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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선물한 옛 수원사진전 '약진수원'
2014-02-09 13:18:40최종 업데이트 : 2014-02-09 13:18:40 작성자 : 시민기자   문예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던가. 수원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약진수원' 전을 보러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눈, 비가 함께 내리며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개막식날인 1월 10일 수원시립합창단의 리허설장면부터 시작해서 SNS를 통해 올라오는 소식들은 지난 시절들을 그리워하며 추억하게 만들면서 빨리 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던 것이 개막 한 달여 만에 겨우 시간 내서 찾아가는 길인데 하필이면 궂은 날이다. 그래도 오늘이 아니면 또 언제 갈수 있을까 싶어서 수원박물관을 향한다. 버스에서 내려 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길을 오르는데 지난 봄 옛 수원사진전을 보러 왔을 때와 비슷한 풍경들이 연출된다.

추억을 선물한 옛 수원사진전 '약진수원'_1
추억을 선물한 옛 수원사진전 '약진수원'_1

1900~1960년대까지의 수원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렌즈 속 엇갈린 시선들'이라는 전시회를 보러 왔을 때는 길 양편의 벚나무에 매달린 벚꽃들이 눈송이처럼 바람에 날렸는데, 오늘은 하얀 눈이 벚꽃처럼 내리고 있다. 그날도 역시 봄비가 바람에 흩날리며 박물관뜰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었는데, 오늘은 눈과 함께 섞여 내리는 겨울비가 미리 봄을 마중하는 듯 촉촉하다. 

물기에 젖은 바깥풍경을 감상하며 입구로 들어서는데 몇 명의 아이들이 시끌벅적함으로 박물관을 나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반갑다. 궂은 날씨에도 박물관을 찾아와서 전시된 작품들을 보고 그 속에서 무엇인가를 담아가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예쁘다.

'약진 수원'이라는 제목으로 전시중인 옛 수원사진전은 1970~80년대의 수원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봄에 전시되었던 사진들이 6,25전쟁 직후의 파괴된 수원의 모습,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피난민들이 모여들어 판자촌을 이루며 도시의 한 부분으로 자리하던 모습, 그리고 파괴된 도시를 복구하는 모습까지였다면,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사진들은 잘살아보겠다는 의지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며 전원의 도시 수원에서 활기찬 대도시 수원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들이 담겨있다. 

먹고 사는 게 가장 절실했던 그 시절, 경제성장이라는 단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면서 우리가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모습들도 사진 속에 모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걸려있다. 
변화 전과 후의 모습을 비교해놓은 사진 중 가장 재미있는 사진은 초가지붕을 이고 있는 1950년대의 세류동 동사무소의 모습이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만 해도 일반가정집은 초가지붕이 많았는데 가을이 되어 벼를 거둬들이고 나면 볏짚을 엮어서 지붕에도 새 옷을 입혀주던 일은 아주 중요한 일중의 하나였다. 

추억을 선물한 옛 수원사진전 '약진수원'_2
1950년대의 세류동 동사무소의 모습

지금은 우람한 노송들 덕분에 대형 갈비집들이 자리 잡고 있는 노송지대는 1970년대만 해도 딸기밭이 많이 있었나보다. '딸기밭 입구의 데이트하는 청춘'이라는 사진이 정겹다. 그 시절 딸기밭은 데이트하는 청춘들뿐만 아니라 엄마 아빠 손잡고 나들이 삼아 자주 다녔던 나에게도 싱그러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또 한장의 사진이 있다. 지금은 오히려 아파트가 넘쳐나서 미분양아파트 광고가 흔하지만 70년대, 아파트는 서민들에겐 꿈이었으며 그 꿈을 갖기 위해 아파트 추첨현장에 구름처럼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나의 발걸음을 가장 오래 붙들어 놓은 곳은 반공과 동원의 일상이라는 사진이 전시된 공간이다. 학창시절 내가 경험했던 모든 모습들이 그곳에 걸려있다. 교련사열을 받기위해 무더운 날씨에도 거의 한 달 전부터 수시로 운동장에 나가서 훈련하던 시간들, 여학생들은 간호업무를 배우느라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하얀 가방을 메고 친구와 짝이 되어 압박붕대 감는 연습을 수도 없이 했으며, 군가는 이미 군가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조용필의 노래만큼 익숙한 노래가 되었던 기억들이 그곳에 걸려있다. 

추억을 선물한 옛 수원사진전 '약진수원'_3
여고생들의 교련사열

일주일에 한번 씩은 꼭 하얀 앞치마 를입고 학교 밖으로 나가 시내 청소를 했으며, 해마다 6월이면 반공에 관한 글짓기, 그림그리기가 행해지고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 있는 행사는 웅변대회로, 연단에 오른 연사들의 우렁찬 고함소리와 함께 한번 씩 탁자를 내리치던 그 모습도 생생하게 살아난다.

'검문 받는 청년과 경례하는 아이'라는 사진 앞에서는 가슴에 무거운 돌이 얹어진 것 같다. 거리곳곳을 점령하고 있던 전투경찰들, 지하철 입구마다 지키고 서 있던 검은 헬멧, 그리고 최루탄가스의 잔해로 늘 매캐하던 거리의 탁한 공기. 그런데 그 시절에는 그런 장면들이 너무나 익숙한 모습들이라 투덜거리면서도 그게 아픔이라는 생각도 별로 못하고 살았던 것 같다. 

또 몇 장의 사진이 나를 오래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고3 시절, 여름방학도 없이 무더운 여름을 학교에서 책과 씨름하며 보내던 어느 날, 전쟁이 일어났다면서 모두 집으로 빨리 돌아가라고 했던 놀라운 사건이 있었다. 바로 이웅평 소령이 미그기를 몰고 남쪽으로 내려온 날이다. 그 사건을 시작으로 1983년, 그 해에는 유난히 자주 대형사건이 일어났다. 

결국은 해프닝으로 끝난 여름방학동안의 전쟁사건 이후 개학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번에는 KAL기가 격추되는 사건이 일어나서 우리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그 비행기에 누구네 친척이 타고 있었단다, 누구누구의 아는 사람도 있었단다 등의 소문은 그 사건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일로 우리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던 사건이다. 

그런데 그 아픔이 잠잠해지기도 전에 또 하나의 사건이 대한민국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버마 아웅산 폭파사건이다. 그 시절에는 조의를 표할일이 생기면 학교 앞 문방구에서 검은 리본을 사서 교복가슴에 달고 다녔는데, KAL기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달았던 검은 리본을 떼서 버리자마자 또 검은 리본을 달아야 할 사건이 생겨 버린 것이다.

철없던 여고생들은 언제 또 쓸 일이 생길지 모르니 버리지 말고 잘 보관 해야겠다라며 투덜거렸던 기억이 있다. 지난시절, 그렇게 놀랍고 아픈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는 자유로운 호흡으로 숨 쉬며, 활기찬 수원, 아름답고 사람 냄새나는 고장에서 날마다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누리는 오늘의 모습들은 또 세월이 흐른 어느 날쯤 '옛 사진전'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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