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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의 최후를 보며
리비아라는 나라의 독재자였던 '카다피의 죽음'을 보며
2011-10-25 10:24:35최종 업데이트 : 2011-10-25 10:24:35 작성자 : 시민기자   문은성

인터넷을 하다가 전세계가 떠들썩할정도로 요새 이슈가 되는 단어가 연일 상승세를 치고 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세계의 흐름을 파악하는것도 좋지만 나는 아직 우리나라의 사회 경제 정치면도 다 꿰뚫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세계각지에서 일어나는 일은 관심도 없었지만 이번 독재자의 죽음은 나도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우리 가까이에도 김정일이라는 독재자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이번 리비아라는 나라의 독재자가 총살을 당해 죽음을 맞이 한것에 대해 묘한 기분을 받았다. 

시대가 어느때인데 한나라의 통치자 맘대로 독재적으로 나라를 지휘하고 그 밑에 국민들을 다루는 일이 상상할수도 없으며 있어서는 안될 일이라고 보는 입장으로서 아마 리비아의 국민들은 독재자의 죽음을 통쾌하게 받아들였을듯 하다.

왜냐하면 카다피의 시신이 정육점의 냉동창고에 보관중이며 이것을 보기위해 연일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는 기사를 접하고, 한나라의 가장 높은 사람의 죽음을 이렇게 욕되게 하는 상황에서도 그동안 자신들을 괴롭혀 왔던 독재자의 최후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차가운 냉동창고에서 얇은 침대 매트만이 깔려있는 곳에서 싸늘하게 식어 있는 카다피의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너무나도 많은 취재진들과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 촬영을 하며, 이 사진을 전세계적으로 뿔리는 행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천쪼가리 한 장 덮혀있지 않던 카다피의 시신위에 결국엔 이불을 덮어 놓았다.

카다피도 처음부터 독재자의 길을 걸었던건 아니었을 것이다. 
무혈 항쟁으로 정권을 잡은 후에 그도 그만의 관념으로 국가를 부흥시키려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예를 들어 대표적으로 석유를 국유화로 만들어 국가의 경제발전에 힘을 쓰며 리비아라는 국가를 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민주적인 사상을 기반으로 국민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그런 현명한 지도자가 되었어야 하는데,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의 핏줄들이 정권을 장악할 수 있게 이들에게 임명권을 부여하면서부터 독재정치를 시작했던것이다.

말이 40년이지, 40년동안 카다피의 독재정권 속에서 국민들이 겪어야 할 어려움은 말도 못했을 것이다. 말하고 싶어도 말 할 수 없고 그저 순종만이 그들이 살 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카다피의 독재에 참지 못해 국민들의 반란이 시작되었고, 독재자와 이들에 대항 하는 이들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카다피는 가장 하급 계급층들에겐 관대했었으며 상중류층 계급들에게만 독재자였다. 한마디로 상중류층에서 빼앗은것들을 하급층에게 나눠주는 반만 독재자인 셈이었다. 그래서 카다피를 죽인 사람들도 결국엔 상중류층의 사람들이었던것이다.

그래서 하급층의 사람들에겐 독재자가 아닌 그저 나라를 통솔하는 통치자였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뛰어넘어 하급층의 삶에 한줄기 샘물과도 같은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독재는 어떤 이유로든지 정당화 될수 없는것이다.

이번 리비아 사건을 보면서 결론적으로 나라의 독재자의 있을 수 없는것같다. 분명히 반란이 일어나 결국엔 나라가 망하는 길이 될것이기에, 국민과 소통하며 통치를 하는 통치자가 가장 현명한 통치자임을, 많은 나라의 현재 통치자들은 깨달아야 할것이다.

우리와 가장 근접하게 살고 있는 북한의 통치자가 시급히 깨달아야 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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