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송지대, 비록 포도와 딸기는 사라졌어도
2012-03-23 12:47:21최종 업데이트 : 2012-03-23 12:47:21 작성자 : 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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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시대에는 유난히 소나무에 얽힌 일화가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이 현륭원 소나무 숲 송충이 일화다. 노송지대, 비록 포도와 딸기는 사라졌어도_1 지금의 경수산업도로(1번국도) 부근에는 약 5km의 노송이 서 있는 지대가 있다. 이곳을 노송지대라고 부른다. 여기에도 정조의 이야기가 스며 있다. 아버지 묘소를 옮기고 현륭원이라 이름 지은 정조는 현륭원의 식목관에게 내탕금 1000냥을 내리며 지시한다. "이 돈으로 소나무와 버드나무를 사서 지지대고개로 가는 길에 심도록 하라." 그곳은 정조가 현륭원을 참배하러 갈 때 늘 거치는 길이었다. 아버지를 향해 가는 길이 황량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내린 조치였다. 식목관은 정조의 하사금으로 소나무 500그루와 능수버들 40그루를 사서 심었다. 현재 노송지대에 남아 있는 소나무는 바로 그 나무들의 후손들일 것이다. 소나무가 늘어선 길가에는 목민관들의 공덕비와 송덕비들이 늘어서 있었다. 세월이 지난 뒤 이 노송지대는 수원딸기와 포도를 먹으러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명소가 되었다. 수원은 특히 딸기가 유명했는데, 다른 지역의 딸기가 거의 들어갈 시기인 5월경에 출하되기 때문에 더욱 인기가 있었다. 특히 그즈음에는 노송지대의 솔꽃가루가 한창 날릴 때라 딸기 표면에 하얀 가루가 앉아 있었다. 덕분에 정조의 효심으로 형성된 노송지대는 늘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는데 그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행락객들과 자동차가 너무 많이 모여드는 바람에 소나무가 많이 훼손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노송지대는 많이 축소되었다. 수원딸기와 포도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교통이 발달하고 집집마다 승용차를 갖게 되면서 행락객들이 아예 농원으로 가는 바람에 노송지대는 활기를 잃게 되었다. 길가에 서 있던 공덕비와 송덕비는 수원역사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노송지대, 비록 포도와 딸기는 사라졌어도_2 하지만 몇 그루 남지 않은 소나무일망정 이곳을 지키고 서 있는 것이 고맙다. 거칠거칠한 소나무를 끌어안으면 딸기향, 포도향, 즐거운 소음, 그리고 정조의 마음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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