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출중한 인물 채제공’을 만난 날
번암 채제공을 화성박물관에서 만나다
2013-11-29 10:44:14최종 업데이트 : 2013-11-29 10:44:14 작성자 : 시민기자 하주성
|
번암 채제공 특별전시에서 개막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 皎皎白紵白如雪 새하얀 모시 베옷 백설처럼 하얗구나 云是家人在時物 아내가 살아있을 때 남긴 물건 家人辛勤爲郞厝 사랑하는 남편 위해 모시 한 필 끊더니 要襋未了人先歿 바느질 미처 못 마치고 세상을 먼저 떠났구려. 舊篋重開老姆泣 할멈이 울면서 오래된 상자를 열어 誰其代斲婢手拙 아씨가 옷을 짓다 돌아가셨으니 누가 이 솜씨를 따를까 全幅已經刀尺裁 모시 베 전폭이 벌써 마름질은 끝나 있고 數行尙留針線跡 바느질하던 흔적은 여기저기 남아 있네. 朝來試拂空房裏 이른 아침 빈방에서 혼자 모시옷을 입어보니 怳疑更見君顔色 마치 당신의 얼굴을 어렴풋 다시 보는 듯 憶昔君在窓前縫 당신이 창 앞에서 바느질하던 모습을 생각하니 安知不見今朝着 내가 이 옷 입은 것을 당신이 못 볼 줄 어찌 알았을까? 物微猶爲吾所惜 이 옷이 하찮아도 당신의 사랑이 묻어 있으니 此後那從君手得 이후에는 언제 당신이 바느질한 옷을 입을 수 있을까? 誰能傳語黃泉下 누가 황천에 가 내 아내를 만나거든 말을 전해주오 爲說穩稱郞身無罅隙 아내가 지은 모시옷 내게 너무 잘 맞더라고 화성박물관에 모인 인파 아내를 그리워하는 채제공의 마음 '백저행'이라는 번암 채제공의 시이다. 집으로 객들이 찾아왔을 때 남편의 행색이 초라할까봐 부인이 직접 모시옷 한 벌을 지었다. 하지만 그 모시옷을 다 끝내지도 못한 체, 부인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배에서 돌아 온 채제공은 집에서 일을 하는 할멈이 내민 모시옷을 보고 지은 시이다. 아내를 그리는 채제공의 글 속에는 아내를 그리는 속내가 그대로 담겨있다. '누가 황천에 가 내 아내를 만나거든 말을 전해주오 아내가 지은 모시옷 내게 너무 잘 맞더라고' 채제공은 영조, 사도세자, 정조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임금의 주변에서 큰일을 감당하게 된다. 특히 정조대왕은 채제공을 일컬어 '불세출의 인물'이라고 칭찬을 했다. 백저행에 담긴 그의 글을 보면 눈물이 난다. '누가 황천에 가 내 아내를 만나거든 말을 전해주오. 아내가 지은 모시옷 내게 너무 잘 맞더라고'라는 글귀 속에 아내를 그리워하는 체재공의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채제공은 10여 년을 정조와 함께 했다. 홀로 재상의 지위에 그 오랜 세월을 지낸 것이다. 영조가 사도세자를 폐위시키려 하자 채제공은 그에 반대했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정조임금이 채제공을 중용을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눈이 사시였던 채제공은 어릴 적부터 많은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출중한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특별전시실에 들어서고 있는 관람객들 70세에 신해통공을 주도 채제공은 15세인 1735년에 향시에 급제했다. 29세인 1748년에 영조의 탕평책을 위한 선발로 예문관 사관직을 제수 받았으며, 31세인 1751년에 중인의 분산을 탈취하였다하여 삼척으로 유배의 길에 올랐다. 이때 부인이 사망했고 돌아온 후 부인이 짓다가 만 모시옷을 보고 백저행을 지었다. 보물로 지정된 채제공의 초상 이러한 채제공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28일 오후 3시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49에 소재한 화성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개막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조를 도와 화성이라는 거대한 자연친화적인 작품을 만들어낸 채제공을 만나기 위해 모여들었다. 2014년 2월까지 계속될 번암 채제공의 모든 것, 화성박물관을 찾아보기를 권유한다. 연관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