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인문칼럼] 노력도 재능이라면
정수자 시조시인
2021-12-15 11:02:45최종 업데이트 : 2021-12-14 14:48:19 작성자 :   e수원뉴스

인문칼럼

 


글 좀 쓴다면 앓는 병이 있다. 신춘문예 병(病). 몇 년은 기본, 십년 이상도 앓는다. 당선이나 포기 전까지는 지병인 셈이다. 해마다 11월 초 공모부터 12월 초 마감까지 앓는 소리가 넘친다. 예전에는 무슨 고시 준비하듯 원고뭉치 싸들고 절에 들어갔던 후일담도 꽤 들렸다.

 

그만큼 도전을 자극하는 게 신춘문예다. 새해 첫날 일간지 지면을 장식하는 등장부터 화려하다. 그게 종이신문의 위력이 떨어져도 신춘문예의 매력은 줄지 않는다는 요인의 하나다. 대부분은 문예지보다 상금이 많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겠다. 등용문이 소수였던 시절과 달리 등단 기회가 확 늘었음에도 여전히 신춘문예로 응모가 몰리는 까닭들이다.

 

역사도 길고 사연도 많은 신춘문예. 하지만 떨어지는 순간 바로 도진다는 고질(痼疾)이 고약하다. 당선 소식은 대부분 크리스마스쯤에 선물처럼 전하게 된다. 당선자 1인 외에는 모두 쓰디쓴 연말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혹자는 당선소감까지 써놓고 오매불망 낯선 번호 전화만 기다린다. 예전에 전보 통지도 있었지만, 지금은 전화로 알리니 전화를 떼어놓을 수 없는 게다. 간혹 보이스피싱 의심이 당선소감에 얹히는 연유다. 덜컥 마신 김칫국 후문들은 치받는 신물을 삼키며 쓰기의 샅바를 다시 잡는다는 것이다.

 

어쩌다 신춘문예 심사를 십여 년 하면서 눈 시린 응모를 좀 만났다. 그중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보내오던 고령의 응모자다. 정성껏 적은 문집 같은 필사본 원고를 제본까지 해서 응모하곤 했다. 마치 한해의 정리처럼 한 3년간 보내던 응모가 끊긴 것을 보면 도전의 운명을 벗어났지 싶다. 그렇듯 내려놓기 미안한 정성이 많지만 마음만으로 손들어줄 수 없는 게 심사라는 냉정한 과정이다. 그들의 문학적 열정을 내 안에 담아둘 뿐.

 

그런데 왜 신춘문예에 몰리는 걸까. 활자가 영상에 밀려난 지 오래건만, 신춘문예 철이면 다시 가슴 뛰는 문학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스포트라이트 지나면 당선자도 곧바로 새 작품 쓰기에 골몰해야 하는데도 그렇다. 게다가 신춘문예 당선자는 조명과 달리 모지(母誌, 출신 문예지) 없는 외로움이 또 기다린다. 처음 얼마간은 당선자 특집 같은 원고청탁에 즐거운 비명으로 웃지만, 금세 발표지면 없는 긴 고독과 마주 서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쯤 전화를 꼭 잡고 기다리는 응모자가 많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있을 게다. 응모를 혼자만의 비밀로 숨겨도 가슴 졸이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길 것이다. 평소처럼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전화 들여다보기에 지쳐갈 것이다. 그런데 문학은 그런 시간들이 키운다. 끙끙 앓으면서 쓰고, 고치고, 다듬고, 보내고, 기다리고, 다시 애타는… 실패가 쌓일수록 문학의 양식도 쌓이는 것. 그런 시간의 열망과 좌절과 고통을 자양 삼지 못하면 글쓰기도 시작이 곧 끝이기 십상이니 말이다.

 

그래서 어느 시인은 '노력도 재능'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반짝하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 마라토너처럼 꾸준한 노력이 필수 재능인 게다. 요즘은 노력도 '수저론'과 함께 '노~~~력'이라는 자괴감의 표현이 있어서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노력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성장 동력이 아닌가. 무엇보다 노력 없이 이 풍진 세상을 어찌 버텨갈 것인가. 또 어디서 자기 갱신의 힘을 얻을 것인가.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자 약력

 

인문칼럼, 신춘문예, 노력, 작가, 글쓰기


추천 11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