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세상을 바꾼 수원 농업 이야기
수원 구 부국원에서 ‘품종의 탄생-수원 쌀 이야기’ 전시, 12월 30일까지
2023-09-04 15:58:41최종 업데이트 : 2023-09-04 15:58:37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벼 육종 1세대 김종호 박사가 통일벼를 개발한 이야기를 사진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벼 육종 1세대 김종호 박사가 통일벼를 개발한 이야기를 사진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내가 만든 품종을 지구상의 한 사람이라도 이용한다면, 그것은 육종학자의 자랑이다. 내가 필리핀에서 만든 품종 중 일부는 인도, 인도네시아, 네팔 등지에서 쓰였고, 인도에서는 우리나라의 통일벼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 재배됐다. 나는 그것을 육종학자의 자부심으로 생각할 뿐이다."(허문회 교수)

 수원의 쌀·옥수수·콩 등 품종 탄생 역사에 대한 농학자들의 구술과 사진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수원 구 부국원(팔달구 향교로 130, 교동)은 '품종의 탄생-수원 쌀 이야기'를 12월 30일까지 연다. 

문현귀 박사는 옥수수 육종 변화를 이끈 육종가다.

문현귀 박사는 옥수수 육종 변화를 이끈 육종가다.


 조선 시대 경제에서 농업이 중심이었다. 농사는 백성 삶의 전부였고, 국가도 농업을 통해 백성을 다스렸다. 정조는 신도시 수원화성 건설을 하면서 만석거와 축만제 조성했다. 쌀 수확량을 증가시키기 위해 저수지를 만들었다. 정조의 농업 장려 정책은 수원 농업의 토대가 됐다. 

쌀농사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나라에서 수원242호는 농가에 단비 같은 종자였다.

쌀농사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나라에서 수원242호는 농가에 단비 같은 종자였다.


 이러한 수원 농업 환경을 이용해 1906년 일제는 축만제 인근에 '권업모범장'을 설립했다. 이는 종자 개량 등으로 농산물을 증식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결국은 식민지 조선에서의 농업 수탈을 위한 기반을 만들어 갔다. 이 과정에서 부국원은 종자를 공급받아 판매하면서 수탈 이익을 얻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옥수수 종자 개발도 필요했다.

1960년대 이후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옥수수 종자 개발도 필요했다.


 해방 이후 이곳에는 '중앙농업기술원'이 들어서고, 1962년 '농촌진흥청'으로 이어졌다. 수원은 농업 중심 도시가 됐고, 1970~80년대 '녹색혁명'을 이끌었다. 이번 전시회도 이 시기의 수원의 쌀·옥수수·콩 등 품종 탄생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전쟁 이후 우리 경제는 어려웠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돌 듯, 우리의 식량 사정은 나빴다. 먹거리의 주식인 쌀이 늘 부족했다. 그러다가 1971년에 신품종인 통일벼를 개발, 육성하여 농가에 보급했다. 벼 육종 1세대 김종호 박사가 통일벼를 개발한 이야기를 사진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영상에는 푸석하고 맛없는 통일벼를 개선하고 유신벼를 만들어 낸 이야기도 나온다. 

농학자들은 연구실에서 밤을 밝히고, 논밭에서도 연구에 몰두했다.

농학자들은 연구실에서 밤을 밝히고, 논밭에서도 연구에 몰두했다.


 문현귀 박사는 옥수수 육종 변화를 이끈 육종가다. 1976년 김순권 박사의 옥수수팀에 합류하여 옥수수 육종을 하게 됐다. 수원 19호, 수원 20호, 수원 21호 이렇게 3품종을 개발했는데, 이 중에 수원 19호가 가장 인기가 있었다. 이는 종자 생산도 잘 되어 채종 농가에서도 좋아하고, 심어 놓으면 생산량도 많아 재배 농가도 좋아했다. 

1970년대 농업은 국가 정책이었다. 1974년 쌀 3,200만 석 돌파 작전도 정부가 주도해서 했다.

1970년대 농업은 국가 정책이었다. 1974년 쌀 3,200만 석 돌파 작전도 정부가 주도해서 했다.


 태광콩과 대원콩을 육종한 김석동 박사의 사진도 보인다. 김순권 박사와 함께 옥수수를 연구하다가 콩을 육종했다. 우리나라 재래종은 장단백목과 일본 품종인 육우 3호를 교배해 최초의 육종 품종인 광교를 만들었다. 이는 다수확성 품종으로 농가에서 인기가 높았다. 감 박사의 인터뷰를 보면 우리는 콩의 종주국이고, 미국 등을 포함해 세계에서 재배되고 있다고 말한다.

콩 종자. 콩은 남만주를 포함한 한반도가 원산지다. 한국이 콩의 종주국인 셈이다. 학자들은 콩의 종자를 직접 생산해 농민들에게 보급했다.

콩 종자. 콩은 남만주를 포함한 한반도가 원산지다. 한국이 콩의 종주국인 셈이다. 학자들은 콩의 종자를 직접 생산해 농민들에게 보급했다.


 수원 농촌진흥청 농학자들은 식민지 시대의 기술을 벗어나기 위해 힘썼다. 1960년대 이후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그 결과 우리 힘으로 주식인 벼와 옥수수, 콩 등의 우량종자를 개발해 농민은 물론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에 이바지했다. 농학자들은 연구실에서 밤을 밝히고, 직접 논밭에서도 연구에 몰두했다. 때로는 가족과 떨어져 타국에서 품종 개발에 땀을 흘렸다. 전시장에는 이런 장면을 연상할 수 있는 사진들이 있다. 수원시정연구원에서 발간한 수원학 구술 총서⑤ 『품종의 탄생 : 농학자가 들려주는 수원 품종 이야기』가 비치되어 있어 학자들의 연구 과정도 읽을 수 있다. 

부국원 영업 안내 책자. 일제강점기에 부국원에서는 종자 판매를 했다.

부국원 영업 안내 책자. 일제강점기에 부국원에서는 종자 판매를 했다.


 전시실의 사진과 영상을 보면 영농 준비부터 수확까지 작전을 수행하듯 증산대책을 추진했다. 이 일에는 청와대도 직접 관여했다. 1970년대는 주요 농작업의 시한을 미리 정해 놓는 시한영농을 했다. 농촌 일손 돕기, 모내기와 벼 베기 행사, 신품종의 보급 책임 면적 시달, 인쇄매체를 통한 홍보 활동 등 시한영농 시책이었다. 시한영농은 1974년 쌀 3,000만 석 돌파 작전을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됐다. 

전시장에는 『품종의 탄생 : 농학자가 들려주는 수원 품종 이야기』가 비치되어 있어 학자들의 연구 과정도 읽을 수 있다.

전시장에는 『품종의 탄생 : 농학자가 들려주는 수원 품종 이야기』가 비치되어 학자들의 연구 과정도 읽을 수 있다.


 올해는 부국원 건물이 교동에 세워진 지 100년이 되는 해다. 부국원은 일제강점기에 농작물 종자와 종묘, 농기구, 비료 등을 판매하던 곳이다. 전시장에는 당시 부국원 관련 책자와 보험 증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토종 종자를 지키지 못했다. 이곳에서 자주적인 농업 국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농학자들을 만나니 묘한 울림이 다가온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급변하는 쌀 산업 환경에서 대응하기 위해 최고 품질의 벼 품종 개발이 이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급변하는 쌀 산업 환경에서 대응하기 위해 최고 품질의 벼 품종 개발이 이루어졌다.


전시 이름 <품종의 탄생-수원 쌀 이야기> 
장소: 수원 구 부국원(팔달구 향교로 130, 교동)
관람 기간: 2023. 8. 30. (수)~12. 30. (토)
관람 일시: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매주 월요일, 법정 공휴일 휴관) 
관람 요금: 무료
별도 주차 공간이 없어 대중교통 이용 권장 
문의: 031-228-2478
 
윤재열님의 네임카드

농업, , 농촌진흥청, 정조, 만석거, 축만제, 권업모범장, 통일벼, 유신벼, 윤재열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