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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우화관, 별주’ 어떻게 복원되었나?
복원 담당자와 답사하면서 해설 들어
2024-05-20 14:02:07최종 업데이트 : 2024-05-20 13:18:59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화성행궁 '우화관, 별주' 어떻게 복원되었나? 화성사업소 오선화 학예연구사

화성행궁 '우화관, 별주' 어떻게 복원되었나? 화성사업소 오선화 학예연구사

화성행궁은 1789년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한양의 배봉산에서 수원부 읍치 자리로 옮기고(당시에는 현륭원이었고 이후 융릉이 되었다.) 신읍치를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건립했다. 화성행궁은 평상시에는 관청으로 사용했고 정조대왕이 행차하면 수많은 수행원과 함께 궁실로 사용했다.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1789년부터 1800년까지 13차례 수원을 방문해 머무르며 현륭원에 참배했던 대단히 중요한 공간이다. 1795년 윤 2월 9일부터 16일(양력 3월 29일부터 4월 5일)까지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모시고 8일간 수원에 행차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수원향교 대성전 참배, 화성행궁에서 문무과 별시 거행, 현륭원 참배, 서장대 주간 및 야간 군사훈련,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어머니 회갑 잔치, 화성행궁 신풍루에서 사민과 진민에게 쌀을 나누어 주고, 화성행궁 낙남헌에서 양로연, 수원화성 시찰, 화성행궁 득중정에서 활쏘기 등의 행사를 했다.
화성행궁 우화관 앞에서

화성행궁 우화관 앞에서

화성행궁은 100년 이상 관청과 궁실로 사용되다가 나라가 망하면서 제 기능을 잃어가다 낙남헌을 제외하고 일제에 의해 모두 훼철되기에 이르렀다. 1989년 뜻있는 수원시민들이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하고 지속적인 복원 추진 노력 끝에 결실을 거두었다. 1995년부터 화성행궁 1단계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2002년 1차 복원이 완료되어 행궁 권역이 복원되었다. 이후 2016년부터 화성행궁 2단계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2023년 12월 우화관과 별주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관아 권역 건물까지 복원되었다.
화성행궁 우화관 안

화성행궁 우화관 안

화성행궁은 일제에 의한 훼철이란 수난을 당한 지 119년, 복원을 시작한 지 34년 만에 복원사업이 마무리되었다. 지난 4월 24일 오후에 '수원 화성행궁 우화관 및 별주 복원 개관식'이 열렸고 관람객에게 공개되었다. 

우화관(于華觀)은 화성유수부의 객사이다. 객사란 지방 수령이 매달 1일과 15일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 앞에서 의례를 행하는 곳이면서 관아를 방문하는 사신이나 관리들이 머물던 곳이다. 별주는 왕이 행차할 때 음식을 준비하고 관련 문서를 보관하던 곳이다. 
화성행궁 우화관 안, 우화관 터에서 발굴된 유물들

화성행궁 우화관 안, 우화관 터에서 발굴된 유물들

지난 5월 18일 오후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수원시 화성사업소 오선화 학예연구사가 '수원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라는 주제로 복원 과정에 대해 강의하고 우화관과 별주를 방문해 해설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선화 학예사는 "화성행궁 복원은 행궁 권역, 관아 권역, 군영 권역을 119년 만에 완전히 복원한 것에 큰 의미가 있으며 민족 정기와 얼을 되찾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화성행궁 우화관 내삼문

화성행궁 우화관 내삼문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를 복원하는데 1801년에 간행된 '화성성역의궤'와 발굴자료를 바탕으로 1796년의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었다고 한다. 수원화성이 축성되기 이전인 1789년에 건립한 우화관은 '신읍영건공해간수성책', '한글 정리의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성전도 병풍' 그림을 참고해 복원했다고 한다. 1793년에 건립된 별주는 발굴 조사 결과 건물지가 확인되어 1891년 간행된 '화영중기'를 바탕으로 복원하였고 발굴조사에서 확인되지 않은 일부 건물과 담장은 복원하지 않았다.
화성행궁 별주 앞에서

화성행궁 별주 앞에서

화성행궁 정문인 신풍루로 들어가 좌익문 오른쪽에 있는 중약문으로 들어가면 이번에 복원한 우화관 공간이 나온다. 넓은 운동장과 우화관 내삼문이 보이고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우화관이 있다. 우화관은 정청과 동헌, 서헌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청 안에는 발굴 당시의 사진과 유물을 전시하고 복원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고 있어 우화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우화관 서쪽에는 낙남헌이 있는데 낙남헌 동쪽에 동행각, 작은 연못과 취병을 복원했다.
화성행궁 별주 앞에 복원된 연못

화성행궁 별주 앞에 복원된 연못

이번에 새로 복원한 공간을 답사하면서 한 시민은 "우화관 현판이었을지 불확실한 '화관(華觀)'이란 탁본만 있는 것을 '우화관(于華觀)'이란 현판으로 복원한 점, 단청을 한 곳과 하지 않은 곳의 기록과 그림이 불확실하다는 점, 별주의 연못을 방형이 아닌 형태로 복원한 점, 우화관 외부의 담장을 설치하지 않고 철로 된 펜스를 설치한 점, 화령전 밖에 철로 된 펜스를 설치한 점, 화령전 밖에 홍살문을 설치하지 않은 점, 외부에서 우화관을 볼 수 없게 만든 옛 신풍초등학교 강당을 철거하지 않은 점, 삼문의 색상을 복원하는 데 근거가 부족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화성행궁 미로한정 아래에서

화성행궁 미로한정 아래에서

별주 영역은 1795년에 있었던 혜경궁홍씨의 회갑잔치 기록이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자세히 나와 있어 앞으로 다양한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고 했다. 복원을 담당한 실무자로부터 자세히 설명을 들을 수 있어 화성행궁 우화관과 별주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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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우화관, 별주, 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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