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장보기. 정말 힘들었다
2014-01-30 14:51:26최종 업데이트 : 2014-01-30 14:51:26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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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의 명절맞이에 대한 부담감을 명절증후군으로 나타나거나 시댁에 가지 않아도 될 정당(?)한 대안으로 교대근무인 마트직원이 주부들이 선호하는 직종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할 때도 별나게 산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죽이나 고달프면 오지 않은 명절에 대한 걱정이 병이 되었을까 그런 생각은 20년 넘게 경상도와 강원도를 다니면서도 한 번도 하지 못했었다. 세밑 장보기. 정말 힘들었다_1 못골시장에서 군것질 할 것으로 타깃으로 나왔는데 어름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못골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 통로에는 세밑 장거리 하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자석에 끌려 들어가는 것처럼 스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앞 사람 추월은 꿈도 꾸지 못하고 앞 사람의 뒤를 졸졸졸 따라 움직여야 했다. 물건을 사는 것도 쉽지 않다. 무럭무럭 김이 오르는 떡집 앞에서는 줄을 서서 기다리고 지나가는 사람들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떡국용 떡 1만원짜리 봉투를 건네받고 이 난리에 시장 구경이라니. 늦은 귀향 시간을 때울 생각으로 만두나 만들어 봐야겠다는 심산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는데 완전한 잘못된 생각이었다. 며칠 전 명절을 앞두고는 두부가게에서 물기를 짠 두부를 판다는 정보를 듣고 만두소에 들어갈 두부를 구하기 위해 그 집을 찾아갔지만 동이난지 오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이리저리 밀려서 입구에서 출구까지 떠밀려 왔다. 손에 들린 것은 겨우 떡국용 떡과 만두 두 모. 다시 뒤돌아 다른 물건들을 살 엄두가 나지 않아서 집 나온 지 한시간만에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평소에 버스만한 대중교통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도 오늘따라 승객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고 덜컹거리는 순간마다 휘청거리는 것이 후회의 연속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그야말로 파김치가 다 되었다. 만둣국을 만들어 주겠다고 큰소리 떵떵 치고 나섰던 길은 이제 고단함과 피곤으로 돌아와 두부와 김치를 짜는 일이 까마득하게 보였다. 만두를 빚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기울고 있을 때 작은아이가 쐐기를 박았다. "엄마 만두 언제면 먹을 수 있어요?" 만두를 만들어 주겠다고 꾀어서 나갔던 동행이었다. 20년 넘게 시댁에서 설날을 맞고 음식을 만들었다. 한 번도 음식 만드는 것에 힘들다고 고달프다고 여긴 적이 없었다. 간혹 지인들이 동그랑땡만 보아도 징글징글하다는 소리에도, 일곱 형제들이 모두 모여 주부들은 밥상 차리다가 연휴가 다 간다고 해도 몇 시간 동안 가야하는 귀향길이 더 고달팠지 귀향길만 가깝다면 뭔들 못하겠냐는 생각이었다. 사람 생각이 간사하다. 생각 없이 구경 나갔던 세밑 장은 사람들이 복닥거리고 불편했지만 그래도 명절 장보기는 전통시장이 최고임을 증명해주는 것 같아서 마음만은 푸근했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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