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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세상의 다리'…학대아동 돌보는 위탁가정 천사들
'남의 핏줄' 키우는 위탁가정 전국에 798곳, 993명 돌봐 "힘들어도 기쁨 더 커…아픔 보듬어 학대 고리 끊어야죠"
2016-04-09 07:51:23최종 업데이트 : 2016-04-09 07:51:23 작성자 :   연합뉴스
'험한 세상의 다리'…학대아동 돌보는 위탁가정 천사들_1

'험한 세상의 다리'…학대아동 돌보는 위탁가정 천사들
'남의 핏줄' 키우는 위탁가정 전국에 798곳, 993명 돌봐
"힘들어도 기쁨 더 커…아픔 보듬어 학대 고리 끊어야죠"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기자 = "학대의 아픔을 보듬어야 또다른 학대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김상배(54)·김봉화(54·여)씨 부부가 명진(3·가명)이를 만난건 지난해 6월이다.
만 두 살도 안 된 명진이가 엄마품이 아닌 경기도의 한 일시아동보호소에 맡겨져 도움의 손길을 기다릴 때다.
사연은 이랬다.
2013년 10월 태어난 명진이는 단 한번도 엄마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다.
우울증을 앓던 명진이 엄마는 아이의 옷도 음식도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명진이를 비롯한 다섯 남매를 두고 홀로 외출하기 바빴다.
한시도 눈을 떼선 안될 나이, 부모로부터 방치된 명진이를 키운 사람은 겨우 초등생이 된 큰 형이었다.
다섯 남매가 방치돼 있다는 신고를 받은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조사에 착수, 아동을 방임한 친모와 이들 남매를 분리조치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동복지법상 만 2세 미만 아동은 친가정에 복귀하기 전까지 다른 가정에서 보호하는 '가정위탁'에 우선 배치돼야 하는데, 명진이를 맡아줄 조부모나 친인척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일시보호소로 가게 된 명진이 앞에 나타난 사람이 바로 김씨 부부였다.


주변에서는 "제자식도 키우기 힘든데 왜 남의 자식을 데려다 키운다고 나서느냐", "아이 키우는 데에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아느냐"는 등 김씨 부부를 한사코 말렸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우리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명진이를 맡아 키우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사진을 찍고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봉사활동도 여럿 있지만, 드러나지 않아도 한 아이에게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는 가정위탁이 더 뜻깊으리라 믿었다"며 "이전에도 다섯살배기 다문화가정 아동을 위탁한 적이 있어서 자신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갓 두살도 되지 않은 명진이를 돌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배변을 치우는 일까지, 제자식이라고 해도 힘든 일을 이들 부부는 꿋꿋이 해냈다.
더욱이 명진이에게 지원되는 양육지원비와 기초생활수급비 등은 모두 합쳐봐야 40여만원이어서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다.
김씨 부부는 "제자식에게 돈을 썼다고 해서 아까워 할 부모가 없듯, 명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은 전혀 아깝지 않다"며 "힘은 조금 들어도 명진이로 인해 우리가 얻는 기쁨이 훨씬 크다"고 전했다.
최근 부모가 가해자인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르는 가운데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는 피해아동을 데려다 키우는 일반 가정위탁 부모가 우리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김씨 부부처럼 학대 등으로 인해 위기에 몰린 '남의 자식'을 '제자식'처럼 맡아 키우는 가정은 지난해 말 현재 전국에 798곳, 이들이 돌보는 아동은 993명이다.
충북 청주에 사는 차형익(54), 나금순(50·여)씨 부부도 김씨 부부와 비슷한 경우다.


차씨 부부는 지적장애를 가진 친모가 양육을 포기한 양수(2·가명)군을 지난 2014년 3월부터 맡아 돌보고 있다.
이들은 24살 딸과 22살 아들을 키워낸 중년이지만, 편안한 노후보다는 아픔을 가진 위기 아동을 돕는 데에 힘을 쏟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양수는 뇌병변 1급의 장애를 안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친모가 연락을 끊어 되돌아갈 친가정 조차 없는 상태다.
이에 차씨 부부는 양수가 만 18세가 될 때까지 위탁을 계속해 나가기로 결정했다.
차씨는 "아이를 키운 지 오래돼 분유를 먹이는 것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느라 힘들었다"며 "그래도 양수가 있어 행복하다.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 부부가 책임지고 키울 계획"이라고 약속했다.
서울 동대문의 오운선(45·여)씨는 지난 2013년 8월 은수(5·가명)양을 가정 위탁했다.


남편과 자녀들은 "어떻게 갓난쟁이를 키우려고 하느냐"며 말렸지만, 오씨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오히려 오씨는 뒤이어 지난해 9월 지원(4·가명)양을 맡기로 해 자녀 2명에 위탁아동 2명을 함께 키우는 중이다.
오씨는 "말리던 가족들도 지금은 은수와 지원이를 한 가족처럼 여기고 사랑한다"며 "주위에서는 어려운 결심을 했다고 말하지만 가정위탁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고 오히려 밝게 웃으며 자라나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마다 힘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학대받던 아이들을 제 자식처럼 키우는 위탁가정 부부들은 아동학대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피해자인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행복한 가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수원 김씨 부부는 "아동학대 가해자인 부모들도 성장 과정에서 학대를 당했거나 하는 등의 저마다의 사연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금 학대 피해 아동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아픔을 보듬는다면 나중에 커서 제자식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그 사랑을 되돌릴 것"이라며 "가정위탁의 작은 손길 하나하나가 모여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의 고리를 끊는 데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정위탁지원센터 관계자는 "부모는 유년기 아이들의 성격 형성 등 성장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다"며 "가정위탁은 행복한 가정에서 아이를 보호하는 것은 물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ky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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