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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은 천민자본주의 결과물…서울대 출신도 길거리에"
10여년째 노숙인 돌보는 수원다시서기센터·김대술 성공회 신부 "여성·20대·고학력 노숙인 문제 심각…인문학적 소양 길러야"
2017-01-28 07:31:42최종 업데이트 : 2017-01-28 07:31:42 작성자 :   연합뉴스

"노숙은 천민자본주의 결과물…서울대 출신도 길거리에"
10여년째 노숙인 돌보는 수원다시서기센터·김대술 성공회 신부
"여성·20대·고학력 노숙인 문제 심각…인문학적 소양 길러야"



(수원=연합뉴스) 최종호 기자 = "수원역 맞은편 로데오 밤거리. 젊고도 아름다운 예비 노숙인들이. 취한 모짜르트처럼 즐겁다"
시집 '바다의 푸른 눈동자'에 담긴 시 '쇼생크 탈출'의 마지막 구절처럼 수원역 맞은편 고등동은 늘어선 술집, 모텔의 네온사인으로 밤마다 불야성을 이룬다.
이곳 한복판 오래된 3층짜리 벽돌 건물에 대한성공회유지재단이 운영하는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가 자리 잡았다.
수많은 인파가 오가는 길목이지만 화려한 조명 사이 형광등 밝힌 사무실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다. 지난해 다시서기센터에 들어온 후원금은 400여만원에 불과하다.
오히려 혐오시설이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2005년 다시서기센터가 문을 연 이후 주민 민원 탓에 자리를 옮긴 것만 3번이다.
'바다의 푸른 눈동자'를 펴낸 김대술(58) 성공회 신부는 노숙인에 대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에도 2007년부터 10년째 다시서기센터를 이끌고 있다.
쉽지 않은 일을 오랜 시간 해온 사연을 묻자 김 신부는 거창한 이유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성공회 신부로서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성공회의 빈민선교 정신 실천이라는 대답을 간신히 들었다.
김 신부가 다시서기센터를 맡은 동안 김 신부 포함 3명이 전부이던 상근직은 16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경기도와 수원시가 지원하는 예산으로 센터를 운영하고 월급을 받는다.
종교는 모두 제각각이다. 노숙인에 대한 따뜻한 마음 하나로 함께 일한다. 거칠고 궂은 일이 대부분이지만 보통 7∼8년 몸담을 정도로 이직률이 낮다.
김 신부와 이들은 도움이 필요한 노숙인을 찾아 밤낮으로 거리를 헤맨다. 당직을 정해 돌아가며 24시간 헤맨다.
그렇게 찾은 노숙인에게 어떤 보호·자활 프로그램을 제공할지 머리를 맞댄다. 다시서기센터는 임시보호, 임시주거 지원, 자활, 매입임대주택 지원, 귀농 지원 등 1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노숙인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보호·자활의 성공률이 높아진다.
김 신부는 특히 귀농 지원에 관심이 각별하다. 마땅한 일자리를 갖기 어려운 노숙인과 일손이 부족한 농촌이 서로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수원역에서 농촌으로 자리를 옮겨 술판을 벌이는 노숙인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지금은 하나둘 부지런한 농민으로 새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며 뿌듯하다. 큰돈은 아니지만 '바다의 푸른 눈동자' 판매 수익금은 모두 이들을 위해 쓰인다.


이렇게 노숙인이 다시 서기까지 쉽지 않다는 게 김 신부와 다시서기센터가 풀어야 할 과제다.
특히 여성 노숙인의 경우에는 마땅한 보호 시설조차 찾기 어렵다. 경기도에는 수원의 다시서기센터를 비롯해 성남, 의정부에 노숙인 시설이 있지만, 여성 노숙인을 위한 공간은 없다. 서울에 3∼4곳이 있어 다시서기센터는 도움이 필요한 여성 노숙인을 찾으면 여관에서 하루 묵게 한 뒤 서울의 해당 시설로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명의도용 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감당하지 못할 억울한 빚을 떠안고 거리로 내몰린 20대 노숙인이 늘고 있다. 다시서기센터는 이들을 비롯한 초기 노숙인의 자활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이들이 자활에 성공할 경우 노숙인으로 머물렀을 때 발생하는 사회비용보다 훨씬 큰 사회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어서다.
IMF 사태 이후로는 고학력 노숙인이 많아졌다. 김 신부는 IMF 당시 사업이 한순간 기울어 거리에 나앉은 서울대 출신 노숙인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신부는 이러한 수많은 노숙인의 다양한 사연을 천민자본주의로 묶었다.
그는 "저마다 노숙할 수밖에 없게 된 이유가 있지만, 노숙은 기본적으로 천민자본주의의 결과물"이라며 "제대로 된 사회적 안전망 없이 성장에만 힘쓰다 보니 조금 삐끗하면 거리로 내몰리기 십상이고 공정한 사회도 아니어서 가난이 대물림돼 노숙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가 고등동 밤거리를 오가는 청춘들을 '예비 노숙인'으로 표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그는 "인문학적 소양은 천민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어 노숙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우리 모두가 인문학적 소양을 길러서 상실한 인간성, 공동체를 회복하는 게 지금은 그 어떤 종교를 따르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공회는 5년마다 소속 신부들에 대한 인사이동을 한다. 김 신부는 다시서기센터를 맡은 지 5년만인 2012년 연장근무를 신청했다. 다시 5년이 지난 올해 김 신부는 또 한 번 연장근무를 신청할 계획이다.
zorb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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