면 수원의 속살이 보인다_1
수원천을 걸으면 수원의 속살이 보인다_1

▲ 화성에 대한 모든 것 수원화성박물관 

6월이지만 벌써부터 한 여름 뙤약볕이 기승을 부린다. 그나마 물가를 걸으니 다행이지 위쪽 아스팔트길을 걸었다면 아리랑 가사처럼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나네' 였을거다.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수원천 전 구간을 통틀어 꼭 방문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던 장소인 수원화성박물관 앞에 섰다.

화성(華城)을 빼 놓고 수원을 말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화성은 팔달산 아래에 임금이 거처할 수 있는 행궁을 앉히고 주위 약 5km를 돌로 쌓아 올려 방어막을 쳤다. 수원천 일부 구간을 품에 안았고 주변 낮은 구릉들을 이용했다. 1796년도에 완성을 했으니 200여년이 조금 넘은 세월, 1997년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그 화성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곳이 바로 수원화성박물관이다.
건물은 화성의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봉돈과 공심돈의 매력도 풍긴다. 야외전시장에는 당시 성곽을 쌓을 때 사용했던 거중기 등을 재현해 놓았다. 커다란 유리로 장식된 1층은 기획전시실과 어린이체험실이 있으며 2층으로 올라가면 화성을 쌓을 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은 화성축성실과 정조의 '8일간의 행차'때 거행한 다양한 행사와 군사개혁의 핵심인 장용영 등을 소개한 화성문화실을 만나게 된다.

여러 번 왔더라도 샅샅이 둘러보는 것이 좋다. 매일 와도 또 새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눈여겨 볼 전시물은 1층 중앙 홀에 있는 화성모형도다. 모형도를 보면 수원천이 화성의 중심축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뼈대처럼, 동맥처럼 뚜렷한 모양새로 화성을 대표하는 자연물로 자리하고 있다. 수원천의 위상을 가늠해 보는 유용한 조형물이다.

일반적인 박물관이 좀 고리타분하다는 인상을 받기 십상이지만 화성박물관은 생동감이 넘친다. 박물관 주위 야외공연장에서 열리는 국악연주, 색소폰연주, 무용 등 다양한 공연들이  박물관을 떠받치고 있기에...

▲ 90년 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남수문

박물관을 나와 다시 수원천을 따라 걸으면 곧바로 눈앞에 다가오는 것은 남수문이다. 1922년 대홍수로 유실된 것을 최근에 복원했는데 잃어버린 90년의 세월을 모두 담았다. 시간의 이끼만 붙는다면 또 하나의 명소가 될 것은 분명했다.

수원천을 기준으로 보면 남수문은 성곽안쪽을 흐르던 물과 이별하는 장소다. 그래서 물이 들어오는 화홍문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화홍문에서의 수원천은 다소 어색해 수줍음으로 마음을 열지 못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일곱 개의 수문으로 맞이한다. 하지만 남수문은 두개 더 많은 아홉 개의 문으로 수원천과 이별한다. 두 개 더 많은 수문은 바로 정(情)이다.

남수문의 복원은 수원천에게 남다를 뿐만 아니라 그동안 홀로 외롭게 서 있던 동남각루에게도 좋은 친구가 된다. 화성을 자주 와 본 사람이라면 남수문에 올라 동남각루를 다시 바라보길 권한다. '동남각루가 남수문 때문에 살았네?'라는 표현을 실감하게 된다.  

끊어진 성곽을 한 발 더 잇고 정 들었던 수원천과의 이별 앞에 예를 갖추며 동남각루의 친구가 된 남수문, 괴나리봇짐 메고 100리길 서해바다까지 가는 수원천은 남수문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90년 만에 복원된 남수문 난간에 앉아 이런 상상 저런 생각하다가 물 따라 다시 발길을 옮겼다.   

수원천을 걸으면 수원의 속살이 보인다_3
수원천을 걸으면 수원의 속살이 보인다_3

▲ 18년 만에 뒤주의 문을 열고 하늘을 보게 된 복개구간 800여 미터

남수문을 지나 수원천을 걷게 되면 역사의 현장을 걷고 있는 듯 한 느낌을 받게 된다. 상류에서부터 걸어왔다면 여기서부터 일정 구간은 다소 이질적인 풍경들이 펼쳐진다. 다리의 모양새, 하천의 벽과 돌다리, 간간히 설치된 무대도 그동안 봐 왔던 풍경과는 다르다. 최근에 복원된 구간이기 때문이다.

매교에서 지동교까지 약 800미터는 지난 1994년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교통체증과 주차난 해소, 천변 환경을 개선한다는 구실로 콘크리트로 복개해 버렸는데 이후 이곳은 캄캄한 어둠속에서 18년 동안을 지내왔다.

그런데 이 구간을 걸으면 사도세자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그날 뒤주의 문은 굳게 닫혔다. 갑자기 칠흑 같은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살려 달라 외쳐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몸은 점점 말라가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 결국 뒤주 속에서 생을 달리하고 말았다.

우리는 18년간, 수원천이 살려달라는 외침을 외면하고 뒤주의 뚜껑을 닫아버렸다. 조금만 더 복원을 늦췄더라면 사도세자처럼 매교에서 지동교까지의 구간은 영원히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하늘의 태양을 본다. 이 구간에서의 햇볕은 다른 곳의 햇볕과는 분명 다른 존재다.

▲ 새벽종이 울렸네의 그 새마을교?

복개됐던 구간을 지나면 곧바로 '새마을교'를 만나게 된다. 7080을 연상케 하는 이름이다. 원래 이 다리는 징검다리로 매교 주민들이 매교시장을 왕래하거나 학생들의 통학로로 이용됐는데 1980년대 중반 새마을 사업의 일환으로 가설되면서 이름도 새마을교가 됐다고 한다.

야릇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다리, "저곳에 새마을 깃발을 꽂아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바라본 수원천은 또 다시 키보다 훨씬 큰 갈대를 키우고 있다. 상류에서 익히 봐 오던 살가운 풍경이다. 

이곳에서부터 수원천은 살며시 폭을 넓히고 있다. 먼 길을 떠나기 위해 쉬엄쉬엄 가고자 함인지 아니면 상류에서부터 내려오면서 결혼하고 자식들을 하나 둘 낳았기 때문인지 폭은 넓어지고 물은 더 많아졌다.

이 부근은 겨울철이면 썰매장으로 변해 아이들을 부르는 곳이다. 물론 정확한 장소는 다음 다리인 매세교지만 짚신과 고무신처럼 '새마을교와 썰매장'은 묘하게 어울려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단어들의 조합이라 여겨진다.

수원천을 걸으면 수원의 속살이 보인다_4
수원천을 걸으면 수원의 속살이 보인다_4

▲ 보리피리 불면서 한하운시비

매세교를 지나면서부터 하천변도 넓어진다. 그리고 그 하천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곳에는 온갖 꽃들이 피었다가 지고 또 다시 피고를 반복하고 있다. 개나리를 시작으로 참으로 다양한 꽃들이 이곳을 찾는다. 

지금은 한창 장미물결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형형색색의 튤립이 융단처럼 깔려있던 곳이다. 지난 2007년부터 권선구에서 튤립을 심고 가꿔 축제를 벌이는 장소가 이곳이다. 근사한 곳에서나 만날 수 있는 꽃으로 여겼던 튤립이 장관을 이루던 곳. 이 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이 구간은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리리.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다.

유난히 보리가 많이 있었다. 누군가 보리밭을 일부러 만들어 놨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시비를 발견했다.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자칫 지나쳐 버릴 수도 있었던, 한쪽 편에 조용히 서 있던 돌.

'1948년에 월남, 1949년 세류동의 정착촌인 하천가에 살았다. 1950년 부평에 있는 나환자촌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수원천변에 머물다간 시인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하여 보리피리 시비를 세운다. 2011년 5월 28일'

보리 하나를 꺾었다. 그리고 피리를 불어봤다. 피-ㄹ닐리리. 수원천변을 거닐며 그가 불었을 것 같은 보리피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상류에서 느끼지 못한 수원천 하류의 또 다른 모습들. 하천이 넓어지고 물이 무디게 흘러가면서 마음에는 또 다른 것들이 자리하게 된다.

그것은 세류대교 좌우에서 만나게 되는 수원막걸리와 옛 수인선 철로에서 더욱 커지고 깊어진다.

▲ 옛 수인선의 자취 수인선세류공원

세류대교 부근에서 잠시 발걸음을 하천 둑으로 옮겼다. 좌측으로 들어가 골목길로 접어들면 100년 전통의 수원막걸리 양조장. 막걸리 한통을 검은 봉투에 담아 들고 다시 세류대교를 넘어 옛 수인선 철로 자리에 만들어진 수인선세류공원으로 향했다.

옛 수인선은 1974년 전철 1호선이 개통 되기 전 1937년부터 수원에서 인천 소래 포구를 왕복하던 협궤열차로 42석의 동차 몇 량을 달고 코스모스 활짝 핀 들판을 달려 서해안 바다를 향해 달리다 1995년 멈춰 섰다

그렇게 멈춰선 곳에 시는 전국 최초 폐철도부지를 활용한 터널식 공원을 조성했다. 300여 미터 구간에 양쪽으로 빼곡히 조경수를 심어 수목터널을 형성했다. 바닥에는 옛 철로 모양으로 보도블록을 깔았으며 가로수 아래에는 군데군데 등의자가 놓여있다.

보리밭 사이에서 보리피리를 불고 온 탓일까? 아니면 100년 전통이라는 수원막걸리를 한 병 사들고 와서일까? 수목터널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먼발치에서는 금방이라도 열차가 기적을 울리며 달려올 것만 같다. 

수원천 상류에서 광교저수지 둘레길이 가장 아름다웠다면 하류에서는 옛 수인선세류공원길이 가장 아름답고 걷고 싶은 길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공원끝 대로변을 지나 길 건너 언덕에 동네 주민들이 밭으로 이용하고 있는 옛 철로길을 찾아가 보길 권한다.

녹슨 철로, 썩어 너덜너덜한 침목, 그 사이에 심어진 밭작물. 그렇게 헝클어져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철로를 만나봐야 길을 걷는 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철로를 따라가면 할머니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녹슨 철로길 하나가 수십 년의 추억을 단숨에 끄집어낸다. 

옛 철로는 경부선 철로에 끊겨 계곡을 넘지 못하고 저 너머 벌판만 바라보고 있다. 그 벌판에도 이곳과 똑같은 모양새로 옛 철길은 군데군데 남아있다고 한다. 아직도 길게 뻗어 추억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추억으로 가는 길'.

수원천을 걸으면 수원의 속살이 보인다_2
수원천을 걸으면 수원의 속살이 보인다_2

▲ 더 걷고 싶어도 철책이... 공군비행장 수문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세류대교로 돌아와 하천길을 걷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주변에서 집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천변으로 높다란 담벼락이 나타난다. 그 담벼락을 끼고 200여 미터를 더 진행하니 결국 큰 철문이 앞을 가로막는다. 수원의 공군비행장이다.

이별은 철책 담장 앞에서 그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왔다. 서해바다까지 함께 갈 줄 알았지만 욕심이었다. 되돌아 서야하는데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으니 함께 걸어왔던 해만 수원천 물을 따라 철책을 넘어서고 있었다.

지난 5월의 어느 날, 수원천 상류인 광교저수지에서부터 지동시장까지 걸었다. 6월에는 수원천 하류인 수원화성박물관에서부터 공군비행장앞까지 걸었다. 짧을 수도 길수도 있는 13킬로미터 수원천길은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줬다.

(전편 기사) 수원천따라 걸었더니 이런 재미가?
http://news.suwon.go.kr/main/section/view?idx=63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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