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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4회 공인중개사 합격 발표일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축하드립니다
2013-11-27 10:42:06최종 업데이트 : 2013-11-27 10:42:06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공인중개사 합격 발표-한국산업인력공단'
아침에 컴퓨터를 켜자 눈에 띄는 검색어가 보인다. 수능점수 발표일과 겹쳤다. 오늘 어느 가정에서는 희비가 교차 할 수 도 있겠다.

2011년 11월 23일. 22회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10년 동안 하던 일을 그만두고 이제 잠시 쉬겠다는 엄포를 놓자마자 남편은 내손을 끌고 학원으로 갔다. 늙어서 혹시 필요할 수 있지 않느냐고 처음엔 달래다가 싫다는 대답이 나오자 반강제로 등록을 했다. 1년치 학원비를 결제하고 엄청난 두께의 책을 받아왔다.
 
"아침엔 공부하고 오후엔 놀아~" "2년동안 공부해서 합격하면 200만원 줄게" 남편은 결국 돈을 걸었다. 내가 돈에 가장 약하다는 걸 알고 있다.
선택의 여지없이 학원은 가야했다. '내 인생은 어찌 이렇게 터널이 길까?'

수업은 생각한 거 이상으로 재미없었고 어려웠다.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아듣기 힘들었고, 주변 수강생들과는 말 한마디 주고받을 수 없는 심리 상태였다.
"A와 B가 계약을 했는데, A가 다시 C와 계약을 하고, A는 D에게 이중계약을 하고..."
민법시간은 가장 고통스러웠다. 이런 인간들을 만나면 어쩌나 걱정됐다. 

아침 10시부터 시작된 수업은 2시에 끝났다. 점심을 먹고 학원이나 도서관에서 복습을 해야한다. 하루분량을 소화해내지 못하면 다음날은 첩첩산중이다. 모든 분들이 열심히 공부하셨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과목을 달리해서 수업이 진행되는데 시험막바지에는 일요일 하루 종일 특강을 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방대한 양의 내용을 공부했다.

오늘은 24회 공인중개사 합격 발표일_1
힘들게 딴 자격증이다. 자랑스럽다.
집 근처 부동산 사장님들이 보통 이상의 사람들로 보이기 시작한 건 여름이 되면서 부터다.
봄바람은 어설프게 참아낼 수 있었다. 여름 더위는 피해갈 수 없는 복병이었다. 에어컨 근처에 자리를 잡기위해 더 빨리 학원으로 와야 했고, 쏟아지는 졸음엔 속수무책이다. 중도 포기자들이 나타나는 시점이다. 여름 휴가를 떠났다가 학원을 정리하는 일도 많았다.

2년동안 공부하겠다는 계획을 수정한건 7~8월 삼복더위를 보내고였다. 이 상태로 내년까지 보낸다는 건 상상조차 힘든 과정이었다. '그래. 한번에 다 해치우자! 공부만 하자!' 시험날 까지 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지냈다. 계모임도 안 나가고, 밥 먹자는 약속도 피하고, 전화도 꺼놓고, 시댁과 친정에 연락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시험 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교실에 앉았을 땐 비장함 뿐이었다. 오전 1차 시험지를 받아들고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기억조차 없다. 그때의 당혹감이란...1년 내내 자신 있던 과목에선 점수가 부족할 것 같았고, 과락만 피하면 될 것 같던 과목은 어렵지 않게 풀렸다. 결과도 예상처럼 나왔다. 정말 간신히 턱걸이로 통과됐다. 

시험후 한달동안 합격자 발표를 기다렸다. 가채점은 합격이지만 간혹 답안지 실수가 있었기에 겸손한 자세가 필요했다. 혹여 불합격이 되더라도 다시는 공부하지 않겠다고 매일 남편을 협박했다. 돈도 다 필요 없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학원근처엔 발걸음도 하지않았고 책도 재활용으로 버렸다. 

시험이 어려웠는지 합격자는 눈에 띄게 적었다. 합격자 모임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모였을땐 한사람 빼고 다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어색한 축하인사를 건네고 일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고 3이던 큰딸이 수능을 망치고 재수하기로 결정한 상태라 수험생 뒷바라지는 하늘이 내린 기회가 되었다.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큰딸은 엄마가 필요 없는 존재였지만 갑자기 모성애가 넘쳐났다. 

모임은 지금도 계속된다. 나를 포함해서 몇 분만 다른 일을 하시고 나머지 분들은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중이다. 두 달에 한번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안부를 묻는다. 경조사를 챙겨주고 매번 소문난 맛 집을 모임장소로 하여 음식을 나눈다. 인원이 적다보니 친밀도는 높아 가족 같은 분위기다. 따듯하게 맞아주시고 챙겨주셔서 늘 고맙고 정겹다.

어느날 무료해서 드라이브 가자던 남편은 신도시 쪽으로 차를 몰아간다.
"여기 시세가 얼마냐?
"입지조건이 좋으니 집값이 오를까?" "땅 값 좀 알아봐라" 자격증은 있지만 일을 시작도 안했던 나에게 이런 물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몰라"가 전부다. 정년퇴직 후 혹시 필요할까 미리 따둔 자격증은 아직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는 중이다. 어떻게 고생해서 받은 건데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때가 아닌 것 같다. 

공부는 끝이 없다. 그리고 쉽지 않다. 운이 좋아 한번에 합격해서 자랑질을 일삼지만 대부분 한두 해는 기본이다. 특히 주부들.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고, 집안경조사를 챙기다보면 3년이란 세월은 길지 않다. 공부할 틈을 허락하지 않는 아이들 때문에 매번 고배를 마신다. 

딸들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된 건 내가 학원을 다니고 부터다. 의미 없는 아우성일 뿐 이다. 부모가 공부하면 자녀들은 따라한다. 간혹 우리 둘째처럼 유전자를 달리 가진 아이도 있다. 어디든 100%는 없으니까.

아침 문득 옛날 생각에 젖었다. 지나고 나면 추억은 아름답고 아련하다. 남편에게 돈은 받지 못했다. 일을 시작하면 주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이 돌아오자 못들은 척 한다. 포기했다.
오늘 합격 통지를 받은 모든 분들께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보내본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축하드립니다."
 
 

한국산업관리공단 공인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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