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비었지만 최고의 방어시설, 공심돈
2012-01-06 18:09:33최종 업데이트 : 2012-01-06 18:09:33 작성자 : 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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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영 군사들이 훈련을 하던 연무대 근처에는 독특한 건축물이 있다. 공심돈(空心墩). 말 그대로 '속이 텅 비어 있는 돈대'다. 동북공심돈 당시에는 네덜란드에서 들여온 불량기포와 정조 때 새로 개량한 백자총 등이 신무기를 쓰고 있었다. 큰 구멍에는 불량기포를, 작은 구멍에는 백자총을 설치해 적들이 어느 방향에서 총탄이 날아올지 몰라 겁먹게 했다. 처음 만들어진 건 남공심돈인데 지금은 없어졌다. 서남공심돈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동북공심돈은 소라처럼 돈대 안을 빙글빙글 올라가도록 설치되었다. 이것은 요동 계평돈의 모습과 유사하다. 특히 동북공심돈은 2층에서 동시에 대포를 쏠 수 있어 대단한 위력을 자랑했다. 보통 건물들은 대포를 쏘면 무너질 염려가 있는데 동북공심돈은 과학적 계산과 튼튼한 축성법으로 문제가 없었다. 동북공심돈에 서면 연무대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장용영 군사들부터 멀리 성안의 시장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상인들까지 보이지 않는 게 없을 정도였다. 남공심돈은 시가지 정리로 사라지고, 동북공심돈은 한국전쟁 때 폭격 피해를 입었지만 서북공심돈만은 무탈하게 남아 있다. 1797년 1월, 정조는 3정승 6판서를 비롯한 신료들을 거느리고 화성으로 행차했다. 이 행차에는 2년 전 화성 행궁에서 열린 혜경궁 홍씨 회갑연만큼이나 많은 신료들이 참석했다. 정조는 완성된 화성을 둘러보다 서북공심돈 앞에서 모든 신하들에게 큰소리로 하교했다. "우리 동국(東國)역사상 최초로 지어진 건물이다. 마음껏 구경하라!" 무수한 변란 속에서도 서북공심돈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정조의 이 무한한 사랑 때문이 아닐까?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은 화성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고 있다. 전쟁의 아픔으로 상처 난 동북공심돈은 1975년 화성 복원사업으로 원형을 회복했다. 서북공심돈은 전투시설물인데도 선비처럼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여 찬사를 받는다. 국내 유수의 건축 디자인이 이 공심돈을 본뜨고 수원시 심벌마크로 이 공심돈을 형상화했을 정도였다.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 안쪽 텅비었지만 최고의 방어시설, 공심돈_4 화성은 돌로 만들어졌다. 그 돌은 수원의 산악에서 가져왔다. 오랜 세월 숨어 있다가 기적처럼 나타나 정조의 꿈을 이루어 준 수원의 돌. 그것은 정조가 평생 사모한 아버지 사도세자가 준 선물이기도 했고, 임금의 진심을 아는 백성들이 보여 준 신뢰의 상징이기도 했다. 돌은 땅의 뼈다. 수원 화성은 수원의 뼈로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수원을 지키는 진정한 뼈대가 되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수원 화성 코스를 걸으면 조선의 마지막 불꽃, 위대한 계몽군주 정조의 호흡이 느껴진다. 백성에 대한 사랑, 자주국가의 꿈을 향한 웅지로 힘차게 뛰었을 그의 심장 고동이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