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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친구가 좋다
2013-04-04 23:57:41최종 업데이트 : 2013-04-04 23:57:41 작성자 : 시민기자   김소라

약 10년만인가보다. 중학교 동창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우리학교 부회장인 친구다. 법조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고, S대 법대를 나왔지만 12년 가까이 사법고시에 계속 도전했다. 
하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먹고 살기 위해 9급 세무 공무원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수원에 있는 세무연수원에 교육받으러 왔다가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고,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모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공부의 신 같은 존재였다. 체육, 미술, 음악까지 기를 쓰고 열심히 하여 올백을 밥 먹듯이 맞았던 친구다. 지금 나이에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는 우리 삶에서 학교 공부가 전부가 아님을 스스로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 걸렸다고 한다. 

만나서 식사를 하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서너 시간 이야기하면서 옛 생각에 잠겼다. 동창들을 만나면 으레 하는 이야기들. 예전의 서로의 모습에 대해서 숨겨진 에피소드를 말한다. 
누가 누굴 좋아했고, 사귀다가 헤어진 이야기에서부터, 20대의 실패와 좌절에 대한 얘기들을 나눴다. 잠시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아이들 교육에 대한 화두가 던져졌다. 그 친구도 뒤늦게 만난 여자와 살면서 작년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 

"나는 공부를 완전히 즐기면서 한 것 같진 않아. 우리 애는 그냥 운동이나 하고, 악기도 좀 다루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 살면 좋겠다. 나처럼 학창시절 꽉 막힌 채로 공부만 하면서 사는 건 아닌 것 같아." 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학창시절에 대한 잠깐의 후회를 비춘다. 
10대 시절부터 공부가 인생의 전부라 생각하고 시험의 연속인 삶을 살았던 것에 대한 후회라고 한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한 길들이 열릴 수도 있는데 한 가지 이외의 것은 보지 못한 거다. 

"그래도 너는 우리 동창들 중에서 진짜 자유롭게 사는 것 같다. 글도 쓰고 강의도 하고, 여행도 잘 다니는 것 같고, 재미있게 사는 친구 중 하나야. 난 20대 때 뭔가 해 보지 못해서인지 어딜 다니는 것도 못 하고, 스물 두 살 때 만난 여자랑 계속 교제하다가 살게 됐고, 다른 직업을 생각해보지도 못했으니. 오히려 나이 들면 너처럼 사는 것도 부러울 것 같네."
이렇게 말하면서 내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 준다. 친구의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삼십 대 중반, 어찌 보면 인생의 중간 고사 성적표를 받은 나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기말고사도 남았고, 학년 말 고사도 남아있지 않은가! 지금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닐 거라는 위안을 서로 나누면서 유쾌한 대화를 나누었다. 

정말이지 학교다닐 때의 공부와 성적은 한 사람의 전체 인생의 1%도 말해주지 않는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왜 자식의 성적과 교육에 목을 메고, 모든 인생을 쏟으면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 하면서 말이다. 인생에는 무수히 많은 변수들이 존재하고, 다양한 선택들 속에서 이루어진 조합으로 또 다른 가치가 창출되기도 한다. 불확실성의 연속이 바로 삶인 것을...

친구는 이야기한다. "공무원이 되어서 연수받으러 들어왔는데, 나보다 나이가 띠동갑이나 어린 애들이 수두룩하더라. 처음엔 그것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일년 일했을 즈음엔 그냥 싹 다 정리하고 이민이나 갈까도 생각했지. 오래 전 내 모습이 한 없이 무너지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데 이민, 그것도 아무나 가서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요즘 조금씩 내 인생을 배워나가는 것 같다. 이제는 띠동갑 아래 같은 직급의 사람들과도 아무렇지 않게 되었지."

그래서 한동안 동창회나 친구들과의 만남도 끊었다고 한다. 집안에서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추앙받었던 시절이 있고, 스스로도 기대치가 높았으니 말이다. 어릴 때 잘 나가던 사람들이 끝까지 성공하기 드물다는 말이 맞나보다. 뒤늦게 뒷심을 발휘하여 대성하는 사람들이 더 길고 오래 가게 되는 경우가 많듯이 말이다. 

옛 친구가 좋다_1
10년 만에 만난 친구의 아들, 선물 받고 좋아 한다

헤어지면서 돌을 앞둔 친구의 아들에게 선물을 하나 전해주었다. 아이 장난감과 이유식 턱받이다. 친구 왈 남자 자식들 만나면 술이나 먹고 헤어지는데 아이 선물까지 챙겨주는 내 마음씀씀이에 고맙다고 한다. 
어떤 이성적 감정을 떠나 진정으로 그 친구가 잘살길 바라는 마음, 아빠로서 자신감 잃지 않고 성실하게 자신의 삶을 지속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또 다시 시간이 흘러 다음 번 만날 때 역시 고마운 이야기들을 나누면 좋겠다. 세월이 흐르니 옛 친구들이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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