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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멘토 나의 외삼촌
힘든 어린이를 이해해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해
2013-12-15 20:33:20최종 업데이트 : 2013-12-15 20:33:20 작성자 : 시민기자   안세정

"세정아, 다른 것은 몰라도 일기는 꼭 쓰도록 노력해라."
가난하고 퍽퍽하기만 하던 어린 시절 유일한 멘토였던 외삼촌. 
삼촌은 6남매인 엄마의 형제 중에 가장 똑똑한 자식으로 시골에서 힘들게 서울로 유학 보낸 둘째 아들이었다. 장녀인 엄마가 첫 아이인 나를 막 낳았을 때 삼촌은 중학생이었고 방학이라서 서울에 사는 큰 누나 집에 놀러 왔을 때 무척이나 낙심했다고 했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떡볶이 장사를 하면서 가게 구석에 이제 갓 1살이 된 조카를 풀어놓고 겨우 키워가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고 했다. 
 
그 이후 고등학생이 되어서 서울로 유학 와서 생활하는 동안 자주 우리들을 찾아와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나중에 성직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고 신부님이 되어서도 언제나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려 애썼다. 
그 때마다 삼촌은 우리에게 꼭 했던 말이 "꼭 일기를 써라!"였다. 이유도 없이 그냥 하루하루 일기 쓰기를 잊지 말라고 했다.

내 삶의 멘토 나의 외삼촌_1
내 삶을 기록하는 가치를 알게 해준 삼촌에게 감사하다

덕분에 나와 내 동생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일기를 썼다. 물론 간간히 잊어버리거나 게을리 한 적도 있었지만 내 삶을 정리하거나 생각을 모아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고 생각될 때는 일기 쓰는 일을 먼저 떠올렸다. 그렇게 '일기'는 내 삶에 통로 같은 도구였다. 
엄마가 파출부로 일 다닐 때 "너희 엄마 파출부지?"라는 놀림을 받을 때도, 손바닥만한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 때 "여기서 너희 네 식구가 다 산다고? 너네 집 완전 꼬졌다!"라는 친구들의 비아냥거림이 있을 때도, 엄마와 아빠 동생이 모두 밖에서 하루를 다 보낼 때 나 혼자 어디에도 갈 곳 없이 외로움이 달래던 어느 날에도 나를 슬픔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일기'였다. 

삼촌은 그때 너무 열악한 환경에 사는 우리에게 바른 길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 '일기'를 말해주었던 것 같다. 일기를 쓰다 보면 내 하루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또 다시 새로운 날을 계획할 수 있으니까. 늘 곁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삼촌으로서 최선의 방법은 어린 조카들에게 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이었다.

"세정아, 요즘 일기 쓰고 있니?"
프랑스로 멀리 유학을 떠난 후에도 삼촌은 언제나 전화선을 통해 이 물음을 빼놓지 않았다. 그럼 나는 간혹 잊고 있다가도 노트를 펼쳐 들고 일기를 쓰기 시작하곤 했다.
일기는 나의 일상 외에도 그날의 감정이나 만난 사람들 이야기로 채워졌다. 행복한 날보다 괴롭거나 우울하거나 힘든 날, 무료한 날에 일기를 더 많이 썼던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늘 한결같은 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감사'였다. '~하지만 ~하니까 감사하다'라는 내용이 늘 일기장의 말미를 장식했다.

지금도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일기를 쓴다.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현재를 글로써 점검하면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어내곤 한다. 지나온 삶 동안 특출난 학력을 가지게 된 것도 재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지금 내가 가진 장점 중에 하나라면 나의 감정이나 현재의 모습을 글로 진단하고 그로 인해 내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앞으로의 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은 내게 더없이 큰 재산이다. 

"누나, 삼촌이 우리 어릴 때 정말 잘해줬었어. 그때 삼촌이 없었다면 정말로 우리 어떻게 잘못됐을지 몰라."
남동생이 중학생이 되어서 탈선할 때 같이 앉아서 담배를 피면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해준 사람도 바로 외삼촌이었다. 
냉장고에는 언제나 김치 한 통 덩그러니 있었던 우리 집 냉장고에 아이스크림 '빵빠레'를 가득 채워준 것도 삼촌이었다. 단칸방이었던 우리 집에 힘든 수도생활 중에도 쉴 틈이 생기면 언제나 방문해주었던 삼촌. 

몇 년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성직자의 길을 접고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삼촌.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서 예전만큼 많은 교류를 할 수 없지만 유년에 우리에게 준 영향력만큼은 변하지 않는 가치로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다.
"누나, 그때 삼촌이 우리 집에 올 때마다 빵빠레 사왔잖아. 그때 우리 정말 신났었지. 생각해보면 그때 삼촌이 없었다면 우리 진짜 어떻게 됐을지 몰라. 나도 우리 조카들에게 그런 삼촌이 되어줘야지."
남동생이 우리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 한다. 

오늘도 나는 '일기'를 쓰면서 삼촌을 생각한다.
"삼촌, 고마워요. 만일 삼촌이 그때 저에게 글을 쓰는 가치를 알려주지 않으셨다면 그토록 가난하고 힘들었던 유년을 긍정적으로 보낼 수 없었을 거예요."

살면서 그런 멘토가 되어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참 감사하다. 그 사랑에 감사해서 그 사랑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가슴 한 켠에 남아있다. 이제는 내가 다시 세상에 혹시라도 의지하고 기댈 곳 없는 아이들이 있다면 따뜻한 가슴으로 다가가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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