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에서 삶을 읽다
2013-04-28 09:38:33최종 업데이트 : 2013-04-28 09:38:33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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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반지를 아직도 끼고 있다. 이 모습을 보고 아내를 사랑한다느니 금실이 좋다느니 한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반지를 끼는 이유로는 아니다. 서랍 속에 굴러다니는 것이 아까워 끼고 다닌다. 시계도 마찬가지다. 유행도 지났고, 황금색 도금이 예물 시계 티가 난다. 늙수그레한 주제에 이제 막 결혼한 신랑 분위기를 내는 꼴이다. 그런데 특별히 차지 않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 옛것은 변하지 않았다는 정작함이 있다. 그런데 마흔 후반에 들면서 달라졌다. 마흔이 지나고 오십에 가까워지면서 거대한 세상과 맞서는 성격이 조금씩 무뎌졌다. 패기에 찬 신념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짧은 인생에 도전만 하며 사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본질을 벗어난 생각과 과잉된 행동이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부터 외부로 향했던 마음이 서서히 내부로 돌려졌다. 정면으로만 바라보던 세상도 측면으로 보기 시작했다. 세속적인 성공의 틀에 갇혀 삶을 들여다 볼 줄 몰랐다. 몸에 있던 교만의 불부터 껐다. 요동치던 가슴이 차분해졌다. 타인의 시선보다 잃어버린 자아에 말을 걸기 시작했다. 타인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허물어지지 않을 모습을 그리려고 노력했다. 이때부터 애를 써도 안 되는 일은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사에 다 아는 것처럼 거들먹거리며 살아온 모습도 부끄러웠다. 이제 쉽게 흥분하거나 쉽게 좌절하지도 않았다. 그저 내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장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것도 의식의 낭비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삶의 태도가 바뀌면서 여러 변화가 왔는데, 새것보다는 오래 간직했던 것에 정을 주기 시작한 것도 그 하나다. 예물 시계와 반지를 다시 꺼낸 것도 이 시기였다. 그 어떤 인생도 가볍지 않다. 제 무게가 분명히 있다. 젊은 날도 당시에는 어설펐지만, 고통과 기쁨의 흔적이 축적되어 꿈으로 남은 흔적이 있다. 그때는 그때 나름대로 세상을 살아왔다는 정직함이 있다. 지금 경쟁에서 한 발 물러서니 때로는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경쟁에서 이기려는 욕심을 덜어내니 오히려 일이 즐겁다. 누구의 눈치도 안 보고 일을 할 수 있어 성취감이 크다. 투명한 마음으로 삶을 들여다보니 눈부신 햇살이 안에 비쳐온다. 인간에게는 시간을 정지시킬 또 앞지를 능력도 없다. 시간은 그대로 받아드려야 하는 운명과도 같은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제나 지금 그리고 이 자리에 있을 뿐이다. 단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과거와 미래에 대한 세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시간과 함께 갈 뿐이지 과거와 미래를 조절할 능력은 없다. 주변에서 내가 차고 있는 시계와 반지를 탓잡아 말하기도 한다. 옛것으로 고리타분하다고 한다. 나는 오히려 옛것이라는 그 어휘가 물고 늘어지는 느낌이 좋다. 그것은 본질이 변하지 않았다는 정직함이 있다. 과거의 시간이 듬뿍 포개어져 있어 좋다. 주인으로부터 칭찬받고 혹은 억눌리기도 하면서 삶을 이어온 시간의 풍화 작용이 깊게 배어 있다. 그래서 오래 곁에 두고 함께 가려고 한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흔적이 있어 버릴 수 없다. ![]()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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