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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받고 싶은 아이들
알고 보면 아이들은 자신을 이해해 줄 어른이 필요
2014-01-24 08:06:29최종 업데이트 : 2014-01-24 08:06:29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선생님, 많이 바쁘시죠? 다른 게 아니고 궁금한 게 있어서요. 뭔가를 하려고 할 때 하고 싶은 일을 먼저 해야 해요? 아니면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해요?

오랜만에 혼자 커피숍에서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오후였다. 여고생으로 보이는 2명의 여학생이 둘이 조잘조잘 수다를 떨다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선생님과 통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언뜻 엿들어보니 전화선으로 들리는 목소리가 여고생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다정한 젊은 남자선생님이었다. 질문이 무척 흥미로워서 나도 모르게 모든 감각을 청각으로 모아서 그들의 대화를 깊이 경청했다. 

"너희는 너희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지금은 해야 할 일을 먼저 해야 해.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할 일을 멋지게 잘 수행해내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아.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았잖아."
"아니, 선생님. 저희 벌써 17살인데요? 이 정도면 하고 싶은 일 먼저 해도 되지 않아요? 어리다고 하지 마세요."
"나도, 나도 바꿔줘! 선생님~~~죄송해요. 시험 공부하다가 너무 마음이 복잡해서 전화 한번 드렸어요. 바쁘신데 자꾸 정신 없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저희 시험 끝나고 나면 인생상담 좀 해주시면 안돼요?"
"그래, 알았어. 우선 열심히 공부해, 이 녀석들아!"

학업 스트레스로 잔뜩 인 여고생의 선생님과의 대화를 보면서 많이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그 시절 인생을 상담할 수 있는 선생님, 더군다나 답답할 때 선뜻 전화를 걸어서 이런저런 넋두리를 던질 수 있는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고, 자신들이 벌써 인생을 꽤 살았고 지금 하는 선택들이 인생의 전부일거라고 여기는 모습에서 그들의 배 이상을 산 나로서는 참 귀엽고도 예쁘다고 느껴졌다. 

한 때 나 역시 그런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왜 해야 할 일로 억압당해야 하느냐고 억울해 하던 수많은 젊은 시절. 덕분에 나는 그다지 학창시절에 한없이 나태하기만 했다. 그렇다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해야 할 일을 하기 싫어서 늘어놓는 변명과 넋두리로 그저 늘어져있었을 따름이다. 

그런 아이들의 고민에 "이 녀석들, 헛소리 하지 말고 공부나 해!"하고 핀잔으로 일관하는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먼저 어른에게 손을 내민 아이들에게 그만큼의 마음을 쏟아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역할이 아닐까.

그로부터 며칠 후, 공교롭게도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다른 여고생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아니, 우리 담임은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러니까 말이다. 처음에 고3 담임이 결혼한다고 입 찢어질 때부터 알아봤어."
"거기까지는 그렇다고 쳐. 임신이 웬 말이야? 우리는 입시 때문에 죽네 사네 하는데 말이 되냐?"

그들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대화 내용 그대로였다. 자신들은 고3이라 죽겠는데 담임 선생님은 자신들의 입장이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 살 길만 찾아가는 게 얄밉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고3인 자신들의 담임을 맡았다면 자신들과 같은 배를 타고 같이 진로를 고민하고 입시고통을 넉넉히 같이 감내하면서 지도해야 옳은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헌데, 자신이 맡은 아이들의 입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인생설계만 쭉쭉 해나가는 게 맘에 들지 않는다고 투정일색이었다. 

문득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얼마나 많은 공감을 받고 싶어하는 존재인가에 대해 알게 된 두 가지 이야기였다. 처음 아이들은 답답한 자신들의 현실을 이해해주는 선생님이 있어서 그저 해맑고 신나 보였던 반면 후자의 여고생들은 자신들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결혼을 하고 출산을 앞둔 담임선생님이 한없이 얄밉고 원망스러워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공감받고 싶은 아이들_1
아이들에게 어른과의 시간은 세상과 통하는 또 하나의 관계일 것이다

우리는 자주 중고생 사춘기 아이들을 외계에서 왔다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이들을 그렇게 보는 시선이 아이들을 더 삐뚤어진 사고로 인도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 그들이 어른인 우리로부터 얼마나 많은 공감과 위로를 얻고 싶어하는지 좀더 살펴봐야겠다. 물론 그렇게 다가가기란 쉽지 않고 아이들이 어른인 우리들에게 속내를 열어 입을 떼기까지는 무척 많은 시간이 걸릴 테지만 어른이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바로 그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수 있는 인내, 어떤 아이든지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믿어주고 받아줄 수 있는 끈기, 그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이미 내가 겪어온 것이므로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진실된 예전에 나의 모습으로 그들을 받아줄 수 있는 공감과 위로의 마음. 그 기다림의 자세만 준비되어 있다면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을 친숙한 존재로 그들의 미래를 의논하고 상담할 진짜 어른으로 인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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