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서산 부석사, 과욕을 내려놓으라 하네
2013-12-02 10:20:10최종 업데이트 : 2013-12-02 10:20:10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어찌 이리도 똑같단 말인가. 한자 이름 부석사(浮石寺)도,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의상대사의 뱃길을 선묘낭자가 용이 되어 보살폈다는 애절한 사랑이야기도 똑같다.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선생덕분에 우리 귀에 익숙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로 유명한 영주 부석사와 닮은꼴인 서산 부석사 얘기다.

11월 마지막 휴일 충남 서산시 부석면 도비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를 찾았다. 이미 10월 중순에 영주 부석사를 만나고 온 터라 이곳을 찾는 기분은 묘했다.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주재한다는 아미타불을 모셨다는 공통점이 그렇고, 다만 큰 법당의 이름이 영주는 무량수전이요, 서산은 극락전이란 이름만 다를 뿐 그 외에 또 어떤 가르침을 주고 있는지 궁금증을 품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절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두 사찰 모두 으뜸 풍광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몇 번을 찾은 영주는 연꽃 봉우리를 두른 소백산맥의 절경을 익히 기억하고 있기에 그 위세를 알지만 서산 부석사는 초행이다. 그리하여 천수만 일대와 간척지 그리고 그 너머 안면도로 향한 풍경은 가히 선경(仙境)이라는 극찬을 듣고 안양루에 오르기 전부터 두근거렸다. 게다가 이곳은 근자에 우리나라 불교계를 후끈 달군 사건 '금동보살좌상' 이른바 금동관음상 도난논란으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으니 마음은 이미 극락전 앞마당에 다다랐다.

 

서산 부석사, 과욕을 내려놓으라 하네_1
서산 부석사, 과욕을 내려놓으라 하네_1
,
서산 부석사, 과욕을 내려놓으라 하네_2
서산 부석사, 과욕을 내려놓으라 하네_2

도비산(島飛山), 한자유래와는 달리 진정 무언가를 발견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미 어둑어둑 산그늘이 내려앉는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바쁠 것 없다는 듯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걸어 올라갔다. 늠름한 소나무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가운데 홍송 연리목 한그루가 하늘 끝자락까지 닿을 듯 말 듯 한 멋진 품새로 환영한다는 인사를 건넨다. 

초반부터 가파른 언덕으로 오르며 긴장할 즈음 찰나에 펼쳐진 산문(山門) 가람, 화들짝 휘둥그레진 두 눈은 파노라마처럼 산하를 서에서 동으로 훑어 내려갔다. 
"히야~ 이 절집 내공이 보통이 아닌걸!" 
그리 크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가람 풍경이지만 외마디 찬사가 절로 내쳐지며 이곳 부석사에서 대마도 절에 과연 관음보살을 선물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어, 이번 논란의 사건은 약탈문화재가 확실하다는 생각으로 치우쳤다. 아직 진위가 밝혀지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관음보살이 서산 부석사에서 조성됐다는 사실은 불상 복장에 있는 '고려국 서주 부석사 당주 관음'이라는 '결연문' 때문이었다. 대략 내용을 보면 서주(瑞州)는 고려시대 서산의 지명이고, 불상을 조성한 천력 3년은 충선왕 즉위년인 1330년이고, 천력(天曆)은 원나라 문종의 연호다. '당주(堂主) 관음'이라고 한 것은 불상 높이가 50.5㎝지만, 독립된 법당의 당당한 주존 불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를 살펴볼 때 주존 불을 일본 절에 선물(?)로 주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지 않은가. 

여전히 소유권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 관음사가 불상을 정당하게 취득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제시한다면야 돌려줄 일이다. 그런데 분쟁사례가 드물고 19세기 이전에 일어난 문화재 약탈사건에 대해서는 적용할 국제법도 없다하니 참 어려운 일이다. 
무조건 우리 것이란 아집을 피울 수도 없다. 여타 국외로 불법 유출된 문화재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으니 약탈문화재 환수를 위해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사회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그러니 나처럼 위험스런 생각은 잠시 미룰 일이다.

세상의 시끄러움을 탔으니 더욱 견성(見性)의 일깨움을 전달하기 위함인지 부석사 극락전 사이로 행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조용히 지나쳐 산자락 아래로 내려갔다. 저녁 공양시간이 얼마 후면 될 터인지만 속세의 시끄러움을 뒤로한 고즈넉한 풍경만이 남았다. 오직 바투 붙어있는 산자락들만이 몸을 휘감고, 관음보살의 처소였을 금당과 종무소로 보이는 창문으로 약한 불빛만이 새어 나올 뿐이었다.

서산 부석사, 과욕을 내려놓으라 하네_3
서산 부석사, 과욕을 내려놓으라 하네_3

인적이 드문 탓에 오직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지속된 나의 묵언은 곧바로 세 번의 타종이 가능하다는 극락전 앞마당 소원 터로 나아가면서 깨졌다. 
이런저런 속세의 소망을 적은 소지를 들고, 얼마간의 돈을 시주함에 넣곤 아주 오래된 듯 보이는 나무방망이로 세 번을 내리쳤다. 마치 주장자로 내리치듯. 세속의 근심일랑 떨쳐버리고 더 낮추고 더 비우는 삶을 살게 해달라, 우리 가족에게 복을 내려주시라고 빌었다. 

염치없게도 늘 기원하는 말만 내뱉는 인간들이란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없는 일이다. 기복(祈福)은 곧 새로운 마음자세를 갖게 하는 법이니 오늘 내 여기를 다녀가면서 주렁주렁 달린 속세의 아상들을 떨쳐 버릴 것을 부처님께 기원하는 것이다. 이쯤이야 받아주실 것이다. 여기가 어딘가. 바로 극락정토 미륵세상 아미타 부처님이 계신 곳이 아니던가!

안양루 대석단 위에서 천수만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석양은 이미 지고 하늘도 어둑해 진 저 멀리 아스라한 풍경이 마치 연화좌대에 올라 미리 보는 극락세계와도 같았다. 황홀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아미타불전 앞에서 합장하며 꽃 공양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다시 안양루 마루에 걸터앉았다. 극락전 앞마당이다. 과연 저곳에 본존불을 모셨을까, 라는 의구심이 발동할 정도로 소박하기 그지없다. 연혁을 따져보면 밝혀질 일이지만 굳이 그럴 마음은 없다. 흔들림 없이 마음이 머물고 또한 두 눈이 고즈넉한 사위풍경에 취해있으니 더 이상 좋은 순 없다.

서산 부석사, 과욕을 내려놓으라 하네_4
서산 부석사, 과욕을 내려놓으라 하네_4

그렇지만 더 이상 지체한다면 산그늘이 길마저 어둠으로 삼킬 시간이 되었다. 내려가야 했다. 문화재 제자리찾기 혜문스님이 말씀하시는 '환지본처(還至本處)' 나의 본거지로, 나의 시간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환속(還俗)전 여기다 모두 내려놓고 가야할 시간이었다. 금당을 향해 조용히 읊조렸다. 
"금동관음보살상이 환지본처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도비산(島飛山), 바다가운데 날아가는 섬을 볼 수 있다하여 도비산이라 했다는 전설처럼 그 산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실로 아름다운 도량이었다. 
누구나 불성(佛性)만 있다면야 부처가 된다고 했지만 여기 서산 부석사는 얼마간의 안거만 한다면야 부처가 될 것만 같았다. 그만큼 지세가 좋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 어둠 속에서 '이제 분주함과 과욕을 내려놓고 네 자리를 찾으라!'는 소리를 들은 듯했다.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