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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는 시작이 쉽지만 계속하지는 못한다
더디게 가도 함께 가라!
2013-11-26 09:25:07최종 업데이트 : 2013-11-26 09:25:07 작성자 : 시민기자   이경
"어~싸리눈이다~"
카페에서 차 한 잔 나누며 창밖을 내다보던 참이다. 누군가 뒤에서 외치는 소리에 실눈을 뜨고 자세히 밖을 관찰해본다. '우두둑' 쌀알 크기의 눈은 싱겁게 내리고 이내 그친다.
  
밖은 춥고 어설픈 날씨다. 하지만 오늘 2013년 11월 25일 오후 3시. 수능을 치룬 딸아이를 앞세워 수원시 가족 여성회관으로 가야한다. 기타를 배워보겠다며 간간히 통기타와 씨름중인 딸을 위해 초급반 수업을 약속했었다. 찜질방의 유혹을 뿌리치고 약속을 지켜본다.
  
시험점수 발표를 앞두고, 수시합격 통보를 애타게 기다리는 딸은 공부도 할 수 없고, 미성년이라 아르바이트도 힘겹다. 책을 잡아보지만 머릿속은 이내 깐따삐야 별로 여행 중이다. 헛되이 보내는 시간이 아깝다고 채근해보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다. 

딸은 이거저거 금새 지겨워하는데 기타는 흥미를 보인다. 2년 가까이 매일 밤 엄마의 기타연습에 시끄럽다고 안방 문을 닫아 주었던 딸이다. 어느 날 시험공부에 지쳐 맥 빠진 얼굴로 기타소리를 자청하더니 아름다운 선율에 반한 걸까? 

기타는 시작이 쉽지만 계속하지는 못한다_1
초급반 수강생들과 민병석 선생님
수원시 가족 여성회관 301호 대강당은 따듯한 분위기로 수강생을 맞는다. 우리 모녀를 포함 여섯 명이 전부다. 추운 날씨에 김장을 하는지,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모임이 많아졌는지 4분기 시작일 때 모인 숫자에 비해 조촐하다. 그래서 수업은 더 정겹다.

"안녕하세요. 저는 작년 1월 초급반을 시작했어요. 올 3분기까지 중급반을 했고 지금은 동아리에서  선생님께 렛슨을 받고 있습니다.
6월엔 첫 정기 연주회를 했고, 내년 두 번째 연주회를 준비하고 있어요. 오늘은 특별히 선생님께 미리 부탁드리고 딸아이와 놀러왔는데 괜찮죠?"
  
초급반을 이제 갓 시작한 분들이 기세등등한 선배를 불편하다고 할 수 없었다.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자랑도 해보고, 작년 초급반 3개월 동안 노래 부를 땐 입도 못 떼 봤다고 위로도 덧붙인다. 장점이자 단점인 높은 자존감은 오늘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수업 중간 어색하게 코드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며 예전 내 모습을 기억해냈다. 누군가 3개월이면 통기타로 노래 몇 곡은 충분히 부를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기타 배우기였다. 기대와 달리 반년이 지나고도 코드 바꾸기는 힘겨웠다. 

기타는 시작이 쉽지만 계속하지는 못한다_2
주경희님 이종구님 황영일님 이찬석님
첫 곡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봄에 부르기 시작해서 가을에 완성된 곡이다.
'사랑해' 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은 코드 4개로 된 곡들이지만 스트로크, 아르페지오 주법에 따라 늘어지고 어설픈 노래가 되었다. 집에서는 완벽한데 수업시간에 다 같이 부를 땐 반도 따라 부르지 못했다. 손가락 아프다는 변명을 자주했던 기억이 났다.

한해가 저물도록 내가 기타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에 가까웠다. 행여 모임에서 기타치고 노래한번 해달라는 요청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언제나 근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손가락이 맘대로 움직여지질 않는다고 딸은 입이 나왔다. 한 두번 연습해서 될 일이 아니라고 눈으로 말해본다.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해주시고, 시간을 두고 연습하도록 애써 분위기 맞춰주시는 선생님을 바라보기 민망하다.
선생님은 성격 좋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왼손 오른손이 제대로 옮겨가도록 기다려주신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모습이다. 수업 중간에 뻐근해진 어깨 뭉침을 가벼운 동작으로 풀어주시고, 본인만 재미있어하는 옛날 이야기도 여전하시다.

오늘은 샤프펜슬을 처음 만난 이야기에 들떠 계셨다. 재미없는데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 가을하늘 멋진 구름이 맑은 웅덩이 속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계절과 맞지 않아 듣지 못했다. 다행이다.

기타는 시작이 쉽지만 계속하지는 못한다_3
반갑게 맞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타는 시작이 쉽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해서 한 단계 도약하기는 어렵다. 누구나 시작하지만 계속하지는 못한다. 손가락과 어깨는 아프고, 진도는 빠르다. 없던 약속은 갑자기 많아져서 연습할 시간은 자꾸 줄어든다. 근사하게 노래하는 모습을 기다리던 애인은 지쳐서 떠난다. 잡힐 듯 하다가 잊혀지는 코드는 미워지고 기타는 짐짝처럼 장롱위에 버려진다. 기약없는 이별이다.

통기타나 클래식기타 둘 다 개별 렛슨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함께 노래하고 합주하는 단체 렛슨을 권한다. 곁에 있는 동기생들과 더디게 가도 함께 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연습은 해도 실력은 늘지 않는다. 몇 달 연습해도 일주일 여행이면 제자리 걸음이다. 하지만 그만두고 싶을 때 주위를 둘러보면 나와 같은 초보자들이 있어 외롭지 않다. 

나역시 10명의 동아리 멤버들과 함께한다. 공연 앞두고 티격태격 지내온 날도 있지만, 으쌰 으쌰 힘을 내서 오늘까지 왔다. 연습보다 먹는 일에 하루를 다 보내고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던 건 함께 실력이 늘어서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나훈아의 사랑' 노래를 작년엔 따라 부르지 못했다. 해를 넘기고 부터 노래는 자연스러워졌다. 

오늘 초급반 수강생과 함께 수업을 받아보니 더욱 감회가 새롭다. 더불어 요즘 나태해진 모습을 바로 잡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만족스러운지 딸의 표정이 밝다. 나도 오길 잘했다.

"낯선 방문에도 어색하지 않게 함께 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열심히 연습하셔서 곧 동아리에서 만나요. 파이팅!"
그동안 핑계거리를 찾을 때마다 힘을 내도록 격려해주신 선생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은 자라서 부모 품을 떠나고 시간은 지루할 정도로 많아진다. 어떻게 무료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고 외롭지 않게 살 건지 고민해야한다.  집집마다 방치된 기타는 주인이 마음만 고쳐먹으면 금새 사랑받는 보물 1호가 된다.
 

수원시 가족 여성회관 클래식기타 초급반 수원하모니기타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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