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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사람들
2013-05-13 14:48:03최종 업데이트 : 2013-05-13 14:48:03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힐링과 치유', 이 시대의 바람을 타고 최고의 유행을 낳은 단어가 아닐까 싶다. 진앙지 서점에서 출발한 돌풍은 이내 매스컴을 타더니만 어느새 사회전반을 휩쓸어 버렸다. 
얼마나 살기 힘들면 아니, 얼마나 복잡한 세상에서 살고 있기에 너도나도 몸과 마음의 치유를 외치며 자연을 찾아 들어갈까. 

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사람들_2
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사람들_2

십대들은 십대대로, 청춘의 심벌 이십대는 이십대대로, 삼십대...육십대와 칠십대들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 행복하게 잘살아가는 법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지난해 셀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DEATH)'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더니만, 얼마 전 저자 케이건이 한국을 찾았다는 기사까지 접했다. 
이 책은 잘 살아가는 웰빙(well-being)에 관한 이야기보다는 웰다잉(well-dying)에 가까운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의 웰다잉 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뜬금없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니만 이내 나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웰빙에 이어 근자에 뜨는 말 웰다잉은 우리사회가 급속한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편안하고 멋진 최후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과정으로서 치유의 삶과도 맥을 함께 한다. 
결국 우왕좌왕 불확실성에 관한 죽음의 본질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법, 나를 비롯해 우리의 이웃들 더 나아가 자연에서 답을 구한다. 

# 일인칭 '나'는

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사람들_1
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사람들_1

며칠 전 심신의 자유로움을 찾아 도심을 떠났다. 시골길이 완연한 어릴 적 추억의 장소처럼 푸근한 곳으로. 대로에서 마을로 들어서는 한 뼘 논두렁· 밭두렁 길로 들어선다. 한참이나 걸어 들어가야 서너 채 모여 사는 오붓한 마을과 조우할 것이다. 느릿느릿 걸을 때마다 더욱 선명해지는 녹색의 풀빛 색을 따라 자연을 탐닉한다. 

아직 본격적인 농사철은 아니지만 밭과 논을 갈아엎는 부산스런 농심(農心)이 저 멀리서 느껴진다. 유년에 봐왔던 길섶의 풀과 꽃들이 욕심 없는 농부의 마음을 닮아서일까. 파릇파릇 졸망졸망한 것들이 모여서 한없이 정겨운 말들을 건넨다. 
얼마쯤 지났을까. 당산목이 턱하니 가로막더니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을 없다'면서, 결국 심신을 추스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귀띔한다. 치유는 스스로 하는 것, 웰다잉 또한 마찬가지라는 진리를 시골길이자 농부의 길에서 얻는다.

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사람들_3
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사람들_3

# 이인칭 '당신'은

소위 '멘토'의 시대에 사는 당신은 어떤 삶을 추구하는지. 정답은 아니지만 시인 이상국을 통해 감히 드러내 보인다면 이렇다. 
지난해 발표된 작품 '뿔을 적시며(2012. 창비)'에 수록된 시다. 난 이 시가 적잖이 마음에 든다. 그리하여 작가의 양해도 없이 옮겨본다.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새들도 갈 데가 있어 가지를 떠나고/ 때로는 횡재처럼 눈이 내려도/ 사는 일은 대부분 상처이고 또 조잔하다/ 그걸 혼자 버려두면 가엾으니까/ 누가 뭐라든 그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의 시는 나의 그늘이다

'그늘'이란 시로 짧지만 임팩트는 강하다. 
시인은 '사는 일이 대부분 상처이고 조잔하'여 '혼자 내버려두면 가여워'서 그의 편이 되어준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이런 풍토라면 힐링이나 치유, 혹은 웰빙이나 웰다잉 처럼 난무하는 처지는 적어도 비켜갈 것이다. 

내가 아는 '당신'은 결국 치유란 '사람'이 정답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짐의 되풀이 속에서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진리를 통해 마음 다스리는 법을 터득한다고. 완전 동의하지는 않지만 일정부분 수긍 가는 '당신'의 말이다.

# 삼인칭 '그들'은

'그들'의 이름은 화도(畵陶), 오늘도 그리고 빚는다. 바람과 물과 불을 뒤섞어 도자기를 빚고, 판넬에 유화의 붓질을 해 형상과 색채를 만들어 낸다. 그들의 생활공간은 웰다잉의 세계를 흠모하는 지기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들 또한 그들을 내치는 것이 아니라, 흔쾌히 밥과 찬과 술을 내놓으며 살아가는 즐거움을 피워놓는다.

물론 가난한 그들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자연에서 구해온 식자재로 성찬의 밥상을 차린다. 21세기 빠름의 시대를 역행하는 삶이다. 변변한 화장실이나 적당한 욕실 하나 보이지 않지만 자연 지세와 공기만큼은 우량 자본가가 부럽지 않다. 
술 한 잔 마시고 슬그머니 밭으로 나가 이랑을 고르고, 다시 슬며시 탁자를 찾아 객을 맞는다. 또한 여유로움을 찾아 다시 작업실로 발길을 옮긴 후, 자연과 합일한다. 최상의 삶을 이어가는 그들이 이쪽세계 사람들의 입장에선 참 부럽다.

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사람들_4
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사람들_4

웰다잉(well-dying)을 꿈꾸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탓일까. 
그에 관한 책이며 영화들이 줄을 잇는다. 가족을 화두로 그린 작품들 또한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결국 힐링이니, 웰다잉이니 하는 것들은 옴팡 움켜잡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므로, 조급증에서 벗어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관점인 '죽음이란 삶의 끝'이란 인식에서도 탈피하자. 
'맞다, 다르다'의 문제를 넘어서는 의미로서 긍정의 힘과 함께 우리 공동체 안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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