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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신 467주년 '부활하는 이순신'
그냥 성웅이 아니라 아직도 이 땅을 지키는 위대한 神
2012-04-29 03:43:03최종 업데이트 : 2012-04-29 03:43:03 작성자 : 시민기자   권순도
우리에게 생명 다음으로 소중한 존재는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가 아닐까. 
이번 4월 28일은 우리 민족의 영웅 이순신 장군 탄신 467주년 되는 날이었다. TV를 보니 전국 곳곳에서 축제도 열리고 그분의 높은 뜻과 구국의 숭념을 기리기 위한 행사도 많이 열렸다고 한다.

3년전쯤 읽었던 '부활하는 이순신'을 이번에 또 다시 읽으며 충무공이 왜 진정으로 우리의 가슴에서 성웅으로 추앙 받는지 재삼 느낄수 있었다.
최근에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사건, 그리고 일본의 독도 관련 억지주장과 국제적인 분위기 때문에 새삼 국가의 중요성을 더 느끼던 차였다.

참으로 소중한데도 가까이 있어서 고마움을 모르는 존재. 그것이 바로 산소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국가도 산소에 비유한다. 사람들이 국가의 소중함을 잊고 사는게 안타까와서 그런건데, 충무공 이순신을 떠올릴 때마다 국가의 소중함과 나라사랑의 진정한 길을 깨닫게 된다.

'부활하는 이순신'을 쓴 작가 황원갑씨는 이 책에서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국난극복의 순간과 영웅적 서시시를 쓰기 보다는 그의 인간적 면모와 고뇌,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치현상 등을 종합적으로 말하려 했다.
43전 38승 5무승부. 이는 기존의 23전23승리라는 일반 전적과 다르다. 이는 해군교육사령부가 밝힌 전적 내용이다.  이순신 장군의 이런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장쾌한 승리로 수륙 병진으로 조선을 초토화시키려 했던 왜군은 충무공과의 해상전투에서 연패하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충무공은 단지 싸움에만 능한 장수가 아니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바쳐 끝까지 백성과 나라를 사랑한 진정한 리더였다. 이 책에서 작가는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오늘날에도 이순신을 가장 사랑하고 닮고 싶어 하는 영웅으로 꼽는다고 적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또 일평생 정의를 실천함에 있어, 조금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관으로서 항상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였으며, 옳다고 생각되는 일에는 상관이나 권력자에게도 서슴없이 오류를 지적하는 직언을 하였다. 비록 이로 인해 여러 차례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늘 정의를 삶의 핵심가치로 삼고 온전히 실천하였다. 

하지만 왜 당시의 조정은 이 민족적 영웅을 그리도 위해하려 했을까. 
충무공은 그런 조정의 정치적 농간에 대응할 노회한 유연성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애초부터 정치꾼이 아니었다. 단지 지략과 용기와 실력이 출중한 해군 제독이었을 뿐이였다. 

무엇보다도 아쉬운 건, 충무공이 조정의 노회한 정치꾼들의 입맛에 맞추지 못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는 핍박을 받았고, 그 와중에 수많은 조선 수군이 목숨을 잃었다. 승리는 했지만 워낙 큰 숫적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한채 마지막 해전에서 적군이 빠져 도망가는 것을 눈뜨고 바라봐야 했다. 

이 전투에서 조선은 가장 위대한 장군을 잃고 만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순신은 말과 웃음이 적었고, 그의 바르고 단정한 용모는 늘 선비의 풍모였으며, 내면으로는 담력이 있었다" 고 전하고 있다.

충무공은 난중일기에서 이렇게 적고있다.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몰락한 역적가문에서 태어나 외갓집에서 자랐다. / 좋은 직위가 아니라 불평하지 말라, 나는 변방오지의 말단 장수로만 돌았다. /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제독이 되었다./ 죽음이 두렵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적들이 물러 가는 마지막 전투에서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그래서 충무공은 그냥 성웅이 아니라 오늘날까지 여전히 이 땅을 지키고 있는 위대한 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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