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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소바위’ 애절한 사연은 없고 ‘화성’만 보이네
부잣집 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퉁소바위공원
2013-05-10 09:13:31최종 업데이트 : 2013-05-10 09:13:31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2007년 첫 모습을 보인 제주의 올레 길은 걷기 열풍의 기폭제가 됐다. 
올레 길로 말미암아 전국의 산과 해안은 물론이요,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골목 탐방까지 지자체마다 이름만 달리 할뿐 걷기 테마상품이 봇물 터지듯 넘쳐난다. 게다가 마음의 치유라는 '힐링'이란 단어가 합세하면서 '자연은 곧 치유'라는 공식까지 어느덧 한 몸이 되어버렸다. 

걷기 열풍은 길 전성시대를 활짝 열었다. 그런데 꼭 제주도나 지리산이나 부산처럼 유명세를 탄 곳으로 떠나야만 힐링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여행이란 집 떠나면서부터 시작이듯, 우리 동네 야트막한 뒷산을 찾아 두 손을 홀홀 휘저으며 걸어도 좋고, 도심의 중앙로를 따라 헉헉거리며 대범하게 걸어도 상관없다. 

나만의 힐링 법 또한 걷기다.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 생긴다는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가까우니 그다지 바쁜 일도 없다. 
그리하여 지천에 깔린 사물을 꼼꼼히 살피면서 도심과 마을의 길을 찾는다. 어제도 그랬다. 수원시평생학습관에서 공부를 마친 시각 오후5시, 버스나 택시가 나를 유혹해도 타지 않았다. 길이 난대로 따라간다. 

오늘 선택한 길은 매우 번잡한 1번 국도다. 이유가 있다. 
수원화성의 건축물 중에서 동북쪽에 자리한 동북 공심돈에서 연무동으로 눈길을 돌리면 단박에 보이는 '퉁소바위' 공원에 오르기 위함이다. 그동안 그곳을 수없이 지나쳤지만 단 한 번도 오른 적이 없다. 퉁소바위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풀어보면 이렇다.

'퉁소바위' 애절한 사연은 없고 '화성'만 보이네_4
'퉁소바위' 애절한 사연은 없고 '화성'만 보이네_4

'옛날엔 이곳 연무동에 큰 바위가 솟아 북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북쪽인 조원동에도 연무동을 향한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 근처에서 금슬 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오랜 혼인생활에도 자식이 없었다. 그리하여 남편은 연무동 바위에, 아내는 조원동 바위에 올라 백일 치성을 드리기로 약속하면서 서로의 안부 확인을 위한 방편으로 퉁소를 불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거의 백일을 앞두고 아내 쪽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아 남편은 노심초사했지만 끝까지 백일기도를 마쳤다. 이후 한달음에 달려가 보니 이미 아내는 숨을 거둔 후였다. 이내 마음의 병을 얻은 남편도 아내를 따라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그 후, 이 부부의 애절한 사연을 기려 할애비 퉁소바위, 할미 퉁소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퉁소바위를 향해 한 걸음 한걸음 나무 데크 계단을 타고 오르면서 '전설이 참 애달프다'라고 했던 생각은 '내가 언제'로 확 바뀐다. 
계단 양쪽이 부잣집 커다란 정원마냥 잘 가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 계단 오르고 뒤돌아보고, 두 계단 오르고 또다시 뒤돌아보며 감탄사만 연신 내 뱉었다. 

'퉁소바위' 애절한 사연은 없고 '화성'만 보이네_3
'퉁소바위' 애절한 사연은 없고 '화성'만 보이네_3

아침 뉴스에 저녁부터 비가 내린다고 했었는데, 퉁소바위 정상에 오른 순간 빗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리만 약간 적시더니 이내 몸을 향해 달려드는데, 꼭 여름을 재촉하는 소낙비 같았다. 시각이 더해질수록 강도가 세졌다.

흐린 날의 수원화성은 원색을 배제한 담백한 수묵 담채화다. 그런데, 퉁소바위에 올라 화성을 바라보니 완전 다르게 보였다. 성곽의 능선 그 자체가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으로 역할을 다하면서도 서로 어울리는 것이 아닌가. 그간에 화성을 평면 눈높이로 봐왔다면 이제는 입체안경을 쓰고 3D 버전으로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할애비의 비통한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그곳은 단숨에 화성의 비경을 관망하는 자리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퉁소바위' 애절한 사연은 없고 '화성'만 보이네_1
'퉁소바위' 애절한 사연은 없고 '화성'만 보이네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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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소바위' 애절한 사연은 없고 '화성'만 보이네_2
'퉁소바위' 애절한 사연은 없고 '화성'만 보이네_2

퉁소바위 공원은 수원시가 추구하는 시정의지에 걸맞게 푸른 녹지 그윽한 공원으로 조성되어있었다. 시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체육시설까지 갖추고 있었는데, 솔직히 이렇게 잘 가꾸어진 녹지공원은 처음본다. 
공원 아래서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 또한 크다. 그런데 약간 아쉬운 점은 공간속 재미가 수원화성바라보기 빼고는 별로 없다는 것. 
'옛날 옛적 수원에 이곳은'이라는 테마의 안내판과 이야기 구성을 공원 안에 버무려 놓았으면 어땠을까.

걷기의 묘미는 이런 곳에 있다. 나의 의지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일정한 방향 없이 다다를 수 있다는 것. 비오는 날 퉁소바위 공원에서 수원화성을 바라보는 맛이란 참말로 오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춘추시대 공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라(종오소호 從吾所好-논어 술어편)'고 했다. 걷기를 취미로 삼아보자. 좋아하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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