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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화 시인을 만나고 오는 길
조병화 문학관을 다녀와서
2013-07-29 07:54:45최종 업데이트 : 2013-07-29 07:54:45 작성자 : 시민기자   공예지

지난 토요일 경기문학포럼의 회원으로 조병화 문학관을 다녀왔다. 

최근에 제10회 조병화 시 축제를 열었던 이 곳은 편운 조병화 시인의 전 생애에 걸쳐 창작 활동을 하며 추구해 온 꿈과 사랑의 시 정신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생생한 문학현장이다. 문화관광부에 의해 난실리 마을이 문화마을로 지정되면서 국고의 지원을 받아 1993년에 지은 건물로 조병화 시인 관련 기획전시물, 저작도서 및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구조는 1층에 제1전시실과 사무실 겸 제2전시실, 또, 2층에 세미나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병화 시인을 만나고 오는 길_1
조병화 문학관 오는 길

제1전시실은 기획전시물과 그가 남긴 53권의 창작시집, 수필집, 화집 등 160여 권의 서적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 곳에는 시인의 상징인 베레모와 파이프 담배도 전시되어 시인의 체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여담으로, 시인이 담배를 끊은 것은 시인의 건강 악화로 인한 장 파열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사무실 겸 제2전시실은 시인을 추모하는 문인들의 1주기 추모 시와 방명록, 파이프 담배를 문 시인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 외에도 국학자료원에서 나온 조병화 시 6권 전집과 평론책도 만날 수 있다. 

2층 세미나실은 1991년부터 본 문학관에서 주관해 온 편운문학상 역대 수상자들의 세계를 소개하는 자리로 그들의 수상서적과 육필 원고를 만날 수 있으며 조병화 문학관에서 진행하는 교육, 세미나, 영상물 감상 그리고 문학행사가 진행돼 문학적 교감을 나누는 장소이기도 한다. 

이 곳에서는 후배 문인들 사진도 볼 수 있다. 문화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초창기에 지어진 작은 건물임에도 불구 이 곳은 전남 담양의 한국가사문학관과 같이 올해 최우수문학관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 곳을 둘러봤을 때, 작지만 확실히 있을 건 있는 풍성한 전시 구성이었지만 시간상 세미나실에서 시인의 생애를 다룬 영상물을 못 본 것이 아쉬웠다. 

조병화 시인을 만나고 오는 길_2
제1전시실과 사무실 겸 제2전시실의 모습

편운 조병화는 난실리에서 아버지에게는 3남 2녀, 어머니에게는 5남 2녀 막내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예순인 아버지와 마흔인 어머니 사이에서 늦둥이로 태어난 시인은 송전 공립보통학교에서 1학년까지 다니다 어머니를 따라 서울로 이사와 미동 공립보통학교에 편입해 다녔다. 

이 시기부터 시인의 다재다능한 재능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9살 때 아동 문선과 아동 미선에 입선, 육상 릴레이 선수로도 뛰기 시작했다. 16살에 경성사범학교 보통과에 입학해 미술부, 육상 경기부 생활을 하며 이 때부터 럭비부 선수로도 뛰게 되었다. 시인은 이 때부터 시집도 많이 읽으면서 교내 조선어 연구회 회지에 선우휘와 같이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시인은 경성사범학교 보통과 5년, 연습과 2년을 졸업하고 일본 동경 고등사범학교 물리과에 입학해 동경문리과대학에서 럭비부 생활을 다시 하며 26살에 대한럭비축구협회 이사로 43세까지 연임했다. 

럭비부까지 창설했던 시인은 문학 생활만큼 럭비 생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시인은 실제로 해외에서는 시인도, 럭비 선수도 아닌 화가로 유명했다고 한다. 전시실에 배치된 그의 시 위에 그려진 그림에서 시인의 또 다른 재능을 만날 수 있다. 또, 전시실에 배치된 시인의 가족들(아내 포함)의 물품들을 보면 그들도 남다른 유전자를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해외의 유명한 대학들이 적힌 물품들을 보니, 학창시절 공부를 골고루 못했던 기자로서는 살짝 질투심이 나기도 했다. 

조병화 시인을 만나고 오는 길_3
럭비 시 그림을 사랑한 시인

편운재와 청와헌도 볼 수 있었는데, 문화해설사의 말에 따르면 원래는 공개를 잘 안 하던 공간이라 한다. 편운재는 시인의 서재, 작업장으로, 1962년 시인의 어머니 진종 여사께서 별세하자 그 이듬해인 1963년에 어머니의 묘소 옆에 세운 작은 서실이다. 

그 안에는 생전에 작업실로 썼던 혜화동 서재를 원형 그대로 옮겨와 보존하고 있다. 일본식 구조로 되어있어 문 크기에서 우리나라식 구조와 큰 차이를 보인다. 청와헌은 1986년 시인이 인하대학교 대학원장으로 정년퇴임하고 기공하여 이듬해 완공해서 입주한 시골집으로, 들판가의 집이어서 '개구리 소리를 듣는다' 하여 청와헌이라 이름하고, 가끔씩 집필 또는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시 용도 위주로 쓰고 있기 때문에 문 앞에 C사 보안장치가 달려있으며, 안에는 시인의 아들 분이 실제 쓰고있는 데스크탑 컴퓨터와 키보드, 워3 마우스패드 등이 추가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조병화 시인을 만나고 오는 길_4
청와헌 안 서고의 모습

점심 시간이 경과돼 짜증날 수도 있는 상황에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으시며 문학관 코스를 설명해주셨던 조성숙 문화해설사에게, 마찬가지로 시인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풀어주신 이동희 문화해설사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제1전시실에도 배치된 시, 시인의 고향인  '우리 난실리'다.

우리 난실리        조병화

 우리 난실리 고향 사람들은
 잘 살자는 꿈을 먹고 삽니다
 잘 살자는 꿈을 먹고 살기 위하여
 부지런히 공부하며 열심히 일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서로 도우며
 서로 아끼며

 대대손손 영원히 이어 갈 
 잘 사는 고향만들기

 우리 난실리 고향 사람들은 
 아름다운 그 꿈을 먹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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