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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기억해야 할 유산, 일제의 잔재
식민 체제를 청산하고 극복하는 역사적 상징물로 활용
2023-08-09 10:11:33최종 업데이트 : 2023-08-09 10:17:10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광복 후에 방화수류정 근처의 노구치 순국비를 부쉈다. 1948년에는 그 자리에 대한민국 독립기념비를 세웠다. 이 비는 1969년 팔달산으로 옮겼다.

광복 후에 방화수류정 근처의 노구치 순국비를 부쉈다. 1948년에는 그 자리에 대한민국 독립기념비를 세웠다. 이 비는 1969년 팔달산으로 옮겼다.


 며칠 있으면 8월 15일 광복절이다. 36년 동안 시달렸던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된 날이다. 78년 전에도 지금처럼 폭염의 날씨가 이어졌을까. 지금 숨이 막힐듯한 여름인데 그때 우리 민족은 어땠을까. 폭염의 날씨에도 당시 우리 선조들은 광복의 기쁨으로 만세를 부르며 거리를 뛰어다녔을 것이다. 

 수원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나라도 없이 핍박받은 한을 떨치고 태극기를 들고 거리를 다니면서 더운 줄도 몰랐다. 그때 사람들은 누가 선도하지 않았지만, 향교 위의 신사로 갔다. 그리고 신사를 단숨에 부숴 버렸다. 강제 참배하며 당했던 설움도 함께 날려버렸다. 또 방화수류정 근처 노구치 순국비로 몰려갔다. 노구치는 만세운동 때에 시위 군중에게 총기를 난사한 인물이다. 수원 사람들은 짐승 같은 노구치를 돌로 쳐 죽였다. 일제는 노구치의 순국비를 세웠다. 일제의 총부리에 저항할 수 없던 민중은 해방이 되자 일본 순사 순국비를 박살 냈다. 만세운동의 시작 터인 방화수류정에 일본 순사 순국비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옛 농촌진흥청 자리에 있는 권업모범장 표지석 등. 우측에 권업모범장 초대 장장 혼다 코스케 흉상 좌대가 있다.

옛 농촌진흥청 자리에 있는 권업모범장 표지석 등. 우측에 권업모범장 초대 장장 혼다 코스케 흉상 좌대가 있다.


 일제강점기의 유산을 청산하고 역사 인식을 고취하는 것은 민족의식을 되찾는 일이이다. 당시 수원 사람들의 행위는 새로 다가올 독립 국가의 건국을 위해서 필연적인 과정이었다. 그런데 이런 관점으로 오늘날에도 주변에 일제강점기 유산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것들은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니 하루빨리 부숴버리자고 한다.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치산치수지비.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치산치수 사업의 혜택은 일본인 지주 세력에게 돌아갔다. 비 면의 총탄 자국은 한국 전쟁 때 것이다.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치산치수지비.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치산치수 사업의 혜택은 일본인 지주 세력에게 돌아갔다. 비 면의 총탄 자국은 한국 전쟁 때 것이다.


 청산되지 않고 있다고 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옛 농촌진흥청 자리에 있는 표지석 등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권선구 서둔동 소재) 화단 속에 권업모범장 경계석, 잠업시험소·여자잠업강습소 표지석, 혼다 코스케 권업모범장장 흉상 좌대가 있다.

수룡수리조합 기념비. 수리조합 역시 대지주들이 수익을 독점하여 중소 지주와 소작농의 몰락을 앞당기는 원인이 되었다.

수룡수리조합 기념비. 수리조합 역시 대지주들이 수익을 독점하여 중소 지주와 소작농의 몰락을 앞당기는 원인이 되었다.


 일제는 일본 농업 체계를 권업모범장을 통해 조선에 강제로 이식했다. 더 많은 쌀을 생산해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서다. 권업모범장 경계석은 수원 권업모범장의 영역을 표시하는 것 중 하나로 1910년에서 1929년 사이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혼다 코스케는 권업모범장의 수장을 맡은 인물이다. 흉상은 없고 현재 좌대만 남았다. 권업모범장은 조선의 쌀 수탈을 위한 역할을 한 곳이고, 그곳에 수장의 흉상 좌대니 없애자고 하는 것이다. 

일월 저수지 제방에 취수탑. '저수관전(貯水灌田)'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워낙 멀리 있어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확대해 사진 상태가 안 좋다.

일월 저수지 제방에 취수탑. '저수관전(貯水灌田)'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워낙 멀리 있어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확대해 사진 상태가 안 좋다.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에도 일제의 잔재가 남아있다. '치산치수지비'다. 이 비는 수원 지역 치산치수 사업의 완료를 계기로 1941년 10월 수원군 일왕면장 이석래가 주도해 건립한 비다. 앞면의 '治山治水之碑' 글씨는 당시 일본인 경기도지사가 썼다. 비에는 1931년 이후 4년에 걸쳐 광교산을 비롯한 수원 일대에 사방공사와 식수조림 공사 등을 시행한 내력을 서술하고 있다.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치산치수 사업의 혜택은 동산농사주식회사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해 이 지역에 일본인 지주 세력에게 돌아갔다. 비 면의 총탄 자국은 한국 전쟁 때 것이다. 이 비는 원래 일왕면에 세워졌으나 장안구 파장사거리 도로변을 거쳐 2021년 6월 수원박물관 야외전시장으로 옮겨왔다. 

수원특례시청 앞 공원에 홍난파 동상 옆 안내판. 친일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수원특례시청 앞 공원에 홍난파 동상 옆 안내판. 친일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옆에 있는 수룡수리조합 기념비도 일제강점기의 것이다. 용인군 수지면 하리에 축조한 여천(원천)저수지와 신대저수지 두 곳의 준공을 기념하는 비다. 일제는 한국을 식량 공급기지로 삼기 위해 1920년부터 산미증식계획을 수립하고 수리조합 사업을 추진했다. 비 이름은 수원과 용인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수리조합 역시 대지주들이 수익을 독점해 중소 지주와 소작농의 몰락을 앞당기는 원인이 되었다. 이 비는 원래 원천저수지 제방에 세워졌으나 해방 후 방치되어 있던 것을 2013년 현재 위치로 이전해 보존하고 있다.
 
상상캠퍼스 입구의 수원 농림학교 터. 일제 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작업을 했다.

상상캠퍼스 입구의 수원 농림학교 터. 일제 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작업을 했다.


 우리가 매일 산책하는 일월 저수지에도 일제의 잔재가 있다. 저수지는 1932년 수원 농지개량조합에서 주변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조성했다. 이곳은 예전에는 광주군 일왕면과 수원군 반월면의 경계 지점이었다. 일월 저수지라는 이름도 각 면에서 한자씩 취해서 지은 것이다. 

 저수지는 지금은 자연 생태계의 보고가 되고 도심 속의 허파 기능을 하고 있다. 특히 주변 자연환경을 그래도 공원으로 이용하고 있고, 최근에는 일월수목원이 개원했다. 이제 저수지와 공원 일대가 동네 주민뿐만 아니라 수원 시민의 휴식처다. 

 아파트 단지 쪽 저수지 제방에 저수지 물을 빼내는 취수탑이 있다. 탑 중간 부분에 '저수관전(貯水灌田)'이라는 글씨가 있다. 워낙 멀리 있어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망원경 등을 이용하면 보인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작은 글씨로 저수지 축조 연도와 일본사람이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글 판도 엄연한 일제의 잔재인데 아직 남겨두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원 구 부국원 건물 안내판. 일제강점기에 지었지만, 해방 이후 관공서, 정당 당사, 병원 등 다양하게 사용했다.

수원 구 부국원 건물 안내판. 일제강점기에 지었지만, 해방 이후 관공서, 정당 당사, 병원 등 다양하게 사용했다.


 물론 이런 것들이 일제강점기의 잔재임은 분명하다. 당시 우리를 탄압하고 고통을 안겨주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이 남긴 것을 모두 없애버린다면 1910년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민족의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일제 식민지 시대를 상징하는 유산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데 필요한 증거물이다. 

 일제의 잔재를 부수지 않고, 안내판을 설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난파 동상도 남겨서 친일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상상캠퍼스 입구(옛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정문)의 수원 농림학교 터에도 일제 잔재 상징물 안내판 설치 작업을 했다. 수원 구 부국원 건물도 같은 맥락으로 보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제 식민지 체제를 청산하고 극복하는 역사적 상징물로 활용하는 것이다. 

 일제 청산 작업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의 반성과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과거의 기억을 통해 교훈을 얻고, 미래를 바라보는 태도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부끄러운 역사도 보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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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광복절, 권업모범장, 농촌진흥청, 일제_잔재, 윤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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