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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빛나게 하는 그 말 한마디는?
2013-12-09 09:57:17최종 업데이트 : 2013-12-09 09:57:17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연말연시를 맞이하여 송년회가 줄을 잇는다. 초등학교 동창모임부터 사회에서 연(緣)을 맺은 사람들과의 모임까지 12월 초순부터 몸과 마음이 바쁘다. 
그러나 그야말로 산 너머 산 깊은 산골짜기란 표현이 딱 맞을 정도로 강원도 첩첩산중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도시로 나온 나는, 이맘때가 실로 가장 행복하다. 몸은 피곤해도 송년회란 이름하에 그리운 친구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는 기쁨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헤어짐 뒤에는 늘 씁쓸한 마음이 남는다. 세상사에 지쳐 보이는 친구때문이다.

벗이란 늘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이런 저런 일들이 겹쳐 얼굴한번 보지 못하고 일 년이란 세월이 후딱 지나간다. 그러니 딱 이즈음, 으레 핑게거리가 되어주니 참 좋은 달이다. 
그런데 오늘날 만남이란 것이 '체면치레'의 만남, '이익추구'의 만남이 된지 오래다. 다소 서글픈 일이지만 동창생간의 만남 역시도 세태를 피해가기는 힘든 법인지 '나는 이런 사람'이란 명함을 주고받으며 눈치를 보는 세상이 현실이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그 말 한마디는?_2
사람을 빛나게 하는 그 말 한마디는?_2

지난 주말 중· 고등학교 송년회에 다녀왔다. 일 년이란 세월이 길다고 생각하면 길고, 짧다고 생각하면 짧지만 친구들의 얼굴 주름도 시간의 칸수만큼 늘어난다. 다들 제 알아서 사는 것이겠지만 세월의 풍파는 속일 수 없다는 듯 점수를 매긴 도장이 얼굴에 콕콕 새겨진다. 그래서 저마다 겉치레에 힘을 쏟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자태에서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몸과 마음을 내려놓으니 이제 편안해졌다. 내가 내려놓는다는 것이 꼭, 물질적인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걸 왜 나이 오십이 다 되서야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은 이 자리 저리를 옮겨가며 서로의 안부를 전하느라 바빴다. 그중 나와 대면한 한 친구의 넋두리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6년 전이던가, 아무튼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해 겨울 송년회장에서 그가 취했던 행동들과 그 후 그에 대한 이야기가 클로즈 업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우리가 1~2만 원을 낼 때 십만 원짜리 수표를 턱턱 냈다. 난 모처럼 보는 친구라 옆 친구에게 귓속말로 "쟤 무슨 일하니?"라고 물어보았다. 그는 학교 다닐 때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도 공장을 차려놓고 사업을 할 정도로 성공했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흐른 후 그에 대한 이야기가 언뜻 들려왔다. 한순간에 사업이 엎어지면서 그에 따른 어려움은 가계에까지 미치고, 악재는 결국 이혼으로 치달았다는 후문이었다. 몇 년 사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그의 얼굴엔 깊은 주름의 골이 새겨져 있었다. 
모든 걸 잃고 나니 비로소 세상과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친구는 채움과 비움을 경험한 후에야 편안해졌고, 이제는 가슴앓이 같은 것은 없다고 말했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그 말 한마디는?_3
사람을 빛나게 하는 그 말 한마디는?_3

또 한 친구는 강화도 인삼부자에게 시집가서 남편이 강북 어딘가에 피아노 학원을 차려줘 편안한 생활을 이어간다는 말에 당시 여자 친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 1호였다. 실제로 학교 다닐 때부터 예뻤던 얼굴은 부(富)까지 받쳐주니 빛이 날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친구가 오래간만에 나타났다. 여전히 예뻤지만 어쩐지 내면은 텅 빈 것 같은 모습이었다. 반갑게 그를 맞았다. "오래간만이다. 아직 피아노 학원 경영하니?"라고 묻는 말에 그는 씩 한번 미소를 짓더니 핸드백 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냈다.

'0000생명보험 부지점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학원 운영자에서 이젠 직장을 다닌다는 명함을 건네받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어느 때가 더 여유로운지를 떠나 이상한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현재 캐리어 우먼으로서 그가 잘 나가는 회사원일수도 있다. 그럼에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가 궁금해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딱 거기까지 만이라고 나의 마음이 알려왔기에.

친구들은 자리를 옮길 때마다 각자의 명함을 건네면서도 학창시절의 옛일을 건져 올렸다. 그것만이 최고의 화젯거리요, 공동의 관심사로서 분위기를 깨지 않는 일이라는 듯이. 
그러나 소주잔이 돌고 돌면서 친구들은 솔직해져갔다. 가진 놈 못 가진 놈 할 것 없이 우리들은 시골 촌놈들로서 둘도 없는 오랜 친구들이라고 다짐하면서. 

쉴 새 없이 떠들다보니 어느새 자정이 가까워졌다. 전국에서 모여든 친구들을 뒤로하고 슬그머니 일어났다. 1박2일이라도 함께하고 싶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는데 몇몇 친구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잘 풀릴 거야. 친구가 잘돼야 나도 행복하고, 우리나라도 행복한 거란다. 힘내라!' 내가 빌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말이었다.

한국인들이 점점 기댈 사람이 없다고 한다. 식솔이 많이 딸린 옛날이야 이모네 고모네 집들을 오가며 사촌 간에 정을 나누었지만 한집에 하나만을 낳아 잘 키우자는 풍속으로 바뀌면서 이젠 친척이란 말도 어색할 정도다. 그나마 친구란 말도 체면치레에 이익추구에 가려 마음과 덕으로 사귀던 붕우유신(朋友有信)이란 말이 무색한 시대에 살고 있다. 
주변사람 배려할 줄도 모르고 저만 잘난 세상이란 세태가 각박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동향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다소 안도의 숨을 내쉰다. 

사람을 빛나게 하는 그 말 한마디는?_1
오늘 하루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행복한 인삿말을 건네자, 더불어 멀리있는 친구들에게도 전화를 걸자. "안녕 친구야 오늘도 건강하게!"라고

'......적양동례適釀潼醴, 색약유色若乳, 적적어소조滴滴於小槽, 가극래상可亟來嘗, 차이소풍헌대의此已掃風軒待矣' (앞부분 생략)마침내 동동주를 빚어서 젖빛처럼 하얀 술이 동이에 넘실대니, 빨리 오셔서 맛보시오. 바람 잘 드는 마루를 내 진즉 쓸어놓고 기다리오.)

우리에게 '홍길동전'의 저자로 유명한 허균(1569~1618)이 친구 권필(1569~1612)에게 보낸 간찰내용이다. 길어서 앞부분은 생략했지만 후반만 읽어보더라도 친구란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꺼내봤다. 세상이 하수상하다고 하지만 어려운 친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격려의 한마디를 건네자. 사람을 빛나게 하는 말 한마디에 친구는 오늘아침 씩씩하게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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