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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소멸에 맞서다]16 '텃세' 없는 어촌 마을, 젊은 귀어인이 몰리다
2023-08-28 11:32:19최종 업데이트 : 2023-08-28 07:01:02 작성자 :   연합뉴스

화성시 백미리 주민 최근 5년새 12% 증가…어촌계원 절반이 '귀어인'
귀어인들 "낯설고 힘든 귀어 생활, 주민들이 따뜻하게 도와줘"
소득 최하위권서 전국 어촌계 상위권 '도약'…"한국 대표 관광지로 키울 것"
[※ 편집자 주 = 2010년대 중반 지역소멸론이 제기된 당시 79개이던 '소멸 위험' 지역은 올해 118곳으로 늘었습니다.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이제 그 그림자는 대도시까지 드리우고 있습니다. 모두가 암울한 현실만을 얘기하는 이때 온 힘으로 저출산과 초고령화에 맞서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지자체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출산율을 끌어올리고 인구 유치에 발 벗고 나서는 그곳, '지방소멸에 맞서는' 그곳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그 현장을 생생하게 취재해 매주 월요일 1편씩 기획 기사를 송고합니다.]
(화성=연합뉴스) 최해민 기자 = "갯벌 체험할 곳을 검색하다가 백미리 마을을 알게 돼 찾아왔어요. 와보니 마을이 조용하고 갯벌이 깨끗해 마음에 드네요."
지난 9일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마을에서 만난 70대 부부는 갯벌 체험용 호미를 들고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서울 중랑구에서 왔다는 부부는 썰물 때가 오기 전 일찌감치 와 백미리 어촌계가 운영하는 슬로우푸드 체험장에서 점심으로 꼬막비빔밥을 먹은 뒤 갯벌로 향했다.
"제부도, 대부도, 영흥도 같은 유명한 관광지에는 여러 번 가봤지만, 백미리 마을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점심 식사도 매우 만족스러웠고 간만에 아주 즐겁네요."
제부도와 궁평항 등 화성에 있는 유명 관광지에 밀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백미리 마을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귀어인들이 몰려들고, 관광객도 꾸준히 늘고 있다. 젊은이들이 떠나고 노인들만 고향을 지키는 다른 어촌과 달리 마을은 갈수록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 마흔살 어촌계장, 소득 최하위 어촌을 살리다
화성시청에서 차로 30여분을 달려 서쪽으로 가다 보면 305번 지방도 우측에 '백미리 어촌체험마을'이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그대로 직진하면 궁평항이 나오지만, 우측으로 난 마을 길로 접어들어 2㎞가량 더 가면 백미리 마을에 닿는다.
백미리(百味里). 말 그대로 100가지 맛을 느낄 수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백미리 마을 입구 안내판에는 '백가지 맛, 백가지 즐거움 백미리'라는 문구와 함께 마을에서 자체 개발한 브랜드 이미지가 선명하게 찍혀 있다.
깨끗하게 정비된 주차장 오른쪽으로는 드넓은 갯벌을 가로질러 감투섬과 연결된 길이 보인다.
머리에 쓰는 감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감투섬으로 이름 붙여진 섬은 육지로 통하는 길이 밀물 때 바다에 잠겼다가, 썰물 때면 드러나 걸어서 건널 수 있다.
썰물 때 드러나는 갯벌은 봄이나 가을 주말에 하루 수 만명이 몰리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과거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 마을에 불과했던 가난한 어촌마을 백미리는 2004년 마흔살 젊은 어촌계장이 마을을 이끌면서 변화의 새바람을 맞았다.
19년째 백미리 어촌계를 이끄는 김호연(59) 계장은 2004년 선출 직후부터 마을 살리기에 사활을 걸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의 생업은 어업보단 농업에 가까웠고, 자연산 굴만 소규모로 채취했다. 관광객 또한 별로 없었다.
김 계장은 어민들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 연안과 갯벌에서 채취할 수 있는 수산물의 종류를 확대하고, 판로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남해안에서 주로 채취하는 새꼬막을 백미리에서 키울 수 있도록 연구했고, 여기에 성공하면서 어촌계원들은 새꼬막 양식으로 소득을 높일 수 있었다.
수산물은 자연산 조개와 굴, 바지락, 새꼬막, 낙지 등으로 확대됐다. 어촌계 판매 상품도 간장게장, 새우장, 밀키트 등으로 다양해졌다.
갯벌 체험 프로그램도 이때부터 본격화했다.
트랙터를 개조한 셔틀을 도입해 썰물 때 감투섬까지 태워주고 체험료를 받는 방식으로 마을의 수입을 늘렸다.
결과는 놀라웠다.
2000년대 초 백미리 어민들의 연간 소득은 전국 2천200여개 어촌계 가운데 최하위권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연간 100억원대의 수익을 올리면서 전국 100위권에 진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가난한 어촌 마을의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였다.
◇ '텃세' 없는 어촌, 귀어인들이 몰려오다
6년 차 귀어인 김동문(63) 씨는 요즘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6시면 어선에 오른다.
물때에 맞춰 6시간 정도 자연산 바지락을 캐고 나면 오후는 자유시간.
텃밭을 가꾸고 운동을 하거나 취미 활동으로 오후를 보낸다. 김씨는 도시에선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백미리에선 현실이 됐다며 만족해한다.
인천에서 통신장비 관련업체를 운영했던 김씨는 2016년부터 귀어를 준비했다.
자녀들은 모두 독립한 터라 1년여간 백미리 근처에 펜션을 빌려 혼자 지내면서 어촌의 사계절을 보내본 그는 이듬해 정식으로 백미리 어촌계에 가입했다.
"물때에 따라 조업 시간이 바뀌다 보니 열흘 정도 일하고 닷새 정도 쉴 수 있어 여행을 많이 다니죠. 도시 생활에 비해 스트레스받는 일이 적고 근무 시간도 자유로워 행복하게 지내고 있네요."
백미리의 상전벽해는 귀어인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2019년 416명이던 백미리 주민은 2021년 457명, 올해 464명 등 꾸준히 늘고 있다.
어촌계원 124명 중 절반 이상이 귀어인이다. 어촌계원 평균 연령도 49세에 불과하다.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인구 소멸'을 우려할 정도로 주민이 줄고, 남은 주민도 대부분 고령자인 것과 확연하게 대조된다.
다른 어촌계와 달리 젊은 귀어인이 늘어나는 데에는 어촌계 가입 문턱을 낮추는 획기적인 시도가 배경이 됐다.
국내 상당수 어촌계는 가입비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백미리 어촌계는 10여년 전부터 특별한 조건 없이, 백미리 마을에 거주하고 본인이 희망하면 계원으로 받아줬다.
지금은 문호를 더 넓혀 자격 요건을 '서신면 거주자'로 확대했다.
귀어인들이 초반에 기술이 부족해 조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원주민들이 부족량을 채워주는 식으로 '텃세' 없이 귀어인들을 보듬었다.
어촌계에서 간사직을 맡고 있는 최승용(33) 씨도 백미리의 '無텃세'에 감동한 귀어인 중 한 명이다.
서울 신당동에 살다가 3년 전 백미리에 온 최 간사는 "처음 여기 왔을 땐 준비된 것 없이 몸만 왔다"며 "그런데도 어촌계 선배들은 가족처럼 받아줬고, 지금은 자유롭게 일하면서 중소기업 연봉 이상의 소득을 얻고 있다"고 웃음지었다.
◇ 귀어인 위한 교육·인프라까지…"한국 대표 관광지로 키울 것"
백미리 사람들의 '귀어인 보듬기'는 단순히 텃세를 부리지 않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귀어인을 위한 교육과 인프라 갖추기까지 이어진다.
백미리를 찾아간 9일 주민공동이용시설 2층 세미나실에서는 해양수산부와 경기도, 한국농어촌공사가 공동 주관하는 여성어업인 대상 교육이 한창이었다.
어촌계원 14명을 대상으로 한 이날 교육은 '바른 자세 및 운동을 통한 통증 스트레스 관리 교육'을 주제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
몸을 쓰는 작업이 많아 통증에 시달리기 쉬운 어업인들을 위한 교육이었다.
교육에 참여한 한 여성 귀어인(44)은 "재작년에 귀어해 살고 있는데, 이런 유익한 교육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고 수업도 자주 있다"며 "타지에서 왔는데도 가족처럼 잘 챙겨줘 귀어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고 했다.
도시 생활을 접고 귀어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백미리 마을은 그런 이들을 위해 귀어를 연습할 기회를 제공하는 '1년 살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지원하는 어촌뉴딜 사업을 통해 조성된 슬로우푸드 체험장 2층에는 1년 살기 참가자들을 위한 숙소 'B&B 하우스'도 마련했다.
'Bed & Breakfast'의 준말로, 원룸 형태의 8개 객실과 함께 공동 테라스, 바비큐장 등도 갖췄다.
지금은 8개 객실 중 6개 객실에 참가자가 입소해 귀어를 준비하고 있다.
어촌계는 1년 살기 프로그램 참가자에게도 어촌계원 수준의 자격을 부여한다. 당사자가 희망하면 기간 연장도 가능하다.
B&B 하우스에서 1년 4개월째 살고 있는 윤정환(39) 씨는 최근 경기도해양수산자원연구소가 주관하는 4주간의 귀어학교 교육까지 마쳤다.
윤씨는 "어촌 생활이 금어기나 계절 등 시기에 따라 수입이 들쭉날쭉한데, 어촌계 선배들이 그럴 때마다 '이런 거 해보면 어떨까', '저런 거 한번 해보지' 등 많은 것을 알려준다"고 전했다.
그는 "대부분 어촌계가 텃세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이곳에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고 그늘막이 돼 품어주니, 꿈만 꾸던 귀어가 현실이 될 수 있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백미리는 도시생활을 즐기다가 귀어한 사람들을 위해 여가 시간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도 마련했다.
주민공동이용시설 2층 헬스장에는 운동기구는 물론 당구대, 탁구대, 필라테스 기구까지 갖췄다.
시골 마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필라테스 기구는 최근 귀어한 여성 주민 중 한 명이 필라테스 강사 이력이 있어 기구가 필요하다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어촌뉴딜 사업을 통해 지어진 주민공동이용시설 내에는 쾌적한 샤워실과 어린이 작은 도서관, 매점, 세미나실 등도 갖췄다.
김호연 어촌계장은 "어촌뉴딜 사업에 도전해 지원을 받은 것이 마을을 살리는 신의 한 수였다"며 "주민들이 화성시와 협업해 직접 백미리의 새 모습을 설계하다 보니 그야말로 주민들이 원하는 모습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명근 화성시장은 "과거 잘 알려지지 않은 백미리 마을이 주민 중심의 다양한 노력을 통해 유명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며 "실제로 많은 귀어인이 백미리로 몰리는 추세인데, 시에서도 더 실질적인 지원책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계장은 "어촌계 운영이 잘돼 은퇴한 선배들에게 어촌계 차원의 '노인연금'을 드리는 것이 꿈"이라며 "이를 위해 백미리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부상하도록 더욱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goal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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