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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면 한번쯤 꿈을 꿉니다
'효재처럼 살아요'를 읽고
2010-04-06 11:48:56최종 업데이트 : 2010-04-06 11:48:56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어느 날 아침 그녀는 방송에서 긴 생머리를 한 가닥으로 묶어 한쪽으로 늘어뜨린 단아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말소리도 크지 않게 나지막하고 부드럽게 간간이 흐르는 미소는 수줍은 시골 소녀를 연상케 했다. 기인이라 호칭해도 껄껄껄 웃는 사나이는 그리 평범해 보이지 않았지만  얼굴에 가득한 미소는 왠지 닮아 있었다. 

그렇게 짧은 첫인상은 오래가지 못하고 이내 잊어버리고 있었다. 

여자라면 한번쯤 꿈을 꿉니다_1
여자라면 한번쯤 꿈을 꿉니다_1
두 번째의 만남은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였다. 만남의 장소로 잘 이용하는 책방에서 먼저 가 기다리던 친구가 "잠깐만, 이것만 마저 읽고 가자" 한다. 
마지막 장을 넘기는 책을 슬그머니 집어 들어 보니 '효재처럼 살아요' 다. 언젠가 아침방송에서 얼핏 보았던 검정하의에 빨간 상의를 입은 그 모습 그대로다.  방송에서 보고 또 책도 나온 걸 보면 유명하긴 한 모양인데 "살림하는 여자들이 다 그렇지 뭐" 했다. 

서점에 들러 책을 둘러보고 가끔 마주친 '효재'는 액자에 들어 있는 사진처럼 슬쩍 스치고 지나치는 수많은 그림중의 하나였다. 잊혔다가 다시 보면 '생머리를 길게 한쪽으로 묶어 검은 하의에 빨간 상의를 입은 여자'일 뿐이었다. 

지난 길상사에 갔을 때에도 '효재의 집'임을 알리는 현판을 보고도 별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아, 성북동 효재네 집이 여기구나" 했을 뿐이다. 

그런데 오늘 다시 TV방송에서 맞닥트렸다. 함께 출연한 게스트들에게 직접 만든 꽃수가 놓인 행주를 선물하였다.  왔다 갔다 집안일을 하면서 토막 화면을 보면서 갑자기 바빠졌다. 

 "도대체 뭐하는 여자일까?" 
서둘러 베란다에 빨래를 널고 집을 나섰다. 
 '어머. 너무 일찍 나온 것 아냐?' 

어쩌면 책방 문을 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종종 걸음으로 갔더니 다행히 문이 열렸다.  가끔씩 눈도장을 찍었던 '효재'는 오늘도 그곳에 있었다. 웃을 듯 수줍은 소녀를 닮은 여자. 스킨다비스 넝쿨이 실하게 뻗어 책방치고는 화초들이 참 많다고 생각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몇 번째의 만남일까? 언제고 '효재'에 대해서 약간의 궁긍증을 가졌더라면 벌써 친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효재'는 아이가 없고 또 남편은 있지만 함께 살지는 않는다. 그래서 아이 돌보는 시간 남편에게 들이는 시간을 살림하는데 시간을 쓴단다. 
본인의 입으로 세월 좋아진 탓에 아이가 없어도 남편이 멀리 오래 떨어져 있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단다. 험한 세상이었다면 벌써 칠거지악으로 이리 행복하게 살지는 못했을 것이라 했다. 
아이들을 좋아해 인형에게 이름을 하나하나 지어주고 모자와 드레스를 손뜨개질을 해서 입힌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니 기가 살아서 자신감을 갖고 돌아가는 아이들도 여럿 있단다. 아이들에겐 기를 필 수 있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단다. 

혼자 있는 동안 하루에 열세시간 이상 일에 몰두 하여 보자기를 만들고 살림을 한다. 사람만나기를 좋아하여  선물 만들기도 좋아한다. '효재'의 선물은 모두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든다. 맞춤형 선물이랄까 선물 받을 사람에게 꼭 맞는 것을 선물에 대하여 자세한 설명과 함께 주면 대부분 감동하지 않을 것이다. 

낮에는 한복을 만들고 또 보자기를 만든다. 
보자기는 쓰임새가 다양하여 포장재로도 훌륭하고 테이블보로도 사용한다. 그리고 열린 가방의 덮개로 쓴다.  자연친화적인 삶에서 선물도 자연에 가깝다. 
서천에 살고 있는 남편을 만나러 갈 때마다 지인들에게 줄 김을 사온다. 반들반들한 김을 보자기에 싸서 선물하면 추가 주문이 들어 올 정도라 했다. 
백화점에서 천편일률적인 선물 받기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선물을 받고 나면 감동하지 않을 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국의 '타사 튜터'라고 불리 우는 여자, 하루 종일 바느질을 하고도 성이 차지 않아 다시 맨발로 나가 풀을 뽑는 여자. 서울의 한복판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을 닮아 가는 아름다운 여자. 

여자들은 처음엔 옷에 사치를 내고  가방에 사치를 부리다 보석에 사치를 내고 마지막에 그릇에 사치를 낸다고 한다. 
사치를 부리고 싶어졌다. 철철이 바꿔보는 그릇들을 날씨에 기분에 맞추어서 바꿔보고 싶다. '효재'처럼은 할 수 없어도 조금은 '효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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