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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최우수도서 시집 ‘탐하다’를 탐하다
2013-12-11 14:37:03최종 업데이트 : 2013-12-11 14:37:03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지난달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2013 우수교양도서' 420종을 선정 발표했다.
'우수교양도서 선정· 지원 사업'은 1968년부터 추진되어온 사업으로 국내의 양서 출판 진작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철학, 예술, 문학 등 11개 분야의 우수도서를 선정하고, 이를 구입하여 공공도서관과 소외된 지역 초· 중· 고등학교 등에 배포함으로써 그간 국내 출판 산업의 육성에 기여해 왔다.

그중 시집 중에선 유일하게 수원에 사는 정수자 시인의 '탐하다(서정시학)'가 최우수 교양도서로서 목록에 올랐다. 경기도 용인 출신으로 1984년 세종대왕숭모제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을 시작으로 중앙시조대상, 현대불교문학상, 이영도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수원문학작품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한 시인은 현재 수원에서 둥지를 틀고 시조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수원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

2013 최우수도서 시집 '탐하다'를 탐하다_1
2013 최우수도서 시집 '탐하다'를 탐하다_1

시인의 색깔

달항아리 어깨 같은/ 무심의 흰 경계를 탐하다
시인은 끝까지 가보는 자라니/ 말의 안과 밖과 너머를 탐하다
아픔 고픔 슬픔의 곳곳을/ 못 미치는 말로 탐하다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의/ 으늑한 그늘에 깃들어/ 다시 흠흠 탐하다

지난 3월 펴낸 시집 '탐하다'의 에필로그에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인은 끝까지 가보는 자'라니 '말의 안과 밖과 너머'를 모두 탐하며 세상의 슬픔과 기쁨을 어루만지는 시어들로 흠흠 채워간다는 말일 게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누구나 '자칭 시인'이 되는 세상이다. 글과 그림 혹은 사진을 첨부해 나의 블로그나 카페에 올려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 그러니 다채로운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사람들은 활자화된 책자들이 고루하다는 관념에 빠져 점점 멀리한다. 진짜와 가짜가 모호한 시뮬라시옹의 세상이 된지 오래다.

그런데 정수자 시인의 시어(詩語)만큼은 반드시 활자로 만나야 한다. 우리나라 문단에서 인정받는 시조시인이기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현실감각이 살아 움직이는 '짧고 강렬한' 축약된 시어들의 이해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이런 것이다.

'그들은 역 근처나 공원에서 발굴됐다/ 알코올에 절인 몸은 주로 굽어 있었고/ 텅 텅 빈 눈구멍들은 낙백落魄으로 깊었다// 직업은 풍찬노숙 더러는 와불 탁발/ 철을 잊은 방랑자 또는 나름 빨치산/ 결국은 걸신 공양임을 보고서가 밝혔다// 하지만 뼈만 보유한 저 무욕의 종족은/ 바람을 주식 삼던 오랜 유목의 현신/ 하건만 불가촉 도태가 날마다 상장됐다고// 각종 변종 쓰나미가 그렇게 거듭 칠 동안/ 1%의 신흥 부족은 다른 별로 이주하고/ 노숙국, 지구 곳곳은 화석으로 늙어갔다'

지난 8월, 제18회 현대불교문학상 시조부문 수상작 '노숙화석'이다. 솔직히 그 당시엔 별 감동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시집을 펼치는데 '훅'소리를 내며 가슴으로 들어앉는 것이 아닌가. 박찬욱 감독의 '설국열차'까지 떠오르게 하면서. 감탄했다. 정수만을 뽑은 시어는 행간마다 빛을 발하고, 곱씹어 볼수록 새록새록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러니 어찌, 가슴이 없는 디지털 세상으로 만날 수 있겠는가.

그의 시(詩)세계

"일반인들이 보기엔 자유시와 현대시조 구분이 애매모호한 것 같아요. 더불어 시집을 내는 데는 보통 얼마나 걸리나요?"
"시조는 일정한 틀이 있어요.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집 한권 내기까지 일 년이 걸릴 수도 있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지요. 제겐 이번 시집에 발표한 것 이외도 몇 권을 더 낼 수 있을 정도의 분량이 있습니다. 추리고 추리는 과정을 거쳐 한권의 책으로 나오는 것이지요. 그리고 시(詩)란, 밤을 지새우고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낸 후에야 탄생된다고 봅니다. 그야말로 치열하게 죽을 때까지 쓴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말이죠." 

지난 가을 늦은 밤,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끊임없이 시인이 되고자하는 많은 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충고와도 같은 이야기였다.

그의 시는 남다른 관찰력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데에 있다. 한자리에 같이 있었으되 그만이 느끼는 세상과의 교감이랄까, 매우 탁월한 언어감각의 소유자다. 낯선 시공간에서도 도저한 자유로움으로 다가선다. 그래서 일찍 감치 시인의 길로 들어섰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시인은 실제로 현대시조 문학 세계의 지평을 넓히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이 시조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그의 시(詩) 힘이 작용했다는 말이다.

2013 최우수도서 시집 '탐하다'를 탐하다_3
지난 가을 지동 시인골목에서 고은시인과 함께 한 정수자 시인

품격 있는 독서

오래전엔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일단 그 사람은 공부 좀 하는 사람으로 취급했다. 게다가 시(詩)가 좋아 늘 시집을 끼고 산다는 사람은 진짜로 품격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사람 사는 동네에 서점이 하나 둘 사라졌다.

12월이 지나간다. 서점이 사라지고 독서할 시간이 없다고 아우성이지만 이즈음 한해를 마감하면서 가까운 도서관이라도 찾아가자. 인문학 서적을 보던 사회학 서적을 접하던 간에 우리시대 삶의 현장, 자연의 성찰 등을 노래하는 시집도 접해보자.
시를 통해 차디찬 겨울을 따뜻하게 날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니 말이다. 어느 날 지친 눈이 반짝이는 시어를 만나는 순간 세상이 명료해지는 것도 체험할 것이니! 

아래 시는 '탐하다'의 시집 첫 장을 장식한 '오래된 저녁'이다. 이토록 명료하다니, 절창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다음 시집은 어떤 색깔로 드러날지 상상하며 찬찬히 읽어 내려간다.

오래된 저녁

혼절 한 번 없이 그대가 간다기에
통정 한 번 없이 가을이 진다기에
서둘러
밥을 짓다 말고,
다시 받네
저무는 일

2013 최우수도서 시집 '탐하다'를 탐하다_2
2013 최우수도서 시집 '탐하다'를 탐하다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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