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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수원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
아내와 함께 저무는 밤길을 걸었다
2013-11-30 21:36:09최종 업데이트 : 2013-11-30 21:36:09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수원 월드컵 경기장을 걸으며

11월이 갔다. 이제 몇 시간 후면 한 해의 마지막 한 달이 시작된다. 겨울이 오고 첫눈이 내렸고 사람들은 옷깃을 여민다. 수원 월드컵경기장에 알림판에도 시즌이 끝난 수원팀 경기 일정이 정리되어 있다. 날 지난 알림판과 함께 축구 선수들은 이미 새해를 준비하는 설계에 들어갔을까? 우리 부부는 올 해 두 차례 걸쳐 수원팀 축구 경기를 네팔인 이주노동자들과 관람했다.

소중한 추억이 머문 자리다. 아침을 걸을 때마다 생각이 머무는 스탠드가 멀리 경기장 틈으로 보인다. 월드컵경기장에서는 서장대도 보이고 늘씬하고 삭막한 아파트들도 보인다. 하지만 주변에 보기 좋게 조성된 나무들이 있어 가을날에는 풍요로운 느낌으로 걸었다. 조형물들은 더욱 더 생각할 여유로 다가왔다. 가을날 편지를 받아드는 느낌으로 걸었던 거리인데 겨울날은 어떨까? 또 다른 기대가 있다.

11월 수원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_4
벅차게 밝은 팔달문이 추위를 달래주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아내와 함께 아주대입구에 새로 생긴 네팔인도레스토랑 상그릴라를 찾아 간단한 일을 도왔다. 일이 끝난 후 처음으로 네팔음식을 만들어낸 주방장 솜씨를 보자고 시식도 곁들였다. 모든 새로움은 들뜬 분위기를 함께한다. 
록 라이 사장과 람 쩐드라 구릉 주방장이 함께 열어갈 사업장이다. 모든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들어낼 채비가 끝났다. 오늘, 내일 그리고 며칠간 음식을 만들고 사진촬영을 한 다음 모든 메뉴판이 완성되면 개업을 한다고 했다.

얼마 전 한 지인이 김장김치를 한 통 전해주었다. 저녁바람이 부는 시간인데 고맙다는 인사도 전할 겸 찾아갔다. 손에는 막걸리와 속배추를 사들었고, 고향에서 보내온 몇 개의 고구마를 챙겼다. 막 산에서 내려온 지인이 속이 쓰리다고해서 막걸리는 다음기회에 마시기로 했다. 
하여 나와 아내는 11월의 마지막 밤을 시장 길을 찾기로 한 것이다. 평소 우리 부부의 단골데이트 장소이기도 한 팔달문과 지동시장을 걷는 여유를 갖기로 했다. 오늘은 우연히 자주걷던 팔달문 인근 길에서 구 수원시청사 터를 알아기도 했다.

11월 수원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_1
수원월드컵경기장 알림판, 팔달문 주변에 잘 정리된 간판들, 옛 수원시청터

11월 수원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_2
아내가 깜짝놀라며 반기던 한 학생의 정조대왕 조형물을 그려놓은 그림이다.

아내와 함께 저무는 밤길을 걸었다

벅차게 밝은 팔달문을 보았고, 그보다 먼저 아내는 작년 12월 31일 행궁 앞마당에서 펼쳐진 송년행사에서 떡국을 먹으며 한국에서 첫 해를 맞이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영동시장과 지동시장 사잇길을 걸으며 아이들이 그려놓은 그림도 보고 아내가 그림 속에서 자신이 술잔을 주고받는 시범을 펼치며 사진을 찍은 정조대왕 그림을 반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아는 만큼 반가운 아내의 모습에서 이제 익숙한 한국, 그리고 수원의 거리를 보는 모습이 좋다. 

내일 아침이 밝으면 마지막 달력의 첫 날을 사는 결심을 갖게 되리라. 뒤늦었지만, 취직을 해서 아내의 삶에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올해 시민기자의 가장 큰 일이 취직이었다. 시민기자의 친구들은 자식 낳고 시집 장가보낼 나이도 되었는데 자유인으로 살아온 덕을 보는 일이다. 뒤늦은 직장 일에 몇 년의 공백에서 얻은 즐거움들로 그나마 상쇄할만한 것들이 있어 다행이다.      

11월 수원의 마지막 밤이 저문다_3
추운 날이다. 밤길에 사람들도 움츠린 모양이다. 시장의 활기도 잦아든 밤이었다.

원을 그리며 항상 시작과 끝이 하나라 믿어온 나다. 나의 손끝을 펼쳐서 동그라미를 그려본다. 오늘은 어제와 가장 가깝고 내 시작은 가장 멀고 먼 과거와 가깝다. 지금 이 시작이 나의 가장 멀었던 과거와 만난다. 지금이 시작인데 내 삶의 과정으로 보면 지금은 항상 끝이다. 그러나 생존한 모든 사람은 언제나 끝을 바라보고 살기보다 시작을 바라보고 산다는 것이 시민기자의 믿음이다. 모두가 목숨이 있는 한 신명을 다하여 오늘을 밝히며 살아볼 일이라는 것이다.

날이 춥고 기도할 것들도 밋밋해지는 시절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 더 세상을 절실하게 바라본다면 보다 더 절실한 기도의 이유도 생길 것 같다. 나는 믿는다. 내 주변의 모두가 나를 살게  하는 아름다운 신령이라고, 그렇게 믿고 다짐하며 사람을 존중하며 새날들을 살며 살리라고...시린 날 모두의 안녕을 빌며.

먼주구릉, 송년행사, 지동시장, 팔달문, 월드컵경기장, 네팔레스토랑, 상그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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