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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은 오목한 돌멩이에서 왔다
아내의 고향, 룸자타(rumjatar, 해발1358미터)에 다녀오다(마지막회)
2013-04-04 01:56:00최종 업데이트 : 2013-04-04 01:56:00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남은 이야기를 미루기가 참으로 힘겹다
아쉬움 때문이다. 그러나 넘치는 것보다 여유를 남겨두자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접기로 한다
시민기자가 결혼하기 전과 후 아내의 고향인 룸자타를 처음 찾았다. 아내의 고향이라도 전할 만한 이야기 그리고 느낌들이 넘치는 곳이다. 밭에 거름을 내는 농부들의 바쁜 시간 속에 처갓집을 찾은 이방인은 한가롭고 넉넉한 시간을 보냈다

깊고 깊은 산골
, 멀고 먼 산골이다. 세계 최고봉인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를 네팔인들은 사가르마타라 불러왔다)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깊은 밤에는 북두칠성의 별빛이 유난히도 반짝이는 곳이다. 네팔의 가을은 한국의 가을과 비슷한 시기다. 몽실이라고 하는 계절이 한국으로는 11월 중순부터 12월 중순이다. 그때가 가장 풍요로운 시기다

나의 삶은 오목한 돌멩이에서 왔다_1
룸자타의 한 농부가 밭에 거름을 내고 있다.

나의 삶은 오목한 돌멩이에서 왔다_2
오목한 돌멩이다. 네팔어로 오컬둥가다.

이곳 룸자타에는 귤이 난다. 그 시기에는 옥수수도 감자도 생산되는 시기라며 다음에는 꼭 몽실에 찾으라고 룸자타의 장인, 장모 그리고 처제 가족들, 한국에서 인연이 된 사람들이 당부한다
장모님도 장인께서도 두세 달은 머물다 가야된다면서 카트만두로 귀로하는 것을 막으려 하신다. 하지만 산다는 이유로 장모님과 장인의 만류를 뿌리쳐야 했다. 카트만두로 오기 이틀전 나는 오컬둥가까지 2시간 30분을 걸었다. 큰 처제의 딸인 메리나의 안내를 받으며 둘이서 걸었다.

시민기자는 아내와 결혼하기 오래전부터 네팔의 저명한 씨티쩌런 쉬레스타라는 시인의 시와 노래를 통해 오컬둥가를 알았다
. 오컬둥가는 하나의 큰 돌멩이다. 바윗돌인 것이다. 네팔어로 둥가는 돌멩이다. 오컬은 오목하다는 뜻을 지녔다.

마치 절구통처럼 생긴 돌멩이인데 오컬둥가에서 사가르마타 산 아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곡식을 빻았다고 한다
. 오목하게 생긴 비교적 큰 돌멩이에 의지해서 곡식을 빻은 데서 지명이 유래하게 되었고 그것을 기리기 위해 그 돌멩이를 벽돌로 쌓아 보존하고 있었다. 오목한 곳에 누군가가 네팔의 국화인 랄리글라스를 바쳤다

시인 씨티쩌런 쉬레스타는 나의 삶은 오컬둥가에서 시작된다는 시어를 남겼고 그 노래는 네팔인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이다
. 특히 오컬둥가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시민기자는 이 깊고 깊은 산골에서 오래된 시인의 동상을 찾아 경배하고 오컬둥가를 찾아 지명유래를 배웠다. 돌멩이 하나에도 깊은 사연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사람들의 구심이 되고 삶속에서 노래가 되는 것이 인간의 일이다.

나의 삶은 오목한 돌멩이에서 왔다_3
씨티쩌런 쉬레스타의 동상이다. 공사장의 철근이 적치되어 있고 아이들은 울타리에 매달려있다. 잘보존되고 있지 못한 느낌이지만, 카트만두에서 멀고 먼 산골마을에 그는 깊은 사색을 안은 채 묵상을 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의 삶은 오목한 돌멩이에서 왔다_4
사위의 솜씨자랑으로 한국에서 가져간 삼계탕 재료로 삼계탕을 했다.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

그러니 일상을 살면서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 대해 주의력 깊이 사랑하며 살 일이다
. 지극히 여기며 바라볼 줄 아는 사람만이 현재 자신이 존재의 근거를 두고 사는 땅에 대해 복을 주고 복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라와 고장은 물론 함께 터 잡고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동네의 구멍가게에서부터 길거리의 조형물까지 모두가 다 소중히 여기면 그 자체가 훗날은 역사가 되는 것이다

오컬둥가 여행을 마치고 오후 여섯 시쯤 버스를 타고 룸자타로 돌아왔다
. 마지막 날 밤에는 처제와 처가의 어른들을 모셨다. 준비해간 삼계탕 재료로 토종닭 두 마리를 삶아서 나눠먹었다. 사위의 음식솜씨 자랑시간이 된 것이다. 짧지만 많은 이야기를 품어 안고 카트만두로 돌아왔다
아내에게 할 이야기가 참 많아졌다. 아내가 태어난 고향과 아무런 이야기를 나눠보진 못한 시민기자에게 이제 이야기가 넘친다

멀고 험난한 처가덕분에 마음에 곳간에 채울 것이 많아졌다
. 다음에 찾을 때는 공항이 완성될거라 한다. 그때는 30분 비행이면 찾을 수 있다고 하니 처갓집 가는 걱정이 많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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