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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이 매력"…팔순 노인이 그린 '새 달력' 펀딩서 인기
수원 정맹순 씨, 월별 대표 조류 그려…스티커·엽서도 제작
'탐조 책방' 운영하는 딸이 작품 활동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
2021-12-23 15:10:42최종 업데이트 : 2021-12-18 09:06:00 작성자 :   연합뉴스
새 그림 작가로 활동하는 팔순 정맹순 씨

새 그림 작가로 활동하는 팔순 정맹순 씨

"귀여움이 매력"…팔순 노인이 그린 '새 달력' 펀딩서 인기
수원 정맹순 씨, 월별 대표 조류 그려…스티커·엽서도 제작
'탐조 책방' 운영하는 딸이 작품 활동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

(수원=연합뉴스) 류수현 기자 = 경기 수원시에 거주하는 여든 살 정맹순 씨는 3년째 '새 그림 작가'로 활동 중이다.

지우개도 필요 없다. 볼펜으로 쓱쓱 형태를 그린 뒤 색연필을 덧대면 어느덧 새 한 마리가 탄생한다.
스케치는 투박하고 색감은 단출하지만, 18일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맹순씨가 제작한 '2022년 아파트 새 달력' 상품의 후원액은 최소 목표액 50만원의 6배(300만원)를 초과 달성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일정 기간 특정 제품을 구매할 고객을 미리 모은 뒤 목표 금액이 달성되면 주문 수량만큼 제작·판매하는 방식이다.
오는 19일 펀딩 종료를 앞두고 전날 기준으로 86명이 구매를 마쳤다.
맹순씨의 펀딩 상품은 새 달력을 비롯해 새 그림엽서, 스티커, 홍여새 핀 버튼(배지) 등으로 구성돼있다.
구성품 개수에 따라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가격은 최저 2만3천원부터 최고 20만원까지 다양하다.

맹순씨는 거주지인 아파트 단지에서 1년간 기록한 새 47종 중 달별로 관찰할 수 있는 대표 새를 선정해 달력에 그렸다.
달력의 숫자도 직접 썼다. 달력을 한 장씩 뜯어 액자에 넣어 그림처럼 볼 수 있도록 절취선을 만들었고, 새 실물 영상을 볼 수 있는 큐알(QR) 코드도 장마다 삽입했다.
맹순씨는 "남편도 먼저 떠나고 코로나19 시국에 사람들도 자유롭게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아파트를 찾는 새들이 이젠 내 친구들"이라며 "그동안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지내왔는데, 새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벼·보리 농사도 모자라 궂은 공사장 일까지 하며 다섯 남매의 생계를 책임졌던 맹순씨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심장 수술을 받고 나서부터다.

함께 사는 딸 박임자(50) 씨가 쇠약해진 엄마를 위해 그림을 그려보라며 건넨 종이와 볼펜, 색연필이 계기가 됐다.
맹순씨는 "평생 그림이라곤 그려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무슨 그림을 그리냐'며 딸에게 화를 냈었다"며 "그런데 아프다고 가만히 있으니까 몸이 더 아파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림을 한 번 그려봤는데 가족들이 '잘 그린다'며 응원해줬고 점점 재미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처음엔 숟가락, 채소 등 집에 있던 물건을 그린 맹순 씨는 탐조 활동이 취미였던 딸 임자씨가 카메라로 찍은 새 사진을 보며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새를 그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장거리 활동이 제한되자 임자씨는 지난해부터 아파트 단지에서 탐조 활동을 했고, 맹순씨는 딸이 찍어 온 새 사진과 집 베란다에 놓은 먹이를 찾아오는 새들을 그렸다.
맹순씨가 지금까지 그린 새 그림은 300장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젠 이웃 주민까지 새 사진을 찍어와서 '할머니 이것 한 번 그려보세요'하기도 한다"며 "살아 있는 동안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맹순씨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딸 임자씨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기도 하다.
상담 일을 하는 임자씨는 탐조 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올해 6월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 경기상상캠퍼스에 '탐조 책방'을 열었다.
청년1981 건물 2층에 들어선 5평 남짓한 책방에는 탐조 관련 책 200여 권이 빼곡히 들어섰고, 한편에는 엄마의 새 그림들이 전시됐다.
임자씨는 "엄마의 그림이 정교하진 않지만, '동글동글'한 새 모습이 귀엽고 친근해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는 것 같다"며 "내년에도 엄마와 함께 새 달력을 만들고 새 관련 이야기가 담긴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들 모녀가 새를 관찰하고 그리는 이유는 새를 매개로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려는 측면도 있다.
임자씨는 "새는 우리와 가장 가까이 살면서도 존재가 잘 인식되지 않고 도시 환경 변화로 살 곳을 잃어가는 약체"라며 "새의 존재를 인식하는 일이 우리 사회의 약한 존재, 즉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yo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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