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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김치는 아직 힘들다
친정엄마 노릇의 절반은 김치라는데
2013-12-03 09:16:25최종 업데이트 : 2013-12-03 09:16:25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김치 보냈다. 택배 받으면 전화해라"
"김장김치 보낸다. 김치 냉장고 정리해라"
  
결혼 후 20년이 넘도록 김치를 얻어먹었다. 40대 중반이 되도록 김치를 담가보지 못했다. 일한다는 핑계도 있었고, 친정 엄마의 극성도 한몫했다. 한 달에 두 번 반찬 택배가 왔다. 김치, 밑반찬, 국도 얼린 상태로 왔다. 게다가 딸들은 가끔 전화로 음식을 주문했다. 풍족한 것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 습관이 되었다.

올 가을부터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시작된 것 같다. 올해부터는 직접 김장을 해보라는 거다.
더 이상 미루면 평생 김치와는 담을 쌓게 될터이니 용기를 내보라 한다. 딸들이 시집을 가면 친정엄마 노릇의 절반은 김치라고 말씀하신다. 벼랑 끝에 선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피할 명분이 없다. 일은 그만뒀고 시간은 넘쳐났다. 

모두가 고민에 빠졌다. 친정엄마는 보내오는 용돈으로 적금을 들고 계셨는데 내년까지는 버텨야 한단다. 평생을 적금과 씨름중이다. 남편은 맛이 없을 것 같다며 미리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전라도 김치에 익숙해진 입맛을 바꿀 수 없다고 덧붙인다. 진퇴양난이다. 

김장김치는 아직 힘들다_1
마당에 준비된 배추양에 놀라고 양념통에 말문이 막히다.
결국 지난주 시골 언니 집으로 김장을 하러 갔다. 집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해마다 2통씩 얻어먹는 언니한테 도움을 청했다. 시어머니께 올해는 배우고 내년부터 시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지켜질지 장담은 못하겠다는 말을 작게 덧붙였는데 못 들은 척 하셨다. 

마당엔 100포기 넘는 배추가 산처럼 쌓여있다. 갓김치 준비도 되어있고, 백김치, 동치미 준비도 완벽해 보인다. 고춧가루를 비롯해 모든 재료가 친인척이 농사로 수확해 보내준 거였다. 물론 제값보다 더 많은 돈이 보내졌다. 사 먹는게 오히려 싸다는 생각도 해본다.
전라도 지역답게 갖가지 젓갈이 온 집안 공기를 혼탁하게 했다. 생으로 넣는 칼치 토막도 보인다. 내년 여름 가까이 김치가 떨어질 때 쯤 김치찌개 맛을 좌우하는 젓갈이 칼치였다. 돼지고기를 넣지 않아도 찌개 맛은 일품이 된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커다란 고무통에 갖은 양념을 넣어 버무리는 걸로 시작되었다. 직장생활로 김장을 한번도 도와본적 없는 남편이 팔을 걷어 부쳤다. 어마어마한 양에 놀라고 언제나 이 일이 끝나고 술 한잔 먹을 수 있나 심경이 복잡해 보인다. 
수능 본 딸은 놀러나갈 수도 없고 열심히 일을 하자니 싫은 내색이다. 구조 요청 눈빛이 레이저처럼 발사되지만 못 본 척 한다. 다 같이 고생해보자는 속마음을 웃음으로 말해본다.

9시전에 시작한 일은 점심 무렵에 끝이 났다. 각 가정에서 준비된 김치 통이 몇 개인지 헤아릴 틈도 없이 각자의 차량에 옮겨졌다. '호호 하하' 웃으며 시작된 일은 금세 말이 없어지고 여기저기 끙끙 앓는 소리가 넘쳐났다. 거실 바닥에 비닐을 깔고 앉아 일이 끝날 때까지 허리를 굽혀 버무렸다. "근로환경 개선하라~" 누군가 절규하듯 외쳤고 이내 다함께 한바탕 웃었다. 

온몸에 고춧가루를 뒤집어 쓰고 뒷마무리를 하는데도 1시간이 걸렸다. 다리 뻗고 눕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다. 더불어 이 고생을 하며 해마다 보내준 김치를 '맛이 있네. 없네.' 푸념했던 지난날을 반성했다. 용돈 두둑이 보내드리면 되는 줄 알았던 철없음에 부끄러웠다.

김장김치는 아직 힘들다_2
근로환경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목살이 한시간 전부터 삶아지고 있었기에 겉절이는 특별히 정성을 더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막걸리 잔이 돌면서 쌓인 피로가 눈 녹듯 했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수육과 깨가 듬뿍 뿌려진 겉절이 김치를 갓 지은 밥숟갈에 얹어 먹었다. 꿀맛이다. 밥 한공기 뚝딱 비워본다.

"내년부터는 제가 직접 담가 먹을게요. 그동안 염치없이 얻어만 먹었네요. 이렇게 힘들고 고달픈 일인데 해마다 보내주셔서 감사해요."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현해보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평소에 조금씩 시도해봤으면 좋았을텐데 뒤늦은 아쉬움도 컸다.

하루가 지나고도 어깨 허리는 뻐근했다. 하루의 반나절 동안 배추속을 채우고, 김치통을 옮긴 것 말고는 특별히 한일이 없는데도 후유증은 오래갔다. 김치가 고민이 될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올해는 가까스로 위기를 피했다. 가득 찬 김치냉장고를 보며 내년 걱정을 미리 해본다. 여기저기 큰소리를 치지 말았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김장은 무리일 것 같다.

모임에 나가 겪은 일을 허풍 섞어 말했다. 곁에 있던 7남매 맏며느리인 언니가 살짝 귀뜸한다. 
"나 주말에 400포기했는데 ..."
내년엔 이 언니 집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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