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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대한 단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이 기억하는 장면들을 몇 개씩 가지고 있다’
2008-09-08 20:29:21최종 업데이트 : 2008-09-08 20:29:21 작성자 : 시민기자   장지현
기억에 대한 단상_1
기억에 대한 단상_1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이 기억하는 장면들을 몇개씩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은 뇌의 한 주름 속에 곱게 개켜져 있다가, 어느 순간마다 틈을 비집고 나와 사람들의 눈앞에서 재생되고는 했다. 아파트의 어두운 복도에서 ……가 어떻게 ……던가, 집 뒤에서 마주쳤던 고양이가 어떻게 등을 세웠었던가, 달걀을 부칠 때 그 말캉한 덩어리가 어떻게 깨진 알 껍질 사이로 흘러내렸었던가, ……라고 화를 내던 사람의 미세하게 떨리던 눈썹과, 뒤꿈치에 막 올이 나가던 스타킹, 높은 건물의 창가에서 내려다본 방금 오후 열두 시를 맞이한 거리, ……그런, 일 초가 채 흐르기도 전의 기억이 아련한 일상을 때때로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대개는 느리고 긴 파동을 타고 흩어졌다.
-한유주의 <달로> 중에-
 
며칠 전에, 혹은 그보다 더 오래 전인 그 언젠가 내가 경험했던 기억들과 내가 느껴봤음직한 감정들이 무방비 상태에 있는 나를 가끔씩 혼란스럽게 만들 때가 있다.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 장면들, 어쩌면 내가 믿고 있는 것이 거짓이고 아니라고 믿고 있었던 거짓이 현실일 수도 있는 모호한 장면들이 불쑥불쑥 내 머리 속을 지배해 버릴 때. 

혹은 진짜 경험인지조차 몰랐던 나의 잠재된 기억 속의 어떤 장면들이 어느 한 순간 방금 전에 일어난 일처럼 뇌리에 또렷이 박혀 그 당시의 느꼈던 감정들까지 고스란히 전달돼 사라지지 않을 때. 이런 장면들은 홀연히 나를 찾아와 흔들어 놓곤 다시 기억 저편으로 떠나버리곤 한다. 마치 애초에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마냥…… 

처음부터 이런 장면들은 생각나지 않아도 상관 없을 법한 내 인생의 아주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기억들이다. 예를 들어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주고 받았던 소소한 대화나 집을 나서며 마주쳤던 옆집 아저씨의 옷차림, 무언가를 이야기하다 나를 바라 보았던 그 사람의 눈동자, 그리고 그 언젠가 어디에서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내다 본 창밖으로 스쳐지나간 풍경 등, 오히려 기억조차 불필요한 장면들의 재생. 물론 때때로는 잊고 싶었던 나의 실수 라던가 누군가에게 들켜버린 거짓말, 생각만으로도 가슴은 먹먹해지는 순간들이 나를 순식간에 집어 삼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기억들은 때로는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 그 장면이 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기억인 듯 한 착각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잔잔히 다가와 오랫동안 긴 여운을 남겨주기도 한다. 또한 불현듯 찾아온 기억들은 날 슬며시 웃음 짓게도, 내 가슴에 갈기갈기 생채기를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는 똑같은 기억이 다음엔 다른 모습으로 찾아와 날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기억들, 때론 지워버리고 싶어 기억 저편으로 억지로 밀어내 버렸던 기억들이 있기에 지금의 온전한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타인이 아닌 함께가 아닌, 나만이 공유할 수 있는 기억들.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이 기억하는 장면들을 몇 개씩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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