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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설렘, 절집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다
부안 기행(2편)
2013-04-24 13:02:37최종 업데이트 : 2013-04-24 13:02:37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꽃샘추위가 누그러지면서 따뜻한 봄날이 안착되는가 싶었다. 얼마 전 한층 올라간 기온으로 인해 반팔을 입은 사람과도 조우했으니 적어도 그런 날이 이어질 줄 알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온종일 내리는 비는 온몸을 떨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진즉에 장롱 속으로 들어간 도톰한 옷이 그리울 지경이었으니 요사한 날씨가 밉기만 했다. 답사 내내 시린 손을 비비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했으니.

지난 주말, 부안 여행길 풍경이다. 샛바람과 빗줄기에 대항하듯 온몸을 감싸며 일정대로 나아갔다. 물론 빗줄기로 인해 낙상사고 등 위험스러운 부분이 있는 우금산성 등 몇 곳은 일정에서 뺐다. 그렇지만 산성 아래 자리하며 변산 4대사찰로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개암사에서 좀 더 오래 머무르는 횡재를 얻었다. 또한 개암사와 더불어 부안의 명찰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내소사에서도 한참 물오른 봄날의 빛을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었다. 
때론 이처럼 마음에서 지워버릴 때가 필요하다. 지운만큼 채울 공간은 많아지는 법이니.

우중산책 내소사, 정신을 내려놓다

봄의 설렘, 절집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다_1
만개한 복사꽃이 내소사를 찾은 탐방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변산의 남단 진서면 석포리에 위치한 내소사(來蘇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의 말사이다. 창건 연도가 633년 백제무왕이니 무려 1400여년의 역사를 품고 있다하겠다. 물론 몇 번의 중창에 이어 오늘날 가람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선종을 연 달마대사의 얼굴을 떠올리며 찾아간 내소사, 역시나 그곳의 봄은 입구부터 특별했다. '능가산내소사'라 쓰인 일주문 앞에 늠름히 서있는 할아버지 당산나무, 무슨 염원을 담았는지는 몰라도 새끼줄(대보름날 당산제를 지내고 줄다리기를 끝낸 후 매단 듯한 줄?)을 향해 냅다 동전을 던지는 사람들이 즐비했다. 그 모습이 이채로웠다.

경외심이 발동해 잠시 그곳에 머무른 후 일주문을 통과했다. 피톤치드 그윽하다는 전나무 숲길이다. 하늘을 향해 끝 모를 지평선을 연 저마다의 키 높이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좌우로 팔을 휘젓곤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위아래 땅과 하늘의 높이를 가늠하다보니 어느덧 천왕문 앞이다. 휘장을 치듯 만발한 오색연등이 마당에 한 가득이다.

그런데 잠시 후, "맙소사!" 란 탄성이 입에서 툭 튀어 나온다. 어쩌란 말인가. 화려한 연등에 합장하며 삼귀의(三歸依)를 마음속으로 되뇌는데, 눈부시게 보이는 저 화려한 복사꽃이라니. 도로아미타불이 되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비바람에 흩날리는 꽃비의 아름다움보다도 더 어여쁘게 피어난 복사꽃은 나의 온몸을 턱하니 잡더니만 대웅보전 코앞에 내민다. 우중(雨中) 속 가람이 빛을 바라는 순간이었다. 

봄의 설렘, 절집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다_2
내소사 오른편에 자리한 설선당 풍광으뜸이다. 위부분은 설선당 내부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군 가인봉아래 폭 쌓인 내소사. 수령 1000년을 자랑하는 느티나무 할머니 당산나무, 대웅보전의 꽃창살, 고려동종, 봉래루, 설선당과 요사채 그리고 산수유... 안과 밖을 이어주는 너머의 공간배치에서 선조들의 정성이 폴폴 배어나온다. 다시금 우리문화재의 아름다움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절집의 재발견, 아 개암사여~

이토록 아름다운 절이었는지 미처 몰랐다. 부안읍에서 줄포 쪽으로 13Km쯤 떨어진 상서면 감교리에 위치한 개암사(開岩寺) 이야기다. 백제 부흥을 위해 독립운동을 한 본거지였다니 그 역사의 깊이만큼이나 위대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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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 입구

지난 가을 문인들과 함께한 부안 답사 때 지나쳤던 곳이다. 그래서일까? 그리 기대는 하지 않았던 곳인데 나의 예상은 불이문을 지나면서 단박에 깨져버렸다. 양측으로 포진한 꽃나무들의 향연이며, 이층 돌 축대 위로 펼쳐진 가람의 풍광이 '장쾌한 한 폭의 산수화'였기 때문이다.

우금산성에 반쯤 깔린 운무(雲霧)에서 해남 미황사를 떠올렸다. 물론 가람배치가 동일하다는 뜻이 아니고, 느낌이 비슷했다. 재작년 늦가을에 만난 미황사의 아름다움에 빠져 한동안 헤어나지 못했었는데. 이곳 또한 경치가 뛰어나니 얼마간 마음 가장자리에 자리하며 불쑥불쑥 튀어나올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 대웅보전 앞마당도 비경이지만 완전 넋을 잃을 정도로 빠져버린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대웅전 내부의 뛰어난 조형미다. 백제시대의 유물로선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삼존불 위 닫집이며, 천장의 보나 살미에 꾸며진 조각 장식들이 예술의 극치를 이룬다. 

봄의 설렘, 절집에서 마음을 가라앉히다_4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백제의 미,개암사 대웅보전 내부

이를테면 용이 여의주를 문 청룡과 백호는 너무나 정교해 당장이라도 하늘을 날듯하고, 천장판 연꽃무늬의 문향과 그림은 우아함을 넘어 존귀함이 절로 풍긴다. 닫집의 조각은 또 어찌나 정밀하게 새겼는지, 속세 인간의 손가락이 닿기라도 할라치면 바로 스르르 녹아내릴 기세다. 

만나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진실로 백제문화만의 진수를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이런 곳이 인간의 절절함을 잘 들어준다고 했던가. 불성을 가슴에 담고 삼배를 올렸다.

문화재 답사, 늘 가슴이 뛴다

부안을 대표하는 절집, 내소사나 개암사는 모두 조계종에 속한다.
신라 말 중국으로부터 선(禪)을 전수해 구산선문(九山禪門)에서 기원한 조계종은 고려와 조선 그리고 일제 강점기 부침의 역사를 거치면서 마침내 1962년 독신수행자만을 인정하는 통합종단으로 '대한불교조계종'이 탄생됐다. 

조계종의 화두는 참선수행을 하는 간화선풍이다. 부처님이 마하가섭 존자에게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로 법을 전한데서 유래한다. 미얀마 등 수행자들이 철저히 부처의 가르침을 좇아 오후에 음식을 먹지 않고 엄격한 계율을 준수하는 등 초기불교를 고수하는 남방불교와는 달리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찰은 화두에 집중하고 삼매에 든 상태에서 참뜻을 깨닫는 간화선, 북방불교다.

부처님 오신 날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즈음 우리나라 사찰 어디를 가더라도 경내는 물론 입구마다 오색 연등이 걸렸다. 연등회의 역사는 신라시대부터 전해졌으니 꽤나 오래된 민족축제 가운데 하나이다. 때문에 불자이거나 아니면 굳이 불자가 아니더라도 기쁨마음으로 한바탕 잔치에 동참해도 좋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기예수 탄생일을 축복해 주듯. 

우리문화재 대부분이 불교문화재인 만큼 떠나가는 봄날을 뒤로하고 가까운 절집으로 나들이를 떠나자. 온갖 풀과 나무들이 향기를 퍼트려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아~ 부안의 우중답사, 실학의 비조 유형원 선생의 반계서당과 절집 나들이, 비록 비가 내려 추웠지만 참 좋았다. 문화재답사는 사시사철 늘 가슴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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