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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동행] "저 같은 사람도 남에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수원다시서기지원센터 노숙인들, 종이가방 접기 수익금 3년째 기부
2021-06-14 13:55:21최종 업데이트 : 2021-06-13 09:00:19 작성자 :   연합뉴스

[#나눔동행] "저 같은 사람도 남에게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수원다시서기지원센터 노숙인들, 종이가방 접기 수익금 3년째 기부


(수원=연합뉴스) 이영주 기자 = "노숙 생활하면서 길거리에서 술 먹고 떠들며 남에게 피해만 줬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제가 이제는 남을 도와줄 수 있다니 기쁘기만 하네요."
지난 8일 오후 2시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수원역 옆 무료급식소인 무한돌봄 정 나눔터에서 만난 A(58)씨는 아직 작업 전인 종이가방 더미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방 모서리에 테이프 붙이기를 반복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1월부터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는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센터에서 제공하는 종이가방 접기 자활 근로 사업에 참여하며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A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를 배회하는 여느 노숙인과 다름없었다.
"젊었을 땐 용접일을 했는데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직장을 잃었어요. 이후 용역회사에 다녔는데 4∼5년 전 그 회사마저 부도가 났죠. 나이도 들고 일거리도 줄다 보니 자연스럽게 거리 생활을 하게 됐어요."
A씨의 삶은 센터를 접하며 완전히 달라졌다.
매주 월·화요일 오후 1시 30분부터 3시간 동안 진행되는 작업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스스로 돈을 벌고, 센터의 지원으로 머물 곳도 생겨 예전처럼 삶이 불안하거나 걱정되지 않다 보니 여유도 생기더라고요. 그러면서 기부라는 것도 생각하게 됐죠."

매달 59시간을 일해 받는 월급 60여만원 외에 종이가방 하나당 30∼50원 정도를 더 버는데, A씨를 포함한 10여명의 참여자들이 이 수익금 전액을 미혼모 지원 시설인 '고운뜰'에 기부하고 있다.
A씨는 앞으로 자활사업을 마친 뒤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해 기부를 이어가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젠 남을 돕는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게 됐어요. 앞으로도 기부는 계속하고 싶고 특히 홀로 계신 어르신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A씨를 비롯한 노숙인들의 기부는 자활 근로사업 시행 첫해인 2019년 노숙인들과 센터 직원들이 논의해 실행에 옮기면서 시작됐다.
2019년엔 7월부터 5개월간 노숙인 32명이 모은 87만원을, 2020년엔 49명이 1년간 모은 157만2천260원을 고스란히 전달했다.

7년간 거리에서 방황했다는 김용수(43)씨도 작년 8월 자활사업에 참여하며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김씨는 "적은 돈이지만 기부에 동참하기로 한 이유는 거리에서 힘들게 살아온 경험이 있다 보니 배고픈 이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며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잘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종이가방 접기 수익금을 기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틈날 때면 수원역 인근을 돌아다니며 여전히 방황하는 노숙인들에게 김밥이나 필요한 물품을 나눠주는 봉사도 하고 있다.
이도근(48)씨도 "내가 직접 손으로 작업해 번 돈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어 일하는 게 더 즐겁다"고 했다.

한번 나눔을 경험한 노숙인들은 기부를 삶의 원동력 삼아 자발적으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가고 있었다.
김석 수원다시서기노숙인종합센터 자활지원팀장은 "삶의 의미를 놓아버렸던 분들이 근로와 기부를 통해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느끼고 자존감, 자신감을 키워간다"며 "남을 도우면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점차 희석되고 심리적 치유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은아 특화자활 담당 사회복지사는 "일반인들에겐 매우 적은 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자활근로로 버는 월급이 60만원 정도뿐인 이들에겐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닐 것"이라며 "이분들에겐 돈 몇 푼을 더 가지는 것보다 남을 돕는 일이 더 가치 있는 일인 것"이라고 말했다.
young86@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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